[성명] 삼성반도체 전신성경화증 피해자 故이혜정님의 근로복지공단 산재인정 결정에 대해 늦었지만 환영한다.
작년 추석(2017.10.4.)에 하늘나라로 떠나신 삼성반도체 전신성경화증 피해자 故이혜정 님의 유족이 18일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산재 인정 결정 통지를 받았습니다.
“미안하다고 사과는 하지 않아도 되지만, 다시는 저처럼 아픈 이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하신 고인의 유지를 생각해서 유족(남편 최00님)과 반올림은 올해 5월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재신청을 하였고, 지난 9월 4일 근로복지공단 산하 경인업무상질병 판정위원회에서 산재인정 판정을 내린 것입니다.
경인질병판정위는 「과거 삼성반도체 기흥사업장에서 유기용제 노출이 있었고, 정황상 열악한 환경적인 요인이 발병에 영향을 미쳤거나 최소한 이를 촉진시킨 것으로 판단되며, 직업적 유기용제 노출이 전신성경화증의 발병위험을 증가시킨다는 보고가 있고, 결정형 실리카분진, 유기용제 등이 신청 상병의 발병에 기여하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을 종합하여 볼 때 신청 상병과 업무간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는 것이 심의위원 다수의 의견」이라며 업무상질병으로 판정하였습니다.
반올림은 이러한 산재인정 결정에 대해 늦었지만 환영합니다. 다만 2014년 10월에 고인이 생전에 산재 신청한 것에 대해 근로복지공단이 진작에 이러한 결론에 이르렀더라면 투병의 고통과 남은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을 덜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큽니다.
이혜정님은 투병 중이던 2014년 반올림과 함께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요양급여 신청을 하였으나, 역학조사 기간만 1년이 넘게 소요되더니 결국 역학조사 평가위원회에서 ‘전신성경화증과 연관이 있다고 알려져 있는 유기용제 및 결정형 실리카 분진에 노출될 가능성이 낮았을 것으로 추정한다’는 이유로 2016년 불승인 되었습니다.
그러나 과거 이러한 불승인 결정은 기흥공장 최초라인이자 가장 오래된 1라인의 배기 및 환기 등의 열악함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부당한 판결이었습니다. 1라인에서 일을 하다가 1998년 비호지킨 림프종이 발병했던 동료 나00님은 ‘1라인은 환기가 잘 안되어 비릿한 황산 냄새, 지린 암모니아 냄새 등 각종 지독한 냄새가 짬뽕되어 매우 힘들었고 로봇이 고장이 나면 작업자가 직접 황산 속에 담겨진 웨이퍼를 내산 장갑을 끼고 꺼내기도 했으며 챔버(설비내 가공 공간) 청소시에 가스냄새가 심하게 났다‘고 진술하기도 하는 등 유해물질 노출수준이 심각한 수준이었음에도 역학조사 기관인 산업안전보건연구원과 경인질병판정위원회는 여러 노동자들의 증언 등 과거 환경에 대한 증언을 모두 간과하였고, 유해물질 노출수준이 미미하다는 삼성의 인바이런 보고서에 기대어서만 판단했던 것입니다.
이혜정님은 온몸이 굳고 기도가 막혀가는 큰 고통이 수반되는 병 때문에 누워 잠을 자지도 못하고 옆으로 쿠션에 기댄 채 새우잠을 잘 정도의 상태였습니다. 1차 불승인 결정에 불복절차를 거칠 여력조차 없었기에, 결국 돌아가신 이후 유족이 재신청을 진행하였습니다. 뒤늦게라도 산재로 인정된 만큼 고인의 바람대로 이번 경인질판위의 산재인정 판정이 전자산업 직업병 피해자들의 보상과 예방문제 해결에 보탬이 되길 희망합니다.
이번 산재인정 결정은 작년 대법원 판결 즉 첨단전자산업에서 유해화학물질 등 노출로 인해 발생한 희귀질환에 대해 산재인정 기준을 대폭 완화한 대법원 판결 및 그에 따른 고용노동부 산재처리절차 개선 대책, 그리고 지난 10여 년 동안 반도체 직업병 피해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존재를 스스로 드러내며 산재인정 싸움을 한 결과입니다.
이혜정님을 포함하여 현재까지 34명이 근로복지공단 및 법원을 통해 산재를 인정받았습니다. 그러나 반올림에 들어온 380여명의 제보자 중 이제 겨우 34명이 공식 인정된 것입니다. 즉 첨단전자산업 노동자의 직업병에 대한 산재인정 물꼬가 트인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도 산재보상제도는 개선될 점이 많습니다. 여전히 병의 의학적 인과관계를 밝히는 것이 중심이 되는 직업병 판정기준 및 산재신청을 하기에는 너무 짧은 소멸시효 문제(치료종결이후 3년 이내, 사망이후 3년 이내), 승인 이후에도 복잡하고 까다로운 처리절차 등등 개선되어야 부분이 많습니다.
산재제도 개선 뿐 아니라, 반도체 전자산업 노동자들의 건강권을 위해서 유해화학물질 정보에 대해 알권리 등 앞으로도 반올림은 전자산업 노동자의 건강권 확보를 위해 싸워나갈 것입니다.
2018. 9. 20.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문의 : 반올림 상임활동가 이종란 노무사 010-8799-1302)
(참고: 2017-10-07 추모보도자료(약력 및 남기신 말 http://cafe.daum.net/samsunglabor/MHzN/4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