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강신주가 그의 신간 저서 <철학
vs 철학>에 관한 인터뷰를 진행하던 중 “페미니즘은
수준이 떨어진다”라는 발언으로 많은 사람들의 갑을논박을 이끌어 내고 있다. 그의 의도가 무엇이든 간에 기사화 되어 실린 부분이 인터뷰의 전체가 아닐 수 있기에 전체적인 맥락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강신주 발언의 진위여부를 떠나 기사 제목을 통해 느껴진, 사람들이 체감하는 <페미니즘>이란
용어가 21세기를 살아가는 현재와 비교하여 아주 오래된 것처럼 생각되고, 이 단어를 꺼내는 것이 고루하다고 여겨지는 것 같다. 정작 페미니즘이란
용어가 사용된 지 반세기 정도 밖에 되지 않았고, 그 실체를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는 현실은 인지하지
못한 채.
여기 페미니즘이란 용어만큼 오래되고 익숙하지만 막상 그 사용법을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모르는 철학자와 그의 연구분야가 있다. 바로 프로이트(FREUD, Sigmund, 1856년 5월 6일 ~ 1949년 9월 23일)와
무의식의 세계. 오스트리아의 심리학자이자 정신분석학의 창시자로 인간의 행동은 무의식에서의 억압이나 저항 등에 의해 지배된다고 주장한 프로이트는
일반 대중들에게 그의 이름이 무의식이란 용어와 Equal 개념으로 인지될 만큼 친숙한 철학자이다.
그러나 프로이트의 이론을 미술에 적용하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한 작가가 작품활동을 전개해 나가며 보여주는 세계는 무의식과 의식이 혼합되어 있거나, 초자아적 의지를 지닌 경우, 혹은 관념적 작품 등 다양하기 때문이다. 즉, 프로이트가 3가지로
나눈 1) 무의식, 2)의식, 3) 초자아 이 세 가지가 융합되어
나타나는 것이지 어느 한가지로 설명되기는 어려운 일이다. 실제 어느 논문에서는 프로이트의 관점으로 클림트의
작품을 분석하였다. 그러나 클림트보다는 에곤실레가, 에곤실레
보다는 루시안 프로이트가 더 성적 욕구를 즉설적으로 배출하지 않았던가. 클림트는 자신이 가진 성적 판타지에
기대어 작품을 전개했을 뿐이다. 그리하여 클림트의 작품을 위해 프로이트의 분석도구를 사용하는 것은 일종의
넌센스로 그의 분석도구를 부분적으로 차용하여 활용해야 함을 깨닫는다.
또한 무의식의 세계가 많이 변했음을 우리는 인지해야 한다. 어떻게 성적으로만
무의식을 해석할 수 있단 말인가? 무의식이 어디서부터 왔는지, 개인의
무의식에 대한 출처가 어디인지를 풀어놓아야만이 작가가 가진 작품을 온전하게 접근하는 첫 걸음이 될 것이다. 가령, 프로이트가 살던 1900년대 비엔나는 성적으로 자유분방하고 문란한
도시였다. 창녀의 수가 일반 시민의 수와 거의 비슷한 인구구조에서, 넘쳐나는
인구로 인해 지하에 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까지 있었던 시대에 프로이트에게 상담을 받으러 오는 사람들 자체가 사회의 상류층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프로이트는 특수계층의 의식을 분석하였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러나 2016년 현재 초등학교 2학년 학생의 무의식은 1500년대 다빈치 정도의 지식을 가지고 있다. 왜? 인간의 무의식은 시간이 지나면서 축적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즉
시대별 사람들이 갖는 무의식이 전혀 다르고 이는 다시 나라마다, 성장배경에 따라 그리고 자신이 처한
사회, 경제적 위치에 따라 다 달라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적 억압, 리비도만을 가지고 무의식을 해석하는 것이 모순된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렇다면 왜 그 많은 철학사조들이 미술을 자신들의 컨텐츠로 사용하는 것일까?
인간을 하나의 모듈로 보던 아폴론적 접근에서 우리는 니체로 인해 디오니소스적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 이를 다시 프로이트는 무의식으로 파고 들어 분석하였는데, 이렇듯
미술작품에는 하나의 논리와 이성, 그리고 감성이 결합된 총체이기 때문이다. 즉 시대를 넘어 불멸이라고 불리 우는 작품 속에는 이성과 무의식이 혼합되어 작품 앞에 선 관객들에게 수 많은
인입구를 제공, 그들을 움직이지 못하게 붙잡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좋은 작품에는 여러가지 분석 도구를 활용할 수 있는 장치가 있기 마련인데 이 다양한 것을 프로이트 무의식, 성적 리비도로만 접근한다는 것은 현 시대에 굉장한 무리수 인 것이다. 지식이 분화되는 사회에서 하나의 현상을 다각도로 살펴볼 수 있는 도구로서 활용이 된다면 프로이트의 미학에 대한 타탕성이 성립 될 것이라 여겨진다.
첫댓글 요약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