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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뿌리와 사상>
1922년 조선총독부 교육 시책
"먼저 조선사람들이 자신의 일, 역사, 전통을 모르게 하라. 그럼으로써 민족혼, 민족문화를 상실하게 하고, 그들의 조상과 선인(先人)들의 무위(無爲), 무능(無能), 악행(惡行)을 들추어 내, 그것을 과장하여 조선인 후손에게 가르쳐라. 조선인 청소년들이 그들의 부조(父祖)들을 경시하고 멸시하는 감정을 일으키게 하여, 하나의 기풍으로 만들 게 하라. 그러면 조선인 청 소년들이 자국의 모든 인물과 사적(史蹟)에 대하여 부정적인 지식을 얻게 될 것이며, 반드시 실망과 허무감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때 일본의 사적, 일본의 문화, 일본의 위대한 인물들 을 소개하면 동화(同化)의 효과가 지대할 것이다. 이것이 제국 일본이 조선인을 '반(半)일본 인'으로 만드는 요결인 것이다."
"'단군신화'란 단어는 총독부가 1938년 만든 말"고증자료 찾아
알래스카까지…'2200년 역사' 기록
한민족 반만년의 역사 중 우리가 제대로 알고 있는 민족사는 얼마나 될까. 학교 교육 혜택을 받는 대개의 국민들은 삼국시대부터 현대사까지 2000여년의 역사만을 배우게 된다. 그렇다면 삼국시대 이전 단군조선의 역사는 어떻게 된 것일까. 흔히 신화 수준으로 폄하되는 당시의 역사가 그저 구전해 오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라면 우리의 뿌리는 과연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인가.
‘단군은 실존 인물이었다’는 책을 펴낸 송호수 박사(75)는 우리의 국조인 단군은 실존 인물이었고, 47대 2200년간 한반도와 일본, 산동반도 양자강 위까지 세력을 펼쳤다고 한다. 송 박사는 이 책에서“‘단군신화’라는 단어는 총독부가 1938년부터 만들어 7년(1938∼1945) 밖에 못써먹고 패전하고 말았다. 총독부 이전에는 우리 5천년사에 단군신화라는 기록은 어느 문헌에도 없다. 일본이 패망한 이후에도 총독부 사학파 잔당들은 일본이 검정한 단군신화는 믿고 , 우리가 검증한 단군역사는 안 믿는다”고 지적한다.
40여년간 단군연구에만 매달리고 있는 송 박사가 처음 단군을 공부하기 시작한 것은 강단에서 동양철학을 강의했을 때라고 한다. 반만년의 역사를 가진 한국에 철학이 없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는 것. 그는 이때부터 단군의 자료가 보존되어 있다는 곳이라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다녔다. 그 과정에서 산중에서 길을 잃거나 영양실조로 죽을 고비도 여러번 넘겼다고 한다. 어려운 형편에도 단군고증을 위해 중국 인도 알래스카 등을 방문했고, 결국 40년의 각고 끝에 단군의 2200년 역사를 한권의 책으로 묶어 세상에 내놓게 됐다.
“이 책은 안호상 박사 등 민족사학파의 엄정한 검증을 거쳤으며 중국 정사 후한서 등 여러 고서를 토대로 만들어졌습니다. 세계 일류 역사에 하나의 역사가 2000년 이상 이어진 것은 유일합니다. 세계 통치사의 기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송 박사는 책을 통해서도 쓰고 있지만, 한글이 단군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등 놀라운 주장들을 제시하고 있다. 한단고기 단기고사 홍사 규원사화 동국역대 등에 한글 38자가 고스란히 등장하는데, 세종 때 28글자로 축소해 훈민정음이라 했으며 지금 쓰이는 글자는 이중에서는 4자를 제외하고 24자만 사용하고 있다는 것.
또 송화강가에 기계를 만드는 공청(工廳)을 설치해 각종 배와 기계를 만들었다는 주장도 내놓고 있다. 이 때 나라 안에 현상을 걸어 새로운 기계를 발명하는 사람에게는 상을 주어 장려했다는 것이다. 상을 받은 발명품들로는 양우계(量雨計) 구석편(驅石鞭) 목류마(木流馬) 측우기(測雨機) 측풍계(測風計) 자명종(自鳴鐘) 등 총 26종에 이른다. 이처럼 단군조선은 영토확장과 더불어 과학기술 발전에도 힘썼다는 주장이다.
