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삼성반도체 루게릭 피해노동자 이윤성씨에 대한, 서울행정법원의 산재 불승인 판결을 규탄한다.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다 루게릭병(근위축성 측삭 경화증)에 걸린 이윤성씨가 청구한 ‘산재 요양급여 불승인 취소소송’에 대해서 서울행정법원 행정 4단독(정재우 판사)는 지난 8월 23일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원고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이 사건 질병과 원고 업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고 이 같은 취지에서 근로복지공단의 불승인 처분은 적법하다”며 근로복지공단(피고)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동 판결은 “업무와 재해발생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어야 하고 그 인과관계는 이를 주장하는 측에서 입증하여야 한다”고 밝히면서 ▲ 이 사건 질병인 근위축성 측삭경화증(루게릭)은 현대 의학상 아직 그 발병원인이 밝혀지지 아니하였고, 다만 운동신경에 손상을 주는 복잡한 유전과 환경적 요인의 상호작용이 발병원인이라는 가설에 힘을 얻고 있고, 환경적 요인에 관해서는 살충제, 중금속(납, 수은), 전자기장 등이 이 사건 질병의 발병위험성을 높인다는 연구결과가 있지만 상반된 연구결과가 존재하는 등 아직 의학적으로 명백하게 받아들여질 정도는 아닌 것으로 보이며 ▲ 원고가 작업시 이소프로필알코올(IPA), 실란(SiH4), 포스핀(PH3), 디클로로실란(SiH2Cl2), 염화규소(SiCl2), 암모니아(NH3), 육불화텅스텐(WF6), 불화수소(HF), 트리메틸포스파이트(TMPi), 오존(O3) 등과 같은 화학물질에 노출되었을 가능성이 있고 전자기장에 노출되었을 가능성도 있지만 그 노출 정도가 원고의 건강이나 신체에 영향을 줄 정도였는지가 분명하지 않고, ▲ 이 사건 질병과의 관계에 관해서는 실험연구 및 역학연구가 아직까지 없는 것으로 보이며, 원고가 근무하였던 공장에서 이 사건 질병을 진단받은 사람이 없고, 전체 국내 반도체 사업장 근로자 중에서도 이 사건 질병에 이환된 사례가 있다고 볼 자료가 없어, 이러한 사정에 비추어 볼 때 원고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이 사건 질병과 원고 업무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으므로 같은 취지에서 한 이 사건 처분은 적법하다고 판시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법원의 불인정 결정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부당하다.
첫째, 재판부는 원고의 루게릭병이 현대 의학상 명확하게 그 발병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점을 산재불인정의 주요 근거로 들었다. 하지만 루게릭병에 걸린 노동자들 중에서 납이나 농약(살충제), 전자기장에 노출된 노동자들이 (소수이지만) 법원에서 산재로 인정되어 왔다. 따라서 이번 재판부가 ‘의학적으로 명백한 인과관계’가 없다는 이유로 산재 불인정 판결을 내린 것은 의학적 인과관계에만 의존한 것으로 지나치게 협소한 판단이다. 비록 현행 산재법 시행령에 여전히 의학적 인과관계를 산재인정의 기준으로 두고 있지만(그래서 시급히 법률이 개정되어야 하겠지만) 이에 대하여 대법원은 “근로자의 업무와 사망 등 사이의 인과관계는 반드시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입증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근로자의 취업 당시 건강상태 등 제반 사정을 고려하여 업무와 재해발생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추단되는 경우에도 그 입증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다.
두 번째, 이번 재판부는 반도체 산업의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반도체 생산과정에서 노동자들은 검증이 안 된 수많은 화학물질과 중금속, 방사선, 전자기장 등에 노출될 위험에 처해져 있다. 미국 노동통계국(2003)은 반도체 산업의 노동자들의 질병비율이 모든 제조업 중에서 가장 그리고 월등히 높다고 발표했다. 이를 증명하기라도 하듯, 삼성반도체 노동자들의 다양한 중증질환 피해는 반올림에 제보된 것만 110여명이나 된다. 하지만 어떤 물질이 어떤 병을 일으키는지 거의 밝혀지지 않았다. 어떤 병의 원인과 그것에 얼마나 노출되어야 병에 걸리는지를 모두 검증한 이후에야 산재를 인정해주겠다는 것은 결국 더 많은 노동자들이 죽고 병들어 그에 따른 연구결과가 축적되어야 한다는 사후약방문이자 그 자체로 끔찍한 논리이다.
첨단 반도체 산업의 역사는 불과 수십 년 밖에 안 되었고 기업주가 영업기밀이라고 쳐 놓은 장벽 때문에 제조과정에서 사용되는 화학물질 정보는 제대로 파악도 되지 않는다. 또한, 반도체 산업의 기술 발전 속도가 매우 빠르기 때문에 그 유해성이 채 검증되기도 전에 신제품이 출시되고 제조과정에 새로운 기술과 새로운 화학물질이 적용된다. 그러다 보니 향후에라도 수십 년에 걸친 연구를 통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증명해 낼 길이 과연 있을지 의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관련 연구 등 그 증명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산재를 불인정한 이번 루게릭 판결은 원고 이윤성 씨는 물론 다른 노동자들에게도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셋째, 이윤성씨는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서 가장 위험한 업무 중 하나인 CVD(화학기상증착)공정의 설비엔지니어 업무(예방정비업무)를 맡아 20대 초반부터 퇴사할 때까지 14년간 줄곧 같은 일을 했다. 그러다 퇴직 직후 루게릭 병에 걸렸다. 14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검증도 되지 않은 수많은 독성 화학물질과 부산물, 전자기장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었다. (반올림 카페 활동알림방 2013. 8. 23. 게시글 참고) 그런데 법원은 이윤성씨에게 노출된 화학물질이나 전자기장에의 ‘노출 정도’가 신체에 영향을 줄 정도였는지가 분명하지 않다는 것을 산재 불승인의 근거로 삼았다.
