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차 교섭을 앞둔 반올림의 입장
1. 지금까지 함께 고생해온 분들과 뜻을 잘 모으지 못해 안타깝습니다
2013년 12월부터 우리는 피해 노동자 및 가족들과 활동가들로 구성된 십여 명의 교섭단으로 삼성전자와의 교섭을 이어왔습니다. 그러나 최근 일련의 사정으로 교섭단을 재편하게 되었습니다.
○ 8월 13일 6차 교섭에서 우리 교섭단 몇 분이 삼성 측이 6월 25일 3차 교섭에서 제시한 기존 보상안(협상에 참여 중인 8명에 대한 우선 보상)을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황상기 교섭단 대표와 다른 교섭위원들을 배제한 채 삼성 측 교섭단과 따로 대화를 가졌습니다.
○ 그동안 우리는 교섭단 전체모임에서 합의된 내용에 따라 교섭에 임해왔지만, 6차 교섭에서의 위 상황은 사전에 합의되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우리가 삼성의 기존 보상안을 수용하지 않으면 이분들이 독자적으로 삼성과 교섭할 계획이라는 중요한 입장조차 직접 듣지 못하고 언론보도를 통해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 교섭단 내의 신뢰가 심각하게 훼손된 상황에서 삼성 안을 수용하느냐 마느냐를 답하기 이전에 교섭단 내부 상황을 토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습니다. 이에 8월 29일 교섭단 전체모임을 열어 토론을 했지만 다시 뜻을 모으지는 못했고, 8월 30일 언론을 통해 이분들이 독자교섭을 하기로 결정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2013년 3월 실무협상부터 지금까지 함께 고생해온 분들과 끝까지 한 마음으로 임하지 못하게 되어 안타깝습니다.
2. 우리 요구안과 교섭 과정에 대한 정확한 사실은 이렇습니다
최근 일부 언론에서 우리 요구안이나 삼성과의 교섭 과정에 대해 사실과 다르게 보도하고 있습니다. 이 교섭을 지켜보고 있는 수많은 피해 노동자와 가족들, 그리고 연대와 지지를 보내주시는 모든 분들께 정확한 사실을 알려드릴 필요가 있어 설명드립니다.
1) 우리의 보상 요구안은 이렇게 만들어진 것입니다
우리는 2013년 12월에 발표한 요구안을 통해 근무기간, 진단명, 발병시기, 소속 등의 보상기준을 이미 제시한 바 있습니다. 그동안 반올림에 제보해 오신 분들의 사정을 토대로 억울하게 배제되는 사람이 없도록 만든 기준입니다.
이러한 기준을 바탕으로 삼성전자가 이미 운영 중인 <퇴직자 암 지원제도>를 개선한다면 별도의 보상기구를 만드느라 시간을 허비할 필요 없이 많은 피해자들이 신속하게 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물론 이 요구안은 교섭단 전체가 함께 토론하고 동의하여 만든 것입니다.
2) 산재신청자에 대한 보상이란 이런 뜻입니다
우리의 보상요구안에는 위 보상기준 말고도 산재신청자에 대한 보상 요구안이 있습니다. 이 또한 당시 교섭단이 다 같이 토론하여 마련한 것입니다.
산재를 신청한 분들은 제보자들 중에서도 신원, 근무 이력, 진단명이 확실하고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산재신청을 해야할 만큼 치료비ㆍ생계비 등의 보상이 절실히 필요한 분들입니다. 특히 정부에 산재보상을 신청하여 그 결정을 받아보기까지 삼성으로부터 회유와 협박, 업무환경에 대한 정보의 은폐ㆍ왜곡 등 많은 상처와 방해를 받았기 때문에 이분들에 대해서는 교섭을 통해 직접 보상을 받고, 사과도 받아야 한다는 것이 교섭단의 전체 의견이었습니다.
3) 그동안의 교섭 과정은 이러했습니다
2012년 9월, 삼성은 백혈병 항소심 원고 다섯 명에게 법적 조정을 제안해 왔습니다. 원고들은 <삼성과의 대화를 위해 정부와의 소송을 중단할 수 없다>는 점과, <소송은 그대로 진행하되 삼성과 대화할 수는 있다>는 의견을 모아 반올림을 통해 전달하였습니다.
2013년 1월, 삼성은 법적 조정이 아니라 대화를 요청하는 공문을 보내왔습니다. 반올림은 '6년 동안 굴복하지 않고 싸워 온 고통의 시간과 노력의 결과'로서 삼성의 대화 제의를 수용하였습니다.