단군역사에 젖어살고 있는 송 박사는 한국철학서의 시초가 될만한 것이 이 책이라며 과감하게 자평한다
“삼국사기 삼국유사 제왕운기 등의 사료들만으론 단군고조선사 회복엔 부족합니다. 단군역사에 관한 숨겨진 사료들은 혹독한 탈취, 소각, 말살 등의 일제 총독부 만행에서 간신히 살아남아 일본 패전 후 6·25 전쟁까지 지하에 묻혀 있다가 이제야 빛을 보게 된 것들입니다. 각 나라마다 전통적인 철학이 있듯이 이제는 우리도 우리의 철학을 공부해야 합니다.”
특히, 송 박사는 특정 종교인들의 단군에 대한 선입견이 사라져야 우리의 전통성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종교적인 의미를 떠나서 단군이 우리의 국조라는 것은 변할 수 없는 사실이며, 단군상이 집단 우상숭배를 위해 세운 것이 아니라 우리의 얼을 회복하고 선양하는데 그 목적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국조 단군을 부정하는 국적불명의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의 후손인지 되묻고 싶다며 목소리를 높이는 그는 통일이라는 민족적 성업은 빼앗기고 잃어버린 단군 역사와 단군 정신을 회복할 때 가능할 것이라고 거듭 강조한다.
한민족의 뿌리와 사상[송호수 교수]
일본 학자 오향청언 (吾鄕淸彦) 씨가 쓴 책을 보면 이런 말이 적혀 있습니다. "사마천의 '사기'(史記) 25권은 단군 조선이 중원 대륙을 지배했었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거꾸로 뒤집어 가지고, 마치 중국이 단군 조선을 지배한 것처럼 힘겹게 변조 작업을 해 놓은 것이다." 그리고 "한나라의 漢이라는 국호 자체도 옛날 3한 조선의 韓이라는 글자를 그대로 빌려 간 것에 불과하다" 고 말입니다. 우리의 역사가 대충 어느 정도 변조가 되었는가를 피부로 실감할 수 있을 겁니다.
한사군(漢四郡) 문제만 보더라도 있지도 않았던 한사군을 평양에, 그것도 세 군데나 되는 평 양 중에서 대동강의 평양만 있었다 하고 또 위만 (衛滿) 이 조선을 지배했다고 하는데, 그것 은 일본 사람들이 "보아라. 너희 조선족은 역사의 시초부터 중국의 지배를 받지 않았느냐. 너희는 항상 피지배 민족이었지 언제 독립 국가였느냐" 고 하면서 우리나라를 영원히 자기 네 속국으로 만들기 위한 당위론을 제시하는 전략이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단군 이전에 환웅천황 (桓雄天皇) 의 역사 시대가 18대 1565 년 동안 있었고 또 그 이전에 환인천제 (桓因天帝) 시대가 7대 3301 년이 있어서, 금년까지 9183 년이라는 사실이 '삼성기 '(三聖紀) 에 자세히 적혀 있습니다. 그렇다면 '삼성기' 의 문헌사적 고증이 문제가 되겠습 니다. 이 책을 쓴 안함로 (安含老)는 서기 600 년경 신라 시대 사람인데 삼국유사가 나온 것 이 1200~1400 년경이니까, 그보다 훨씬 더 먼저 기록된 것이고 이러한 '삼성기'의 기록을 그 대로 우리가 믿는다면, 우리나라 역사의 연조는 9 천 년이 넘는다고 하겠습니다. 그럼 9 천 년이란 역사를 어떻게 입증하느냐, 그러한 문헌 하나만 가지고 이것을 어떻게 외국학자들이 수긍할 수 있도록 하느냐는 문제가 생깁니다. 그런데 이것이 합리화될 수 있는 외국 학자들 의 논문이 이미 나와 있습니다.
몇년 전에 일본에 와서 발표한 소련의 여류 민족학자 R.S.M 자리가시노바 씨는 "한동 〈 구석기 시대에 인류가 살았고 신석기 시대 초에 이미 독자적인 고도의 문화를 가지고 있었 다" 고 했습니다. 신석기 시대 초는 지금으로부터 약 1만 ~ 1만 2천 년 전입니다. 그러므로 이 때 이미 우리 동이족들은 주변 국가들이 따라오지 못하는 수준 높은 독자적인 문화를 가 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와 적대 관계에 있는 공산국가의 학자가 발표했다는 말입니다.
