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왜 김영란법의 취지를 훼손하려 하는가?
- 청탁금지법 시행령 개정안, 권익위 전원위원회 통과에 부쳐
어제(12/11) 국민권익위원회(이하 권익위) 전원위원회가 식사·선물·경조사비의 상한액을 정한 이른바 ‘3·5·10 조항’을 ‘3·5·5+농축수산물 선물비 10만 원’으로 조정하는 내용의 청탁금지법 시행령 개정안을 상정해 가결 처리했다.
선물비의 경우 농축수산물과 원료·재료의 50% 이상이 농축수산물인 가공품에 한해 상한액을 5만 원에서 10만 원으로 상향 조정하며, 경조사비의 경우 현금 경조사비 상한액을 기존 10만 원에서 5만 원으로 낮추되 화환(결혼식·장례식)은 10만 원까지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개정안은 11월 27일 회의에서 부결된 안과 다르지 않다. 당시 찬성 6명·반대 5명·기권 1명으로 부결됐지만, 정부의 설득을 거쳐 이번에는 표결 없이 참석자 13명 전원 합의로 의결됐다고 한다.
이낙연 총리가 10월부터 “내년 설 전까지 김영란법 개정안을 처리하겠다”라고 여러 차례 말해왔고, 유관 부처인 김영록 농림축산식품부 장관과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이 “내년 설 전 개정”을 적극적으로 촉구해왔기에 청탁금지법의 ‘3·5·10 조항’ 완화는 사실 예정되었던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이번 ‘3·5·10 조항’ 완화 개정안은 청탁금지법의 입법 취지에도 어긋날 뿐만 아니라 국내 농수축산물 생산자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 졸속 정책이다.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3·5·10조항이라는 게 이만큼은 받아도 된다고 허용하는 조항이 아니”다. 원칙적으로 전부 금지하는 것이고, 아주 예외적으로 부득이할 경우의 금액을 규정한 것일 뿐이다.
청탁금지법은 공직자 등의 비리를 규제하는 강화된 반부패법으로 첫 제안자인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의 이름을 따 '김영란법'이라 불린다. 기존의 법으로 처벌하지 못하는 공직자들의 비리를 막기 위해 고안되었으나, 2012년 8월 제안 후 거센 반발로 3년 가까이 표류했다가 세월호 참사 이후 부정부패를 척결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자 2015년 3월 3일 결국 국회를 통과해 2016년 9월 28일부터 시행되었다.
그런데 시행 1년 남짓 지난 시점에서 예외 규정에 불과한 ‘3·5·10 조항’을 농수축산물 생산자의 고충을 빌미로 개정하려는 시도는 청탁금지법의 취지 자체를 흔들 뿐 아니라, 부정부패 척결로 마치 경제가 어려워진 것 같은 착시 효과를 강요한다.
농수축산물 생산자들의 소득 보전은 공직 사회의 부패 방지 목적으로 제정된 청탁금지법의 취지를 훼손하는 방식이 아니라 농수축산업의 보호 육성을 통해 달성해야 한다. 이번 개정안처럼 ‘3·5·10 조항’을 조금 완화하는 것으로 정부는 할 일을 다 했다는 식으로 해버리면 오히려 손을 안 대느니만 못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정부가 나서서 농수축산물 생산자의 고충을 덜어주고자 한다면 다른 방식의 접근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WTO 체제 안에서도 농업 총생산의 10% 수준에서 가격 정책을 병행하는 것이 가능하다. 따라서 이 예산 안에서 기초 농산물에 대한 국가수매제를 실시할 수 있다. 또한, 세계 각국이 식량 안보, 먹을거리 안전, 농업과 농민 보호를 위해 다양한 형태의 로컬푸드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정부 차원의 계획을 통해 공공기관, 학교, 병원 등에서 로컬푸드 사용을 의무화하거나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목표치를 설정해야 한다.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친환경 로컬푸드 무상급식 도입을 의무화할 수도 있을 것이다.
청탁금지법 ‘3·5·10 조항’ 완화로 농수축산물 생산자들의 어려움이 해결될 것처럼 말하는 것은 사기다. 문재인 정부가 정녕 농수축산물 생산자들을 생각한다면, 청탁금지법 완화가 아니라 농수축산업 보호 육성 방안을 내놓길 바란다.
(2017.12.12. 화, 평등 생태 평화를 지향하는 노동당 대변인 류증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