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악의적인 법을, 너무나 쉽게 통과시킨 것에 분노합니다
조승규 노무사(반올림 활동가)
안녕하세요 반올림에서 상임으로 활동하고 있는 조승규 노무사입니다. 이번 산업기술보호법이 개악된 과정을 설명드리겠습니다.
원래 산업기술보호법은 산업스파이나 기술 빼돌리기와 같은 경우를 대비해서 만들어진 법입니다. 보호할만한 산업기술에 대해서는 기술 유출과 같은 부정경쟁이 일어나는 것을 방지하겠다는 것입니다. 원래 법 취지가 이랬으니, 산업기술보호법은 2006년에 제정되었지만 지금까지는 일하는 사람들의 안전과 건강에는 관련될 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작년 10월에 반올림이 삼성을 상대로 작업환경측정보고서에 대한 정보공개청구 소송을 진행한 이후 상황이 급변하였습니다. 반올림은 공장 내 유해물질에 대해서 알고자 했을 뿐인데, 삼성과 일부 언론에서는 산업기술이 유출될 수 있다고 호들갑을 떨었습니다. 그런데 삼성의 힘이 얼마나 막강한지, 곧 국회에는 삼성의 호들갑이 반영된 법 개악안이 올라왔습니다. 이때부터 부정경쟁을 막기 위한 산업기술보호법이 노동자와 시민의 목소리를 막는 법으로 등장한 것입니다.
법 개악안은 참으로 신속하고 치밀했습니다. 어찌나 신속했는지 반올림이 정보공개청구 소송을 하고 나서 개악안이 국회에 올라올 때까지 단 2달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어찌나 치밀했는지, 법 개악안은 정보공개청구 뿐 아니라 어디 가서 이야기도 하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또한 산업기술과 관련만 되어있다면 다 문제삼겠다고 하여 안전과 생명과 관련한 정보라도 문제 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산업기술보호법은 개정 이유만 보더라도 반올림의 정보공개청구소송을 겨냥하는 악의가 공공연히 밝혀져 있습니다. 그러니 그 누구라도 개정법의 영향성에 대해서 충분히 검토했다면 이렇게 법으로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7월부터 시작된 일본과의 무역분쟁 때문에 그 모든 숙의과정은 생략되었습니다. 담당 소위원회도, 국회도, 정부도 이 법을 제대로 뜯어보지 않고 통과시켰습니다. 법이 개정되고 있음을 알리는 입법예고나 다양한 의견들을 들어보는 공청회 자리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산업기술보호법 개악안은 어느 반대의사도 듣지 않고, 어느 반대표도 받지 않은 채 법으로 들어왔습니다.
법이 개정된 것은 올해 8월이지만, 이토록 신속하고 조용하게 통과되었기에 반올림을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들은 이에 대해서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산업기술보호법 개악안이 나오게 된 계기였던 정보공개청구 소송 중 삼성 측의 주장을 통해서야 개악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삼성 측은 법 개정으로 앞으로는 안전이든 뭐든 국가핵심기술 관련해서는 비공개로 정리되었으니, 다 끝난 싸움 아니냐는 주장하고 있습니다.
반올림의 작업환경측정보고서에 대한 정보공개청구소송은 아직 1심도 채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산업기술보호법이 이렇게 하루아침에 바뀌다니 참으로 허무합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법들이 들어서기 위해서는 굉장히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산업안전보건법 개정과정을 다시 돌이켜봅니다. 고 김용균님의 사고 후 안전에 대한 수많은 사람들의 요구가 있었음에도, 경영계의 반대 속에 부분적인 성취만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외면한 법이 들어서는 과정은 이렇게 수월하다니 허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국회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킬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통과되는 법안들을 꼼꼼히 살펴야 합니다. 그런데 이번 산업기술보호법 개악 과정에서는 그런 모습을 보이지 못했습니다. 국회의원들에게 호소합니다. 이제라도 자신들이 해야 할 소임을 다하지 않았음을 인정하고, 산업기술보호법 개악에 대한 대책마련에 나서주십시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문제를 바로잡아야 합니다. 일하는 사람들의 안전과 생명이 보호될 수 있도록, 안전에 대해서는 알 수 있고 말할 수 있게 만들어주십시오. 감사합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0.01.17 00: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