또 하나 있죠. 역시 공산국가인 중국의 유명한 고고학자 당란이, 1977.7. 14 자 중공 '광명일 보' 를 통해 발표한 내용을 보면 "산동 반도 지역에서 남한 넓이 만한 광대한 지역에 이르 는 대문구 문명권 (大汶口文明圈) 을 발견했는데, 이곳을 발굴하니까 문자가 나오고 그 곳을 통치한 소호씨 (少昊氏) 란 통치자 이름까지 나왔으며, 이것을 방사선 탄소 측정을 해 보니 까 지금으로부터 5785 년 전 것" 이라고 합니다. 5785 년 전이라고 하면 단군 건국보다 약 1500 년 전의 일입니다. 그 당시 이미 산동 반도에는 문자를 사용한 고도의 문명 국가가 있 었는데, 그 통치자인 소호금천씨 (少昊金天氏) 가 동이족이라는 사실이 중국 고전에 기록되 어 있습니다.
'고사변'(古史辯)만 보더라도, 이 책은 우리가 쓴 책이 아니고 중국에서 나온 책입니다. 백 화문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을 보면 "소호씨는 동이계야 (東夷系也), 동이지인 (東夷之人) 이 라" 고 나옵니다. 뿐만 아니라 태호 복희씨 (太호伏犧氏), 여와씨 (女蝸氏), 소호금천씨가 전 부 동이족이라는 것을, 중국 사람 자기네 손에 의해 밝힌 겁니다. 또 며칠 전에 조선일보에 한번 나온 적이 있죠. 요령성에서 5 천년 전의 여신묘가 발굴됐는데 이 묘는 무덤이 아니라 사당입니다. 그리고 궁터도 발굴했다는데 이것들은 앞서 말한 당란이 발표한 유적보다 700 년이나 더 이후의 것들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여러 가지 사실을 놓고 볼 때, '삼성기'의 기록이 객관성이 있고 신빙성이 있다는 것이 고고학적으로 입증되었다면, 더 이상 무슨 반 증이 필요하겠습니까?
소호가 다스린 나라의 서울은 요동 반도에 있고, 산동 반도까지 다시 말해서 발해만 안쪽의 그 광활한 지역을 단군 이전에 벌써 통치하였다는 기록도 있는데, 5 천년 전의 거대한 궁터 가 발굴되었다면 이는 부족 시대 미개 사회에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죠. 강력한 정치 세 력권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지금까지 중국 역사를 말하는 사람 들이 주(周)나라 이전은 다 신화 시대로 몰아붙였지만 은허에서 갑골문이 발굴된 이래, 또 지금까지의 고고학적 발굴 성과를 볼 때 요(堯), 순(舜), 하(夏), 은(殷) 등의 역사를 인정하 지 않을 수 없고, 신농씨(神農氏), 황제(黃帝)를 신화적 인물에서 역사적 인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될 입장에 놓여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사실들은 이미 '시전'(詩傳)' 서전'(書傳) '맹자'(孟子)를 보면 다 나와 있습 니다. 그 가운데 정문으로 적혀 있습니다. 때문에 우리가 문헌을 볼 때에는 상당히 조심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식자우환이라고, 조금 안다는 학자들이 그 시대의 변천과 상황에 따라 그 리고 자신의 이해 관계에 따라, 엄연한 역사적인 사실을 신화니 비과학적이니 하면서 호도 한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입니다.
또 한가지 짚고 넘어갈 문제로 청동기 시대에 관한 것이 있습니다. 지금 고고학자들이 역사 를 보는 시야는 걸핏하면 청동기를 가지고 자(尺)질을 하는데, 즉 청동기 개시 년도에 따라 한 국가의 역사 시대가 결정된다는 얘기인데, 현재 사학계에서는 우리 나라 청동기 시대의 상한을 3 천년밖에 안보고 있죠. 그러니까 3 천년 이전에는 국가라는 게 있을 수가 없다는 주장입니다. 왜냐하면 한강 이남에서 우리 학자들이 발굴해 낸 유물들이 3 천년 이상 소급 을 못하니까 그렇게 얘기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단군 조선의 근거지는 도대체 어딥니까? 백 두산 아래 아사달입니다. 아사달은 그럼 어디냐? 바로 지금의 하얼빈인데, 그 지역을 발굴하 고 있는 북한의 학자나 소련 학자들이 발표하는 내용을 한번 들어봅시다.
지난 78 년 8.14 자 북한 '중앙통신'이 밝힌 바에 따르면 "우리 조선족이 청동기를 사용한 것은 서기전 2 천 년경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4 천 년 전이다. 그때 농가의 유적도 발굴했 고 농기구와 오곡 씨앗까지 발굴했다." 고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소련 학계는, 세계에서 가 장 활발히 한국학을 연구하고 있는데, 거기에서 발간한 유 엠 푸진이 쓴 '고조선' 이란 책을 보면 "조선족은 4 천년 전부터 청동기를 사용했다. 단군왕검이 있던 유적지도 발굴했고 단 군 조선 시대 중앙 행정기관의 유적지도 발굴했다" 고 했습니다.
