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시대! 신마산의 향수를 느껴 보세요!!
1920년대의 마산 문화동 창원천 벗꽃장(옆에 무학 아파트-월남동 제일각<제일 극장>옆 하천)
문화동의 창원천!
옛날에 창원천 하면, 마산의 자랑으로써, 벗꽃을 빼 놀수 없다. 더욱 밤의 벗꽃 말입니다.
타지방의 벗꽃나무 위치를 살펴 보면 ,대개가 하천을 끼지 않는 평지로서, 서울 근교의 우이동이나 진해 해군 통제부 영내의 벗꽃 나무가 그렇습니다 .
이런것에 비하면 창원천은 내천 양쪽에 즐비한 벗꽃나무와 지금 제일여고 앞 근처 경사진 도로변에는 반디돌로 포장되어 , 4월 중순경이면 벗꽃으로 만개한다.
벗꽃은 하천 주변 근처에 하루밤 사이의 기온에 따라서 개화가 늦어지고, 빨라지는데, 수백주의 벗꽃을 멀리서 조망 하면, 아무리 청정한 날이라도 아지랑이 같기도 하고, 저녁놀이 아니면 산넘어 화재 같기도`하단다.
설재창 목욕탕 앵화탕 앞에서 지방에서 오는 사람과 상춘객들은 요염한 벗꽃에 도취되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한때는 경부선 특별 전세 열차 편으로 약800여 관객이 하루코스로 들이 닥쳐,
창원천변 꽃밭에서 직매한 마산 명주와 가져온 도시락으로 담소 화락,변잡을 이룬때도 있었단다.
야경은 참으로 백화만등 하여, 남녀 마음도 요란하게 만들고. 만개기의 밤, 천변에는 아무리 도학자요, 금주론자 일지라도퍼져 앉아서 한잔 하지 않을수 없을 만치, 흥에 취하게된단다.
으례~, 술자리나 어께 넘으로 꽃이 붙는데 어쩌다가 술잔에 떨어지면 술 흥취는 더욱 솟구친다.
1920년대의 요정 망월루
경교(무학 아파트 옆 다리) 옆에 자리잡은
동운,망월루(대성갈비뒤편 건물-대요정), 탄월같은 요정에서
고급 기생들의가날픈 가요에,애조를 담뿍 실은 악기소리가 기루에서 흘러내릴때, 마음 없는 길손들에 일말의 애수를 느끼게한다.
한편 천변 북쪽(연애다리)에는 이와 정반대로 벛꽃나무 대신 실실 늘어진 수양 버들 나무가지가 냇물에 뻗었는데, 이곳은 전등이 없는 덕으로 이때를 놓칠세라 밤 어둠을 타서 남녀 쌍쌍이 밀회를 즐기는데 행인들은 냉소를 머금고 통과한다.
벗꽃은 실로 낙화 유정, 유수무의 그것이 아닌가 ,
나는 그대를 정이 있어 왔건마는, 그대는 어이하여 무심하게 흘러가노.
한때 유명하던 벛꽃도 수령근50에 접어든 노목들로 약품을 뿌려 가꾸는 사람 조차 없이 해방의 여독으로 얼마 않있어 60년대에,왜색이 짙다하여 무지한 폭한들의 도끼질에 페허가 되었다.
언젠가는 옛날의 영광을 돼 찾아 아름답고 풍치 좋은 동네로,
가꾸고 다듬어 가야할 사람은 바로 우리동민 인것입니다.
- 전 마산 시의원. 박영철 -
2019년 4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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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다모아님! 꽃비내리는 옛 신마산의 귀한 영상 참으로 감사합니다!
유년의 나이 4 ~ 5세..처음 활동 사진이라고 본 영화가
마산극장에서 상영한 독립운동 관련 내용으로..긴 밴치의 나무 의자에 1시간 동안 신기해 했던 기억이..
2번쩨 기억은
제일극장에서 상영한 "괘인 프랑크슈타인" 였는데..얼마나 무서웠던지..밤새 오줌 누러 가지 못했던 기억이..ㅎㅎ
창원천변 적산가옥이 많았던 기억이..남부철공소 따라 밤에는 야시장이 섯고 길따라 가로등이 신기했고
중학교 때부터는 댓거리 화력발전소 지나 가포 해수욕장 까지 걸어서 ..결핵요양소 지나..~
나의 첫 출생지는 일본식 적산 가옥..! 국민학교 졸업할때 까지 ..잠은 다다미 방에서 자고 ..~
집 한곳엔 절구통 처럼 생긴 목욕통과 神壇이 있었던 기억이
왜색이 짓다하여 ..
몽조리 배어낸 벚꽃의 기억..철거한 아까운 적산가옥 들..모두 문화재로 보존했다라면..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벚꽃나무 아래로
방금 떨어지는 첫사랑을 보았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