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8:1-3 그 후에 예수께서 각 성과 마을에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며 그 복음을 전하실새 열두 제자가 함께 하였고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 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그들을 섬기더라
하나님께서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신 이유는 우리가 그렇게 열망했던 가난, 불의, 상처, 질병, 무능, 억압에서의 해방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물론 주님의 십자가의 사건은 이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인 이유는 아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죽이시면서까지 주시기 원하셨던 것은 세상영광과는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나라였다. 주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자신의 삶은 내동댕이치셨다. 유리방황하는 영혼들, 오직 빵과 육신의 안락한 삶이 전부인 것처럼 살아가는 영혼들을 위해 공생애 삼년 반을 쉼 없이 달려가셨다. 머리 둘 곳 없이 고독하고 외로운 길, 제자들까지도 부인, 저주하고 돌아설 그 길을 망설임 없이 걸어가셨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외치면서도, 생명이 끊어지는 그 순간까지도 놓지 않은 것이 있었다. 그것은 사명이었다. 철저하게, 완벽하게 버림받으면서도 버림받아 마땅한 우리에게 그 아름다운 하나님의 나라를 주시기 위해 끝까지 사명을 붙잡으셨다. 주님의 관심은 불의, 거짓, 가난, 저주스런 삶이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나라, 완전하고 완벽한 하나님의 나라를 주시는데 있었다. 주님의 삶을 본받아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헌신했다. 가족의 고난, 절망, 심지어 가족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도하면서까지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 네팔 선교사님의 고백이 생각난다. “저에게는 고향이 둘 있습니다. 인생의 절반씩을 보냈으니까요. 그런데 저는 네팔이 더 고향 같습니다. 한국은 안락하고 안전하고 쉴만하지만 고향 같은 그리움, 사모함은 없습니다.” 일 년 전에 사모님을 사별하고 잠시 한국에 오셔서 쉬고 계셨던 선교사님의 고백이다.
왜 그렇게 젊고 유능한 인재들이 세계 도처를 향해 달려가고 있을까? 단 한 가지 이유다. 하나님의 나라를 전하기 위해서다. 주님께서 그렇게 열망하셨던, 생명을 내어던지면서까지 주시기 원하셨던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다. 주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제자들을 부르셨다. 그리고 이제 우리를 부르신다. 영광스런 사역에 동참하라고 말이다. 이것 보다 더 크고, 아름답고,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삶은 없다. 인간의 언어로는 설명이 불가하다.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한 영혼들에게만 주어지는 놀라운 가치가 아닐 수 없다.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 하여’ 오늘 본문에 나온 여인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한 사람들이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한 사람들에 의해 전해진다. 하나님의 나라는 아주 능력 있게, 강력하게 전해진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자신을 드러내시는, 일하시는 곳이기 때문이다. 많은 여인들이 주님 곁에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분쟁하지 않았다. 누가 크냐고 묻지도 않았다.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한 여인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이 모여서 한 일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었다.
“자기들의 소유로 그들을 섬기더라” 사역자가 있어야 하고 그 사역자를 돕는 이들이 있어야 한다. 선교사가 있어야 하고 선교사를 파송하는 이들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한 사람들은 섬기는 자리에 선다. 서로 하나 되어 연합한다. 주님은 교회,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먼저 섬기는 사람들을 세우신다. 우리가 간절히 찾고 구해야 할 나라는 이 세상나라가 아니다. 이 세상의 어떤 것을 더 소유하기 위해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도 아니어야 한다. 우리에게 더 많은 소유, 세상 어떤 것들이 필요하다면 그 이유는 단 한 가지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 확장하기 위해서다. 우리는 나그네, 본향을 향해 길을 떠난 나그네다.
주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주시기 위해 오셨다. 하늘영광을 버리신 주님은 겸손의 왕, 섬김의 왕으로 오셨다. 만왕의 왕, 만주의 주님이신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주님은 섬김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섬기기 위해 오셨다. 섬기고 섬기다 자신의 생명까지 내어주셨다. 주님의 소원, 열망이 무엇일까? 한 영혼이라도 더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하는 것, 그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입성하는 것 아니겠는가? 바라기는 우리의 가진 모든 것으로 그 소원을 이루어드리는, 그로인해 강력한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며 그 나라를 확장해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간절히 소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