이렇듯 국내의 여러 문헌뿐만 아니라 국외의 학자들이 연구하고 발굴해서 우리의 역사 상한 을, 그리고 단군 조선의 건국 사실을 고고학적으로 입증해 주는데도, 우리가 여기 앉아서 휴 전선 이북을 못 가본다고 해서, 가서 발굴을 못해 보았다고 해서, 우리의 청동기가 3 천년 이상 소급할 수 없다고 우기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민족사상의 원형 홍익인간(弘益人間) - 우리가 일찍이 남북 5 만리 동서 2 만리라고 하는 광활한 지역을, 한웅천황 시대가 1565 년 동안 단군 조선 시대가 2096 년 동안 지속되면서 통치했다는 역사적인 사실은 예사로이 생각할 문제가 아닙니다.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한웅천황 시대까지는 그만두고라도, 단군조선 시대만 해도 2096 년 동안이나 지속되었다 하 는 것은 동서양 역사를 통틀어서, 아니 인류 역사가 생긴 이래 한 개의 왕조가 2 천년간 지 속된 그러한 역사는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와 국경을 같이하고 있는 중국의 역사를 살펴봅시다. 하 은 주는 동이족이니까 말할 필 요도 없고, 그 이후로 300 년 이상 지속한 왕조가 단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같은 시대의 중국 역대 왕조는 300 년도 채 못 가 전부 망해 버렸는데, 같 은 시대의 우리나라는 2 천년이라는 긴 역사를 간직한 채 그 넓은 지역을 어떻게 통치할 수 있었느냐. 해답은 간단합니다. 그것은 위대한 철학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겁니다. 위대 한 철학, 그 철학은 바로 홍익인간 (弘益人間) 입니다.
우리나라 교육법 제 1조에 홍익인간의 이념으로 교육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지난번 고등학 교 교사들을 대상으로한 지방 강연에서, 대한민국 교육법 제 1조가 뭐냐 고 하니까 대답하 는 사람이 없어요. 서글픈 일입니다. 3~40 년간 교직에 있으면서 교육 이념이 무엇인지, 홍 익인간이란 용어가 어디서 나왔으며 그 내용이 무엇인지 하는 것쯤은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 까? 홍익인간이라는 용어는 삼국유사에 최초로 등장합니다. 환인이 환웅을 불러 놓고 삼위 산과 태백산 그 일대가 홍익인간할 수 있는 곳이니 너희가 가서 다스리라 하면서, 무리 3 천명과 통치자의 신표로 천부삼인 (天符三印)을 주어서 보냈다고 '삼국유사' 첫머리에 나옵 니다. 이렇듯 홍익인간이란 용어의 출처는 환인으로부터 나온 겁니다.
그런데 요사이 툭하면 단군을 팔고 다니는 사람들이 단군의 홍익인간을 떠들어대지만, 실은 환인으로부터 홍익인간이 나와서 환웅 이후 단군이 계승하고 오늘날 대한민국이 이를 그대 로 계승한 것입니다. 그래서 교육법 제 1조가 홍익인간입니다. 법 얘기가 나왔으니 우리나라 헌법 전문을 살펴볼까요? 제일 먼저 "유구한 민족사 빛나는 문화 그리고..." 로 시작은 잘했 는데 맨 끝이 좋지 않아요. 1980 년이 뭡니까? 이건 우리 대한민국의 역사가 1980 년밖에 안되었다는 얘깁니다. 자유중국 헌법에도 서기를 쓰지 않고 중화민국 75 년이라고 쓰며 기 독교 목사인 유태인도 연하장을 보내는데 서기를 쓰지 않고 이스라엘 년도 5700 년 이렇게 쓰는데 우리 나라는 왜, 국통이 없습니까? 1980 년이 왜 들어갑니까?
또 한가지, "3 1 운동의 숭고한 독립 정신을 계승하고..." 해 놓았는데 기미년의 선언서를 보 면 년도가 어떻게 되어 있습니까? 조선건국 4252 년,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 조선은 바로 단군조선이지 딴 조선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헌법 전문 맨 끝에는 1980 년이니, 앞뒤가 안 맞아도 한참 안 맞는 얘기죠.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사람을 크게 이롭게 할 내용이 도대체 무엇인가를 살펴봅시다. 그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조화경 (造化經), 교화경 (敎化經), 치화경 (治化經), 이 삼화개천경 (三化思想開天經) 이 바로 홍익인간의 구체적인 내용인 것입니다. 다른 말로 조화경을 '천부경' (天符經), 교화경을 '삼일신고' (三一神誥) 라 하며 치화경을 '참전계경' (參佺戒經) 이라고 하는데 이 3대 경서가 그 기본입니다. 우리나라 1 만년 역사의 뿌리가 곧 이 3 대 경전이지 그 밖에 다른 것이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기서 모든 것이, 중국에서 말하는 소위 유교 사상 도교 사상이 파생되어 나갔습니다.
