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습) 사도바울에게 믿음이란, 나는 죄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고백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자에게 그리스도의 구원이 나타난다는 것이 바울의 입장이다. 죄와 상관이 없는 자는 그리스도의 구원과 상관이 없을 가능성도 짙기 때문이다. 신자에게 죄는 (놀랍게도) 구원의 가능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 일반적으로 종교는 자신의 수행과정을 통해 최고의 선이라는 경지에 도달하는 것을 추구한다. 불교는 수행을 통해 해탈을 추구하고, 도교는 수행을 통해 우주와의 조화를 추구한다. 이와같이 종교에서 수행은 최고의 선(기독교에서는 구원)을 성취하는 방법이다. 이와같이 최고의 경지에 이르는 ‘수행’을 중시하는 종교방식을 ‘자력종교’라고 한다.
▪ 그러나 기독교는 수행을 중시하는 일반 종교들과 다르게 ‘자력종교’가 아니라 ‘타력종교’로 구분된다. 기독교 신앙에서 최고의 경지인 구원은 자신의 수행에 의해 성취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나 밖에 있는 타자로 인해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 사람에게 구원은 수행과정을 통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 밖에 있는 존재로 인해 주어지는 것임을 사도바울도 로마서에서 밝히고 있다. 이것을 가리키는 단어가 ‘연합’이다. 신자가 경험하는 구원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의미하는 것이다.
▪ 기독교 신앙에서 구원이란, 예수님을 모방하며 살아가는 시도와 노력이 동원되는 수행과정을 통해서 도달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 기독교에서 구원이란, 단순히 예수님의 발자취를 모방하는 수행과정을 통해서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연합을 통해 예수님과 같아지는(동일화) 것이다. 그래서 사도바울에게 연합이란,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것이며 이것이 곧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사는 것 모두를 의미한다.
▪ 그리스도와 연합한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슨 의미일까? 사도바울의 설명에 의하면, 죄에서 벗어나 의에 이르기 위해 시도되는 사람의 모든 시도와 방법이 포기되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의 시도는 온갖 수행과정을 포함한다. 율법을 행함으로 죄가 아니라 의에 속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 등등)
▪ 수행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필연적으로 자기자신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사도바울이 설명하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에서는 수행방법으로 시도되는 모든 것들이 사망임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내 자신이 죄에서 벗어나 의를 얻기 위해 시도하는 모든 가능성이 폐기될 때, 비로소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 그런데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고백한 신자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그리스도가 주인되지 못한 자신의 모습에 경악할 가능성이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 우리가 직면한 문제이다. (이러한 문제는 로마교회 신자들도 직면하고 있었던 것이며 로마서의 저작 동기가 되기도 했다.)
▪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의구심을 자아내는 내 자신과 공동체의 현실을 마주한 사람들에게 사도바울이 제시하는 것이 로마서 6장(여길지어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