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7일 설교내용중 일부로, 주보에 기재되어 설교이해를 돕기 위한 내용입니다.)
▪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단순히 율법의 기능처럼 죄를 깨닫게 하거나 사람의 죄를 판단하고 그 사람에게 죄된 행위에서 스스로의 의지로 나오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복음은 죄를 깨달음으로 내 자신은 구원이 필요한 존재임을 자각하게 하며 더 나아가 자신의 죄 문제를 해결하신 분은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하여 하나님께 나아오도록 이끄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 기독교 신앙의 내용을 1차적으로 담고 있는 성경은 복음서이다. 복음서는 예수님의 생애와 가르침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 모두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뜻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 그에 비해 로마서는 복음서에 나타나는 예수님의 가르침과 생애에 대한 사도바울의 해석과 설명을 담고 있는 2차 자료이다. 그럼에도 로마서가 초대교회 뿐 아니라 교회역사 전체에서 중요하게 부각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이유인즉 유대의 문화와 관습의 토대를 가진 복음서의 내용을 당대 가장 일반적인 문화였던 그래서 더욱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헬라문화를 통해 풀어내고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도바울은 유대의 전통 관습에 익숙할 뿐 아니라 동시에 그는 당대의 헬라문화에도 익숙하였다.
▪ 오늘 본문에서 특징적으로 등장하는 ‘율법’과 ‘심판’이다. 사도바울의 설명에 따르면 심판이라는 단어는 율법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 심판은 율법이 있는 경우에만 가능하다. 오늘날 재판이 헌법을 근거로해서 이루어지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이다. 법이 없다면 심판과 재판은 존재할 수가 없는 것이다.
▪ 그런데 심판과 재판은 소위 격려하거나 상을 베풀기 위한 과정은 분명 아니다. 심판이나 재판은 법과 관련하여 어긴 것에 대해 제재를 가하는 현장이다. 그런데 그렇다고해서 심판이나 재판을 받을 사람을 멸망으로 이끌기 위한 것은 아니다. 재판의 목적은 멸망이 아니라 대상자를 교화시켜 다시 일반사회속에서 올바른 기능을 발휘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 사도바울은 12절에서, “율법이 없이 범죄한 자는 율법이 없이 망한다”라고 설명하며 반면에,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율법이 없이 범죄하면 멸망하지만, 율법을 가지고 범죄하면 심판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심판’에 주목해야 한다.
▪ 사도바울이 사용하는 ‘심판’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사도바울이 사용하는 심판의 의미는 구약성경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실제로 구약성경의 한 줄기인 예언서의 주된 메시지가 이스라엘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기도 하다. 그런데 구약성경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심판은 항상 완전한 멸망이 아니라 오히려 회복의 발판이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심판을 받아들일 것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여러 번 촉구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