구체적으로 반증을 제시할까요? '맹자'에 나오는 유교의 5륜은 아무리 유교에서 썼다고 해 도, 미국에서 국어로 쓰는 영어가 미어가 아닌 영어이듯, 그 출처는 동이족입니다. 말씀드리 죠. 순(舜)임금이 글(契)을 불러 가지고 사도 (司徒:문교장관) 를 명하고 인간에게 윤리를 가 르치라고 해서 글이 만든 게 바로 5륜입니다. 글은 동이족이입니다. 그리고 순임금도 '맹자' 에 보면 "저풍 (諸馮) 에서 태어나 부하 (負夏) 땅에 옮겨 살다가 명조에서 죽었는데 그는 동이족이다" 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오륜을 선포한 글(契) 이나 오륜을 선포케 명령한 임금 순 역시 동이족입니다. 따라서 말할 것도 없이 삼강오륜의 출처는 동이 문화입니다.
공자는 어떤가요. 공자는 동이족의 혈통으로 은나라 왕족인 송미자 (宋微子)의 후손인데, 현 재 홍콩 대학의 임혜상 교수나 대만 대학의 서량지 교수도 "은나라는 동이족이다" 하였고 ' 고사변' 에도 같은 얘기가 실려 있습니다. 또 공자 자신도 '논어' 에서 말하기를 "술이부작" (術而不作) 이라 하여 "나는 요와 순의 사상을 계승해서 서술했을 뿐이지 내가 만든 것이 아니다" 고 밝혔고 중국의 고전 '초사' 를 보면 "황제 (黃帝)는 백민 (白民) 에서 태어나고... 그는 동이족에 속한 사람이다" 라고 하였으니 황제의 5세손인 요임금이 동이족일 수밖에 없 을 것입니다. 따라서 동이족인 요와 순임금의 사상은 동이 사상이고, 이를 계승한 역시 동이 계인 공자의 유교가, 우리의 홍익인간 사상에서 파생되지 않았다고 그 누가 말할 수 있겠습 니까?
도교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노자 (老子)가 황제의 사상을 이어 받았다고 해서 황노지교 (黃老之敎) 라고 하는데 아까 말씀드렸듯이 동이족인 황제의 사상, 즉 동이 사상을 이어받은 것이 노자의 도교이고 보면, 비록 중국 대륙에 오래 머물러 있는 동안 다소 변질되어 고구 려 시대 때 역수입되어 들어왔다고 해도 역시 그 뿌리는 우리의 홍익인간 사상입니다.
그렇다면 불교 사상은 또 어떤가 살펴보기로 하죠. 석가 이전에 우리나라의 전불시대 (前佛時代)에 대해서는 아도화상의 비문과 '삼국유사' 그리고 지공선사 (指空禪師) 의 천보산 희 암사 중수문에 다 나와 있습니다. 석가 자신도 '대방광 불화엄경' 보살 주척품에서 말하기 를, "해동 금강산에 법기 (法起) 라는 보살이 있어서 1200 대중을 거느리고 법을 설하고 있 는데 그 불법이 거기에 예로부터 있었다 (從昔己來)" 고 증언하고 있으니, 이는 석가 출현 이전에 우리 나라에 이미 전불시대 즉 가섭불 (迦舌佛)시대가 있었다는 말이 아니고 무엇이 겠습니까? 가섭불이 앉아 법을 설한 연좌석 (宴坐石) 이 신라의 월성 동편 용궁 남쪽에 있 었다고 하는 기록이 '옥룡집' (玉龍集) 과 '자장전' (慈藏傳) 에 있습니다.
기독교 사상에 대해서는, 먼저 이 말씀부터 드려야 되겠습니다. 4700 년전에 나온 '황제내경 소문' (黃帝內經素問) 편을 보면 동이족이 살고 있는 이 지역 즉 "동방은 이 지구가 형성될 때 최초로 문화가 발생한 곳 (東方之域天地之所始生也)" 이라고 적어 놓았습니다. 누가 뭐라 고 해도 지구상 문화의 최초 원산지는 동이족이 살고 있는 동방지역이라는 거죠.
