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로마서 2:28~29
▪ 누가 하나님의 백성입니까? 라는 질문에 출애굽기는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받은 사람들’이라고 대답한다.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받은 이후 히브리 민족은 하나님 백성인 이스라엘이 된 것이다.
▪ 그렇다면 히브리 민족과 다르게 하나님 백성 이스라엘이 새롭게 직면하여 경험한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이었을까? 계명을 받은 이후 이스라엘은 비로소 자신들의 진면목(정체)를 깨닫기 시작한다.
▪ 물론 계명을 받은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이스라엘의 순종은 선택적인 것이었다. 자신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에는 순종으로 반응했지만, 자신들이 요구하지도 않았던 말씀에 대해서는 순종하지 않고 오히려 원망하며 불평한 것이다.
▪ 이러한 이스라엘의 선택적 순종은 그들이 하나님을 자신들의 필요를 채우주시는 분으로 생각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출애굽기에 하나님이 가장 경계하신 것이 하나님을 자신들의 필요나? 채워주는 분으로 여기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그와같이 자신들의 필요나 채워주는 분으로 생각하는 것은 당대 우상숭배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신개념과 동일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 고대 사람들이 우상을 섬길 때면 항상 눈으로 볼 수 있는 형상을 새기거나 만들었던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사람들 각자가 자신의 필요가 생길 때마다 언제든지 눈으로 보면서 요구할 수 있는 대상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 자신의 필요와 해결책에 부합하는 말씀이나 계명에만 반응하는 선택적 순종은, 우상숭배자들이 가지고 있는 방식과 동일한 것이었다.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 아니었다. 이는 십계명의 첫 번째와 두 번째 내용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 자신의 필요에 부합하는 말씀이나 계명에 대해서만 제한적으로 선택적 순종을 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마치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순종인냥 생각하는 것은 위험하다. 그런데 아쉽게도 우리 주변에는 그와같이 선택적 순종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들이 허다하다.
▪ 그렇다면 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음에도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지 않고, 선택적인 순종을 유지하고 있는 것일까? (선택적인 순종을 통해서라도 순종했다는 근거를 갖고 싶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신 율법과 계명에 대해 ‘준행’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 그와같이 선택적 순종을 하는 신자들에게 어떤 문제가 발생할까? 선택적 순종을 했음에도 스스로를 하나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사람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자신이 행한 선택적 순종에 큰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 그러나 마태복음 19장에서 예수님은 어릴 때부터 계명을 지켜왔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찾아온 부자 청년에게 오히려 지키지 못할 계명을 던져주신다. (예수님은 왜 지킬 수 없는 계명을 던져주신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