그러나, 그러한 노출정도를 정확하게파악하지 못한 책임은 사업장 안전보건관리의 책임이 있는 사업주와 사업장 관리감독의 책임이 있는 국가가 져야 한다, 노동자가 그 노출정도를 제시하지 못한다고 하여 산재불승인의 근거로 삼는 것은 부당하다. 삼성 측은 재판과정에서 이윤성씨의 자료 제출 요구에 성실히 응하지도 않았다. 설령, 이윤성씨가 설비엔지니어로 근무하면서 화학물질 평균노출수준이 미량이었어도 14년이라는 장기근속을 하는 동안 이루어진 노출의 정도는 결코 적지 않다고 보는 것이 오히려 합리적인 판단이다.
삼성반도체 공장에서는 그 동안 적지 않은 전·현직 노동자들이 화학물질 노출 사고에 대해 생생하게 증언 해 왔고, 2013년만 해도 두 번의 불산 누출 사고 가 있었으며, 특별근로감독 결과 2000여건이 넘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례가 적발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점만 보더라도 삼성반도체가 그간 화학물질 관리를 얼마나 부실하게 해왔는지 알 수 있다. 2009년 서울대 산학협력단의 조사 및 2012년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연구보고서에 따르더라도 이윤성씨와 같은 반도체 ‘설비엔지니어’는 화학물질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노출될 수 있는 직업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재판부가 단지 이윤성씨가 화학물질에 노출된 정도를 모른다는 것을 불승인의 근거로 삼은 것은 매우 부당하다.
넷째, 반도체 노동자들이 루게릭과 같은 희귀질환에 얼마나 많이 걸리는지 연구가 없다는 점을 산재불승인의 이유로 삼은 것은 더더욱 이해할 수 없다. 병의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것으로 인한 불이익을 아픈 노동자가 지어야 한다니, 과연 산재보험법이 누구를 위한 법인지 의문이다. 발병원인을 모르는 것에 대한 책임은 질병으로부터 노동자 보호의 의무가 있는 국가가 져야 한다.
또한 작업 환경상 유해요인 때문에 희귀질환이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희귀’질환이라는 특성상 다수가 아닌 극소수의 노동자가 걸린다. 따라서 희귀질환에 걸린 노동자가 단 한명이어도 작업환경에 의한 개연성이 의심된다면 직업병을 인정해 주어야 옳다. 그래야 노동자 복지제도의 일환인 산재보험을 둔 취지에 맞다.
덧붙여 삼성반도체·LCD 공장 노동자 중 루게릭 병 피해자는 알려진 사람이 1명밖에 없지만 같은 신경계 질환인 ‘뇌종양’, ‘다발성 신경염증’, ‘다발성 경화증’ 등의 피해자는 알려진 것만 14명이나 된다. 이번 판결은 이러한 점을 감안하지 않았고 ‘희귀’한 질환이라는 특성도 고려하지 않았다. 루게릭 피해자 이윤성씨는 20대 초반에 입사해 14년간 일을 한 것 외에는 다른 유전적 · 환경적 요인은 없다. 그리고 반도체 공장에서 사용한 화학물질 중에는 동물실험에서 신경계 질환을 일으키는 물질들이 다수 있었다. 따라서 그러한 화학물질로 인한 인과관계를 추단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재판부는 명백한 인과관계를 요하며 피고의 불승인 처분이 적법하다고 하였다. 이번 재판부의 태도는 그 병의 원인을 밝히기 어려워 평생 병마와 씨름하다 죽어가는 희귀질환 피해노동자들에게 산재는 꿈도 꾸지 말라는 이야기나 다름없다.
의학적으로 명백한 인과관계를 요구하거나 아픈 노동자에게 산재 입증책임을 두고 있는 지금의 산재인정구조는 바뀌어야 한다. 일하다 희귀질환에 걸렸어도 생존을 위해 산재보험 적용을 받을 수 있도록 법제도 개선이 시급하다. 희귀질환자일수록 치료가 어려워 경제적 보상의 필요성은 더욱 절박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삼성반도체 노동자로서 희귀질환인 루게릭병에 걸려 투병중인 이윤성 씨에 대하여 ‘현대의학상 발병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거나 ‘유해요인에 노출된 정도가 분명하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근로복지공단의 산재 불승인 처분은 적법하다”고 판단한 이번 서울행정법원의 판결은 부당하다.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은 희귀질환에 걸려 투병중인 노동자들에게 이중의 고통을 가하는 이번 판결을 규탄하며, 위와 같은 법원과 근로복지공단의 산재인정기준이 하루 빨리 고쳐지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2013. 8. 30.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
첫댓글 법은 원점에서 출발 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고용당시에 신체검사가 정상이지 않으면 고용되지 않는다. 고용되었기에 정상이다 정상인 사람이 퇴사 당시에 병를 얻었다면 회사는 책임을 져야한다, 병의 원인과 책임소재는 국가와 기업이 공동으로 책임져야 한다. 근로자에게 애국심을 고취시키고 애사심을 강요한만큼 그만한 책임도 져야되며 치료후에라도 병의 원인이 밝혀지면 그때 책임 소재를 밝혀도 된다 , 현대의학으로 밝히지 못하면 미래에 밝혀도 되고 인명은 한정되어 오래 살지 못하니 지금 당장은 국가와 회사가 책임져야하는 것이 순리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