기독교의 한 단면만 말씀드리자면 법률학자인 동경 대학의 나까다 (中田薰) 교수가 '고전법 에 근거한 문화동원론고 (文化東源論考)' 에서 말하기를, 모세의 5경의 출처를 조사해보니까 함무라비 법전 속에서 나왔다고 했습니다. 나까다 교수는, 모세하고 함무라비 사이에 500 년 의 연조가 있지만 모세의 5경은 함무라비 법전을 계승한 것이고, 이는 또 수메르법에서 나 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럼 수메르의 역사 시초가 지금으로부터 5500 년 전인데, 남은 과 제는 수메르족은 어디서 왔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영국학자 크래머 (Kraemer, 1897-) 와 일본의 우에노 (上野景福) 교수가 발표한 것을 종합 해 보면, "수메르족은 메소포타미아에서 자생한 민족이 절대 아니고 동방에서 이동해 왔다. 그것도 문자를 가지고 왔는데 바로 태호복희가 쓰던 팔괘부호 (八卦符號) 와 흡사한 문자를 가지고 5500 년 전에 서쪽으로 옮겨 왔다" 는 것입니다. 복희와, 수메르에서 최초로 우르 (Ur)국을 건설한 왕조나 최초의 수메르 메소포타미아에 문화국을 건설한 엔릴 (Enril) 영웅 이나 거의 같은 시대입니다. 그러니까 5500 년 전에 복희문화를 가지고 동이족이 서쪽으로 갔다는 얘기가 됩니다. 무엇이 그것을 입증하는가? 수메르 말이 우리말하고 같은 것이 많이 있다는 게 최근 미국에서 연구가 돼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수메르라는 말 자체가, 곧 '소머 리' 에서 나온 것입니다. 비슷한 사례로 송화강을 우수하, 음만 그대로 따면 속말수라고 부 릅니다. 소머리강이다 이거죠.
뿐만 아니라 '삼일신고' 신훈 (神訓)에 나오는 "신(神)은 재무상일위 (在無上一位) 하사 유대 덕대혜대력 (有大德大慧大力) 하사 생천(生天) 하시며 주무수세계 (主無數世界) 하시고..." 하 는 것이 바로 완벽한 기독교의 일신사상 그대로입니다. 또 '참전계경' 총론에 보면 "여화신 이 흙으로 사람 형상을 만들고 혼을 불어 넣어 7일 만에 이루어 마쳤다. (女禍鍊造成而注之魂七日而成)" 하는 것은 기독교 창세기 2장 7절하고 꼭 같습니다. 여호와와 여와, 야희와 여 희등은 음도 같고 행적도 같습니다. 이러한 내용들이나 수두 제단에 치외법권 지대가 있다 는 내용, 그리고 동지에 양을 잡아 붉은 피를 문설주에 바른다는 구약의 기록은 우리나라에 서 동지에 붉은 팥죽을 끓여 문설주에 바르고 하는 것과 같은 내용입니다. 그러한 풍속들이 여기서 건너가 전해 내려온 거죠.
서양 사상을 종합하면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 즉 인본주의와 신본주의 둘인데 소급해 올라 가면 이 두 가지 사상이, 수메르 문화에서 나왔다는 결론이 내려집니다. 이러한 신본과 인본 사상은 우리의 신인사상이 둘로 나뉘어진 것이지요. 이렇듯 지구상 모든 사상의 뿌리가 동 방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빛은 동방에서!"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럼 세계적으로 보아서 9 천년이 되는 역사 민족이 어디 있습니까. 서양에서 가장 오래 되었다는 수메르족이 5500 년 밖에 안됐는데... 이런 역사가 없죠.
제 4빙하기 이전의 역사야 말할 필요도 없지만, 몇억년 전의. 유물이 지금 발굴된다고 해도 그건 지금 우리 인류하고는 관련지을 수 없습니다. 제 4빙하기가 이 지구를 휩쓸고 간 뒤에 살아 남았던 우리의 아담과 이브 설화는 "나반(那般)과 아만(阿曼)이 최초에 천하(天河)의 동서에 있다가 칠월 칠석날 만나 가지고 오색 인종을 낳았다" 는 것이고, 이것이 '신사기'의 기록을 보면 366 갑자에 이루어졌다는 것인데, 한 갑자가 60 년이니까 즉 21960 년 전에 제 4빙하기가 물러가고 제일 생명력이 강한 한 남성과 여인, 나반이와 아만이 즉 나반이와 아 만이가 인류의 시초가 되었다는 겁니다.
