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3:6-7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하나님을 믿는 것과 하나님에 대한 정보, 지식을 단순히 아는 것과는 아주 큰 차이가 있다. 오늘 본문의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다는 것은 창세기 12장-14장을 통해 알고 믿었던 하나님과는 그 깊이와 높이가 다른 하나님을 믿게 되었다는 것이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믿었던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믿음의 문제에 있어서 아주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단순히 기적을 일으키고 불가능한 일을 가능케 하는 그 이상의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이다. 복음서에 보면 기적, 빵, 치료, 정치적인 해방을 열망하며 주님 곁에 몰려들었던 무리들이 있었다. 그러나 주님의 십자가의 수난을 바라보며 거침없이 주님의 곁을 떠나고, 부인하고, 저주하고 만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믿음이 그런 믿음이었을까?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정하셨다’라는 단어는 ‘목록에 작성하다, 계산하다’라는 뜻이 있다.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되는 것은 오직 믿음을 통해서다. 인간의 그 어떤 행위, 의지, 결단으로도 하나님의 의를 얻을 수 없다. 하나님을 믿음으로,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의 은혜를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완전한 의를 얻게 된다. 내 의가 아닌 예수님의 의를 덧입기 때문이다. 이것이 너무도 놀랍고 황홀하고 감사해서 생명을 내어드리고, 희생하고, 봉사하고, 헌신하고, 선교하고, 금욕적인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어떻게 나만 이 은혜를 받아 누릴 수 있는가? 그럴 수 없기에 죽음을 향해 질주하는 열방의 영혼들을 향해 이 은혜의 복음을 증거 하는 일을 자원하게 되는 것이다.
왜 나의 삶에 감사, 찬송, 기쁨, 평안, 소망이 사라질까? 마땅히 복음을 위해 살아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왜 복음을 위해 살아가지 않는지, 왜 복음을 위해 살아갈 수 없는지에 대한 이유를 알아야 한다. 의롭게 되는 것이 자신의 행위, 인간으로부터 나온 어떤 것으로 가능하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십자가의 은혜와 인간의 행위가 더해져야 의롭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상대적인 의로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그리스도인들 자신의 확신, 교리나 성경공부에 의해 주입된 어떤 확신으로 인해 의롭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사이비이단). 은혜가 사라진 자신의 열심, 그것이 만들어낸 믿음, 확신은 결코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할 수 없다. 갚을 수 없는 은혜를 저버린 영혼들의 마지막은 상상하기조차 힘들고 고통스럽다.
십자가의 은혜, 아버지의 사랑이 그저 영혼 깊숙이 믿어지는 믿음이 필요하다(선물). 이 말은 인간의 어떤 노력, 열심, 지식, 금욕, 탁월한 영적경험으로도 의롭게 될 수 있는 길이 없다는 것이 믿어져야 한다는 말이다. 인간의 어떤 행위, 그것이 무엇이든 죄를 범한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될 수 있는 길은 없다. 그 어떤 행위, 조건을 의지하면 할수록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모든 은혜, 사랑, 때를 따라 돕는 은혜, 친밀한 영적관계는 제한될 수밖에 없다. 우리의 의는 오직 하나님을, 십자가의 은혜를 믿음으로만 가능해진다. 그렇다면 행위가 필요 없는가? 그 갚을 수 없는 깊은 은혜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오는 행위가 있을 뿐이다.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많은 것을 약속하셨다. 자손, 영토, 권세, 영육간의 모든 것을 약속하셨다. 이 언약의 축복을 받아 누리는 길은 오직 믿음을 통해서만 가능해진다. 물론 행위가 필요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행위 이전에 죄악 가운데 나뒹굴고 있었던 우리에게 생명의 복음이 전해진 것은 행위가 아니라 믿음이 먼저라는 것을 강조, 증명하신 것이다. 믿으라고 말씀하셨을 뿐만 아니라고 믿음을 주셨다. 이것이 은혜다.
하나님을, 십자가의 구속의 은혜를 믿을 때 우리는 거듭나게 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된다. 행위를 먼저 요구하셨다면 어느 누구도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었을 것이다. 지금도 동일하다. 자신의 정당한 행위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 구원에서 멀어지고 십자가의 은혜를 욕되게 할 수밖에 없다. 바라기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은 그 믿음이 우리 안에 자리함으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여김을 받는, 그로인해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 하나님의 구체적인 도움, 그 모든 언약의 축복을 받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길 간절히 소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