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금융위원회를 차라리 ‘삼성위원회’라고 하든지
- 드러난 부패와 불법 바로잡는 것이 적폐청산의 시작
오늘(10/16) <한겨레신문>은 2007년 삼성 비자금 의혹 관련 특별검사의 결과로 드러난 차명계좌 보유 4조5000억 원 규모의 자금이 삼성특검 이후 실명전환 없이 이건희 회장에 의해 전액 회수된 사실을 보도했다. 부패한 거래, 특혜와 유착, 공권력의 사유화 등으로 얼룩진 삼성과 국가기관의 관계가 다시 한번 드러났다. 드러난 문제조차 바로잡지 못한다면 적폐청산이라는 구호는 공염불에 불과할 것이다.
2007년 특검은 삼성의 내부자였던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 고백으로 시작된 것이다. 김용철 변호사는 이건희 회장의 차명보유 재산이 국가 관료들과의 부패 거래를 주된 목적으로 관리하던 불법 비자금이라 폭로했다. 하지만 조준웅 특검은 비자금 의혹을 무혐의 처리하면서 차명계좌의 재산이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라는 이건희 회장의 주장을 그대로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1998년 차명계좌 형태로 삼성생명 주식 16%를 인수한 거액의 자금 출처는 밝히지 못했다. 당시에 차명계좌의 재산이 불법 비자금으로 인정될 경우 처벌은 물론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뼈대에 해당하는 삼성생명에 대한 이건희 회장의 지분 확보가 위협받을 처지였다. 따라서 조준웅 특검의 이러한 처분은 사법 특혜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조준웅 특검의 아들은 이건희 회장이 이 사건으로 인한 형사처벌에 대해 특별사면을 받은 2009년 12월 31일로부터 보름이 지나 삼성전자 과장으로 입사했다.
특검 이후 삼성은 차명 보유 재산을 실명으로 전환하고 누락된 세금을 내겠다고 대국민 발표 형식으로 약속했지만, 결과는 또다시 대국민 사기로 드러났다. 이건희 일가는 실명 전환하지 않고 재산을 인출함으로써 금융실명제법에 따른 ‘조 단위’의 과징금과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게 되었다. 특검에 의한 사법 특혜에 연이어 금융 및 조세 특혜가 이어진 것이다. 삼성에 이런 어처구니없는 특혜를 베푼 국가기구는 금융위원회였다. 2008년 당시 금융위가 “차명계좌는 비실명자산이 아니기 때문에 실명 전환의 대상이 아니다”는 자체 해석을 근거로 실명전환 없이 차명계좌의 자금을 인출한 행위에 아무런 제재를 부과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금융위의 해석대로라면 금융실명제법은 껍데기만 남게 된다.
금융위가 이건희 일가의 삼성그룹 지배라는 하나의 이해를 위해 금융 관련 법을 ‘삼성 맞춤형’으로 해석하고 제정하고 개정해온 역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현실이다. 2004년 구 삼성에버랜드가 보유한 삼성생명 주식 가치가 급등해 에버랜드가 금융지주회사법이 규정한 금융지주회사 요건을 충족하게 되었다. 금융지주회사법은 금융지주회사에 대해 금융위(당시 금감위)의 인가를 받도록 하게 되어 있었다. 에버랜드가 인가를 받지 않고 금융지주회사가 된 불법 상태에 대해 금감위는 아무런 벌칙을 부과하지 않고 이를 그대로 사후적으로 인정하는 금융지주사회사법 개정안을 2006년에 냈고, 이 개정안은 2007년 국회를 통과했다.
삼성생명의 ‘금융산업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 제24조 위반 역시 금융위에 의해 비슷한 특혜로 귀결되고 말았다. 삼성생명(금융기관)은 2006년 삼성전자(비금융 계열사)에 대한 지분 보유 한도(5%)를 넘어 삼성전자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고, 이는 금산법 24조 위반이었다. 금융위(당시 금감위)는 강제매각 처분 대신 의결권만 제한하는 금산법 개정안을 내어 삼성생명의 법 위반 상태를 사후적으로 정당화했다.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의 지분은 보험사의 계열사에 대한 지분 보유액을 보험사 총자산의 3% 미만으로 제한하고 있는 보험업법도 위반하고 있지만, 금융위는 자신들이 제·개정 권한을 가진 보험업법 감독규정을 통해 삼성생명의 보험업법 위반 상태를 합법화하고 있다.
국가기구 전체가 삼성과 재벌에 의해 매수된 상태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였다. 문재인 정부는 ‘적폐청산’이라는 말로 과거의 정경유착과 부패를 없애겠다는 의지를 밝힌 바 있다. 진정으로 적폐청산의 의지가 있다면 드러난 문제부터 발본색원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 이건희 일가와 삼성그룹의 사적인 이해를 위해 법과 제도가 왜곡되고, 세금이 포탈되며, 국가기구와 재벌기업의 불법 거래가 묵인되는 상태가 계속되는 한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은 신뢰를 갖지 못할 것이다.
(2017.10.16. 월, 평등 생태 평화를 지향하는 노동당 대변인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