그럼 이러한 판도에서 아까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동방 지역은 천지지 소시생야라" 우리 동방 동이족이 살고 있는 땅은 이 지구가 형성될 때 최초의 문화가 발생 된 곳이다. 하는 점이 여실히 실증이 된다 하겠습니다. 또 '황제내경' 소문편에 보면 "침술도 역시 동방으로 부터 전해 왔다 (폄石亦從東方 來)" 라고 했듯이 한의학이라는 것도 우리나라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래서 요새 한의학의 한자를 "漢"에서 " 韓"으로 바꿨다고 하는데 당연히 그래야 합니다.
진작 바꿨어야 했어요.
한문이라는 글자도 마찬가지에요. 자꾸 이렇게 한문(漢文)이라고 쓰니까 중국 글이라고 생각 하는데, 중국이 漢나라 라는 국호를 정할 때 이 한문이 있었기 때문에 정한 것이지, 없었다 면 어떻게 漢나라 라는 국호가 생깁니까? 그러니까 한나라가 있기 전에, 이미 이 글자 한문 이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그럼 누가 만들었느냐 하면 아까 말씀드린 글이라는 사람하고 창 힐이라는 사람이 만들었는데 둘 다 동이족이지 않습니까?. 동이족이 만들었으면 동이족 글 이지 왜 중국글이라고 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지금 이 지구상 모든 사상의 원천은 홍익인간 사상입니다. 그 홍익인간 사상의 내용은 '천 부경' '삼일신고' '참전계경' 입니다. 다시 말하면 조화경, 교화경, 치화경이 이 원리 속에서 나오는 거죠. 그래서 루마니아 사람 게오르규 (Gheorghiu 1916~) 가 "홍익인간이란 단군의 통치 이념은 이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법률이며 가장 완전한 법률" 이라고 지난 1986 년 4월 18 일자 프랑스의 유력한 주간지 '라프레스 프랑세스' 지를 통해 발표한 겁니다. 신부 옷을 입고 성당에서 밥을 먹는 사람이 왜 모세의 10 계가 최고라고 말하지 않고 이런 말을 했겠습니까? 또 그는 우리나라에 왔다 가면서 "한국 민족이 낳은 홍익 인간 사상은 미래 21 세기의 태평양 시대를 주도할 세계의 지도 사상이다" 고 역설했습니다. 그 이상 얼마나 평 가를 내리겠습니까?
우리는 등하불명이라고, 지금 주걱 들고 주걱을 찾고 있습니다. 칸트, 헤겔을 찾고 독일철학 어쩌니 하고 아까운 시간만 다 허비하고 있으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보배는 왜 하나 도 개발 못하고 있느냐 이겁니다. 서양 사람들이 먼저 눈을 뜨고 "미래의 세계를 지배할 보 배, 최고의 이념이 여기 한국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홍익인간 사상이다" 고 하는데 우리 자 신은 그걸 모르고 외국 사상 속에 무엇이 있는 줄 알고 방황하고 앉아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사람들을 불러다가 자문이나 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답답하고 한심한 노릇입니까!
"지구상에 있는 모든 사상들은 실로 홍익인간 사상 속에 내재해 있는 것이지, 결코 홍익인 간 사상하고 대립된 사상이 아니다. 가령 구체적으로 예를 들자면 유교나 불교 기독교라는 것은 홍익 인간 사상과 대립적인 존재가 아니고, 홍익 인간 사상의 내재적인 사상이다" 하 는 것을 거듭 강조하고 싶습니다.
한가지 짚고 넘어갈 문제는, 우리나라의 역사적인 상황이 대단히 여의지 않고 또 다른 나라 와 달리 적어도 2 천년 동안 외래 세력에 밀려 우리의 역사를 바로 알아볼 수 없게 되어 있 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기록에 담겨져 있는 우리 민족 사상사적인 내용이 너무나 엄청나게 오도되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 말을 바꾸어 이야기하자면, 중국 적인 사대주의 사관 (事大主義史觀) 에 의해서 우리의 역사가 많이 바뀌었고, 그 이후에는 일본 사람들의 식민지 교육 정책에 의해 우리의 역사가 엄청나게 변조되었으며, 광복 이후 에는 서구 문화의 홍수에 밀려서 바른 사관을 잡지 못하고 지금에 이르렀습니다만, 분통스 러운 것은 이 문제가 언제 바로 잡혀질지 기약이 없다는 점입니다.
1998년 5월 초등학교 교사 한분이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습니다. 더 이상 아이들에게 거짓을 가르칠 수 없다는 이유였습니다. 단군은 분명 실존인물임에도 불구하고 교과서에는 마치 허구의 인물처럼 기술되어 있는데, 이것을 올바로 고쳐달라는 것이 그 분의 요구였습니다.