2013년 3월부터 피해자 (유)가족 2명과 반올림 활동가 2명이 실무협상에 임했습니다. 8개월 만에 반올림 측 교섭단 구성(피해자 가족과 반올림 활동가)과, 교섭 의제(사과, 보상, 재발방지대책)를 합의하였고, 특히 보상에 대해서는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과 1994~2012년도 사이 LCD 부문에 종사한 노동자에 대한 확대 적용 기준을 마련하기로 합의하였습니다.
2013년 12월에 열린 첫 교섭에서 삼성은 갑자기 반올림의 자격을 문제삼으며 위임장을 써오지 않으면 교섭을 하지 않겠다고 하여, 교섭이 상당 기간 중단되었습니다.
당시 우리가 위임장을 쓰지 않았던 이유는 단지 피해자 몇 명에 대한 개별보상이 아니라 더 많은 피해자를 위한 보상과 재발방지대책, 사과를 논의해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게다가 그동안 피해자와 활동가들이 반올림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해왔기 때문에 위임장을 따로 쓸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러다 5개월 만에 삼성은 위임장에 대한 입장을 바꾸어 반올림과의 교섭을 재개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삼성과의 교섭 주체는 개별 피해자들이 아니라 피해자와 활동가들이 함께 해온 단체로서의 반올림이라는 것을 인정한 것입니다. 그래서 2014년 5월에 2차 교섭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4) 보상에 대한 반올림과 삼성의 의견은 이렇게 접근해 왔습니다
삼성은 6월 25일 3차 교섭에서 세 가지 교섭의제에 대한 입장을 최초로 밝혔습니다. 당시 삼성은 교섭단에 참가하고 있던 8명에 대한 보상을 우선 논의하고, 나머지 피해자에 대해서는 전문기구를 만들어 보상 기준을 논의하자고 했습니다.
이후 세 차례의 교섭에서 양측은 다소 평행선을 달렸지만, 8월 13일에 열린 6차 교섭에서는 보상에 대해 일정한 의견 접근을 이루었습니다.
삼성은 보상대상자를 선정하는 6개 기준을 생각해왔으니 몇 명이 되었건 보상 대상기준에 대해 논의를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기준을 마련하고자 한다면 교섭단에 참여한 8명만이 아니라 더 많은 피해자들을 포괄할 수 있어야 함을 주장하고, 최소한의 기준을 마련할 근거로서 피해자 33명의 업무내역, 근무기간, 진단명 등의 자료를 제시하였습니다. 이에 삼성은 우리의 자료를 검토하여 다음 교섭에서 입장을 밝히기로 하였습니다.
5) 삼성 측의 <8명 우선 보상안>이 교섭단을 분열시켰습니다
그런데 여기까지 의견이 접근된 상황에서 우리 교섭단 일부가 “8명에 대한 보상을 우선 논의하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삼성은 “보상 대상자 선정기준을 논의하려 했는데 당혹스럽다”라면서도 “교섭 참여자에 대한 보상을 우선 논의하고 싶은 게 원래 입장이긴 하다”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8월 13일 교섭이 마무리된 후, 우리는 내부의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하였고, 결국 8월 30일 언론을 통해 몇 분이 삼성과의 독자 교섭을 선언하게 되었습니다.
3. 삼성은 반올림 교섭단 재편을 핑계로 교섭에 불성실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됩니다
3개월 만에 의견 접근을 이룬 보상안을 다시 원점으로 되돌리지 말아야 합니다. 삼성은 이미 실무협상에서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과 1994~2012년도 사이 LCD 부문에 종사한 노동자에 대한 확대 적용 기준을 마련한다>고 합의한 바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삼성은 보상 이외의 요구안에 대해서는 전혀 진지한 고민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7차 교섭에서는 사과와 재발방지대책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논의를 진행할 수 있도록 성실하게 준비해올 것을 요구합니다.
4. 앞으로 우리는 사과, 재발방지대책, 보상에 대해 끝까지 삼성과 성실하게 교섭하겠습니다
비록 지금까지 함께 고생했던 분들과 끝까지 한 마음으로 가지는 못하게 되었으나, 우리는 앞으로도 지금까지처럼 성실하게 교섭에 임하여 피해자와 가족들의 요구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황상기 교섭단 대표를 중심으로 사과, 재발방지대책, 보상에 대하여 삼성과의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내도록 끝까지 성실하게 교섭하겠습니다.
"우리가 기나긴 시간을 견디며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피해 당사자 뿐 아니라 노동자와 시민사회가 자기 일처럼 여기며 연대해왔기 때문"(2013년 12월, 삼성 직업병 대책마련을 위한 교섭 돌입을 알리는 기자회견)이라는 것을 잊지 않겠습니다.
2014년 9월 1일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