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박종철 열사 30주기 추모제에 부쳐
- 재벌체제 해체하는 대장정에 나서야
1987년 1월 14일 대학생 박종철이 하숙집에서 연행되었다. 치안본부 대공수사관이 책상을 “탁” 치자, 박종철이 “억”하고 죽었다! 물론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독재자 박정희의 뒤를 이어 광주민중학살을 통해 권력을 강탈한 전두환의 폭압적이고 살인적인 통치가 지속되던 시기였다.
멀쩡한 사람을 간첩까지 만들어내는 그들이니 이 정도 거짓말은 식은 죽 먹기였다. 박종철 열사는 단말마적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에 의해 강제 화장당한 채 유골마저 강물에 뿌려지고 말았다. 열사의 아버지 박정기씨는 “종철아 잘 가거라, 아부지는 아무런 할 말이 없데이”라며 탄식했다.
그러나 진실은 밝혀지는 법, 박종철 부검의가 증언한 ‘고문치사 가능성’이 알려지면서 물고문을 가한 2명의 경찰이 밝혀졌다. 이 역시 축소조작이었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노력과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법의학 과장이 ‘질식사 가능성’ 증언으로 치안본부장 등 경찰간부가 구속되기에 이르렀다. 시민들은 “박종철을 살려내라”며 6월 항쟁에 나섰다.
1987년 6월 10일, ‘박종철 고문 살인 은폐 조작 규탄 및 민주 헌법 쟁취 범국민 대회’를 시작으로 전국적으로 호헌 철폐, 독재 정권 타도를 위한 민주화 운동이 벌어졌다. 결국 민정당 대통령후보 노태우의 6.29선언으로 대통령 직선제, 김대중 사면 복권을 비롯한 시국 사범 석방, 언론 자유 보장, 지방 자치제 실시, 자유로운 정당 활동 보장 등 8개 항의 조치를 발표했다.
6.10항쟁은 곧바로 7, 8, 9월 노동자 대투쟁으로 이어졌다. 대통령 직선제는 만들어졌지만 야당분열로 노태우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5년 동안 전노협을 비롯한 민주노조운동 탄압에 나서 노동자 2천여 명을 구속했다. 그 과정에서 김영삼은 군사독재세력과 3당 야합하였다.
노태우의 뒤를 이어 당선된 김영삼은 스스로를 문민정부로 표방하며 세계화를 기치로 신자유주의를 향한 노동법 개악에 나섰다. 1995년 창립한 민주노총은 전면적인 정치총파업에 나섰다. 한 달 동안 연인원 380만 명이 총파업에 나섰고, 파업집회에는 150만 명이 참가했다.
외환위기 이후 들어선 김대중 정부는 경제살리기를 명분으로 신자유주의적 IMF프로그램을 경제정책의 핵심으로 수행했고, 노무현 정권은 한미FTA 등을 통해 이를 더욱 가속화했다. 이명박 정권 역시 자본독재를 강화했다. 유신독재회귀라는 지적까지 받은 박근혜 정권이 붕괴위기에 처하게 된 것은 국헌문란과 국정농단이 드러난 때문이지만 근본원인은 권위주의적인 권력과 부패한 재벌체제 때문이다.
박정희-전두환 이래 지금까지 재벌을 중심으로 한 수출주도형 경제성장 정책에는 변함이 없었다. (파쇼적 권위주의)산업화세력과 (자유주의)민주화세력의 결합이라는 이데올로기가 재벌체제에 면죄부를 부여하였다. 그 위에 보수주의 양당체제가 굳어졌다. 진보정치세력이 뿌리내리기에는 척박한 정치 환경이 고착화됐다. 정권이 보수진영 내에서 시계추처럼 움직이는 사이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인해 재벌은 강화됐고, 비정규직이 늘어났으며, 사회적 양극화와 빈부격차가 심화됐다.
30년 세월동안 박종철 열사와 같은 시기에 독재정권타도와 민주주의 쟁취를 위해 투쟁했던 사람들 상당수는 보수정치판으로 옮겨갔다. 그러나 독재회귀의 박근혜 정권을 몰락시킨 것은 의회주의 보수정치세력이 아니라 1000만 촛불시민의 힘이었다. 다시 10년 만에 정권교체 가능성은 커졌다. 그러나 계급적 의미에서의 세력교체 가능성은 없으며, 더 나아가 재벌체제해체 가능성은 까마득해 보인다.
1월 14일, 박종철 열사 30주기를 맞아 모란공원, 남영동 경찰청 인권센터(옛 대공분실), 광화문 광장 등에서 연이어 추모행사를 열고 열사를 목숨을 바쳐 쟁취하려 했던 ‘민주주의’가 강조됐다. 그러나 의회주의적 자유주의정치를 넘어 노동자시민의 참여정치를, 독점적 재벌체제를 넘어 공동체적 사회공유경제체제를, 87체제 민주노동운동을 넘어 평등한 노동을 향한 새로운 투쟁을 시작해야 한다.
박종철 열사의 죽음이 촉발한 6.10항쟁은 박근혜 퇴진을 위한 1000만 촛불시민항쟁의 밑거름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부패한 권력과 재벌체제, 불평등한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대장정에 나서야 한다. 이것이 박종철 열사 30주기를 맞이하는 시대적 과제이다.
(2017.1.15.일, 평등생태평화 노동당 대변인 허영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