단군에 대한 문제로 소송이 걸린 것은 이번이 벌써 두 번째입니다. 광복직후에도 이와 비슷 한 일이 있었는데, 우리 역사 교과서에 등장하지도 않던 단군기사를 교과서에 실어야 한다 는 것이 그 때의 이유였습니다. 어찌보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일이지만, 생각해보면 정말 어이가 없는 일입니다. 도대체 왜 이런일이 벌어지는 것일까요? 이것은 청산하지 못한 우리의 아픈 과거와 관련이 있습니다. 일제말기에 일본은 우리사회 전반에 걸쳐서 민족말살정책을 폈습니다. 이는 역사에 있어서도 예외가 아니어서, 이때 추진 된 것이 바로 '조선사 편찬사업'이라는 것입니다. 세계 역사상 유래가 없는 '타민족에 의한 역사 서술'이라는 부끄러운 일이 일어난 것이죠! 그런데, 우리민족을 아예 없애 버리려했던 그들이 얼마나 객관적으로 우리의 역사를 서술했 을까요? 이 사업의 성격이 어떠했는가를 알기 위해서는 1922년 조선총독부에서 발행한 교육 시책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조선사람들이 자신의 일, 역사, 전통을 모르게 하라. 그럼으로써 민족혼, 민족문화를 상실하게 하고, 그들의 조상과 선인(先人)들의 무위(無爲), 무능(無能), 악행(惡行)을 들추어 내, 그것을 과장하여 조선인 후손에게 가르쳐라. 조선인 청소년들이 그들의 부조(父祖)들을 경시하고 멸시하는 감정을 일으키게 하여, 하나의 기풍으로 만들 게 하라. 그러면 조선인 청 소년들이 자국의 모든 인물과 사적(史蹟)에 대하여 부정적인 지식을 얻게 될 것이며, 반드시 실망과 허무감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때 일본의 사적, 일본의 문화, 일본의 위대한 인물들 을 소개하면 동화(同化)의 효과가 지대할 것이다. 이것이 제국 일본이 조선인을 '반(半)일본 인'으로 만드는 요결인 것이다."
이런 의도에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조선사 35권이며, 이것이 식민사학의 실체입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안타까운 일은 광복후 마땅히 폐기되어야 했을 이 책이 우리 사학계를 지배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조선사 편찬사업에 참여했던 이병도씨는 사학계의 거두로 써 굴림하게 되었고, 서울대학교에서 제자까지 길러내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의 제자분들이 우리사학계에서 주도권을 잡고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 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비관적일 수밖에 없느냐 하면, 현재 우리나라 각 대학의 강단에 서있는 사학과 교수들의 대다수가 일제 하에 만들어졌던 식민사관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으며, 또 그 밑에 서 배운 사람들의 절대 다수가 각 중고등학교에서 그러한 사관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인데, 이렇게 우리의 역사적인 상황이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라도 알고 계신 분들이, 과 연 우리 국민들 가운데 얼마나 될까 하는 것도 생각해 볼 문제죠.
하지만,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이런 사학계의 풍토속에서도 진정한 우리역사를 찾고자 노 력하는 분들이 계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지금 그 분들의 노력에 힘입에 조금씩 우리역사의 참모습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밝혀지고 있는 우리역사의 참모습을 좀더 많은 분들이 아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첫댓글 우리 민족 역사책이 진나라 분서갱유때 우리민족 한인,한웅,단군시대의 역사책을 모조리 불살라 없앤 사건이다. 왜야면 자기들한테는 치욕의 기록들이니까. 그후 한나라, 당나라, 명나라를 거치면서 왜곡시키고 없애고 숫한 말살 정책을 펴왔다. 조선시대때 명나라 눈치보면서 사대주의에 빠져 그나마 남아 전해오던 상고사 역사책을들 수거해서 모조리 없애는 만행을 저질렸다. 일제때 일본의 우리민족 역사 말살책을 조직적으로 펴셔 단군역사를 신화로 왜곡하고 열등한 민족 우매한 민족으로 왜곡교육시키는 만행을 저질려 놓고, 그 밑에서 일제 앞잡이를 한 사학자 이병도를 필두로 해서 일제잔당들이 만든 역사책으로 교육하고있으니 원..
여기 소개한 글은 객관적 연구 자료 특히 외국의 학자들이 검증 연구한 자료에 의한것이니 사대주의 사학자들도 반론을 하지 못할 내용들이다. 인류의 사상의 시원은 우리민족의 천부사상이다, 삼부인 즉 천부인, 인부인, 지부인이다. 한민족으로써 기본을 알고 가야지요....잉 ^&^ 제나라, 원나라, 청나라는 우리와 같은 민족인 황궁씨 후예들이 만든 나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