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을 일컬어 100년지 대계(큰 계획)라고 합니다. 그 만큼 교육은 국가의 역사와 미래에 큰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사업이라는 걸 의미하는데요.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 교육은 ‘입시지옥’이라 불릴 만큼 교육의 참 의미가 희미해져가고 있습니다.
우리 교육계에 100년지 대계를 제대로 이룩하고자 교육을 통하여 미래를 이끌 인재를 양성하고 올바른 역사관을 심어주며 암울한 조국에 희망을 던져준 분이 있습니다. 그분이 바로 남강 이승훈 선생입니다.
남강 이승훈 선생은 참된 교육자이자 동시에 조국광복을 위해 투쟁한 애국투사이며 동아일보 사장을 역임하면서 국민들에게 진실 된 세상의 소리를 전달하고자 노력한 언론인이셨습니다. 한사람의 몸으로 올바른 교육, 진실한 언론, 광복을 이끈 애국투사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 참으로 놀랍고도 신기합니다.
요즘 표현대로라면 소위 말하는 “금수저”아닌가 하는 논란이 일만도 하건만 이승훈 선생의 일대기는 한편의 드라마입니다. 선생은 일찍 부모를 여의고 가난과 싸웠습니다. 유년시절 남의 집 심부름꾼으로 겨우 끼니를 해결하는 가난한 삶을 살았고, 이 후 청년기에 사업을 일으켜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남강 이승훈 선생은 부를 누리면서 편안한 삶을 선택하지 않고, 그 대신 불쌍한 조선의 백성을 택했습니다. 선생은 나라를 위해 오산학교를 세우고 3·1운동의 민족대표로 활약하였습니다.
교육자이면서 독립운동가이자 동시에 민족지도자로의 삶을 사셨던 것이죠. 그를 부르는 많은 수식어만큼 일생을 조선백성을 위해 조국의 독립을 위해 희생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이승훈 선생 묘 비명에는 ‘일생을 남을 위해 살고, 자기를 위해서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 이승훈’ 이라 적혀있습니다. 그만큼 이승훈 선생의 삶은 백성과 조국을 위해 전부를 바친 헌신의 연속입니다.
지난 2016년 5월 9일은 남강 이승훈 선생86주기로 광진구 능동 어린이대공원 남강 이승훈선생 동상 앞에서 추모식이 진행되었습니다. 추모식은 남강문화재단이 주최했고, 이승훈선생의 유가족, 이승훈 선생이 설립한 오산 중·고등학교 임직원들과 학생들 오산기독동문회회장인 우원섭 목사, 서울지방보훈청 김남영 보훈과장 등 수많은 인사들이 참석한가운데 진행되었습니다.
(남강 이승훈 선생의 정신을 배우기 위해 참석한 오산고등학교 신입임용교사들)
(이승훈 선생의 뜻을 배우기 위해 참석한 오산중재학생들)
오산 중·고등학교는 남강 이승훈 선생이 100년 전 조선의 학생들에게 올바른 교육과 애국심을 일깨우기 위해 세운 학교입니다. 임직원들과 신입교사, 재학생들은 매년 이승훈 선생 추모일에 맞추어 동상 앞에서 추모행사를 갖는다고 하는데요. 이는 오랜 학교의 전통이라고 합니다.
오산학교임직원의 말에 따르면 “평안북도 정주출생인 이승훈 선생이 우리나라에 오산중·고등학교를 설립하기 전에 이북에서 오산학교(五山學校, 남한의 오산(烏山)과 지명은 같지만 다른 지역)을 설립했고 그 이후 지금의 오산(烏山)으로 이주하여 다시 학교를 세우면서 100년의 역사를 가지게 되었다고 설명해주셨습니다.
그렇게 남강 이승훈 선생은 국민들에게 조선의 독립과 민족정신을 일깨우고 자라나는 조선의 미래를 위해 학교를 세우고 학생들에게 교육의 길을 만들어주었습니다. 때문에 오산 중·고등학교에서는 선생의 동상 앞에서 추모식을 가지며 그 정신을 기리고 있죠.
(추모식에 앞서 도열한 신입담임선생님과 오산고등학교 학생들)
(남강 이승훈선생 동상)
(이승훈 선생 추모식에 모인 내빈들)
(남강 이승훈 선생의 일대기를 적은 국가보훈처 안내판)
(헌화하는 이승훈 선생의 유가족)
(헌화하는 서울지방보훈청 김남영보훈과장)
추모식은 헌화를 시작으로 추도기도 추도사, 오산고 김승욱 교장의 남강일화(逸話)소개, 기념 촬영, 닫는 말씀 순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남강 이승훈 선생의 후배라 할 수 있는 오산 중·고등학교의 임직원들 과 제자라 할 수 있는 오산 중·고등학교 학생들 그리고 각계각층의 참석자들은 경건함 분위기 속에 추모식을 치렀습니다. 그들은 한마음으로 참된 교육자이자 애국자이시면서 동시에 올바른 목소리를 들려주던 언론인이던 남강 이승훈 선생의 일대기를 다시 한 번 되새겼습니다.
“겨레의 광복을 위하여 힘쓰라. 내 유해는 땅에 묻지 말고 생리 표본으로 만들어 학생들을 위하여 쓰게 하라. 그리고 서로 돕고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전진하라.”
남강 이승훈 선생이 유훈으로 남긴 이 글이 많은 여운을 만들었던 추모식이었습니다. 여러분도 이 글을 읽고 많은 걸 느끼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