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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이런 3박자라면 꾸준한 자기(自己) 발전(發展)의 노력(努力)이 있어야 하겠네요? 결코 만만하지는 않군요. 그럼 산 타는 방법 은 어떤 것입니까?
일 : 입산(入山)하기 전에 우선 어느 산을 오를 것인지 부터 결정 하세나. 우리가 산행(山行) 목적지(目的地)에 도착(倒着)하면 주변(周邊)에 산세(山勢)가 펼쳐져 있게되지. 대부분 사람들이 멀리서 산을 보고 방향(方向)을 잡는다네. 이런 경우 자네라면 어느 기준(基準)에서 산(山)을 선택(選擇)하겠는가?
영 : 그야 한눈에 쏘옥 들어오는 좋은 숲이 있는 곳이죠. 소나무가 우거진, 그래서 소나무 숲을 따라 진행(進行)하면 잡풀, 잡목(雜木)도 별로 없고 시선(視線)을 방해(妨害)하는 것 또한 거의 없고요. 습도(濕度)도 좋고 채광(採光)도 좋으니 이런 곳은 분위기(雰圍氣)가 우선 압도(壓倒)하지 않습니까. 누구든 이런 곳을 우선적(優先的)으로 선택(選擇)하지 않을까요. 명품(名品)이 나올 것 같으니까.
일 : 그것이 바로 헛점이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내 눈에 좋아 보이는 숲은 남의 눈에도 좋아 보이는 것이지. 우리 산야(山野)에 처녀지(處女地)가 없다는 채란인(採蘭人)들의 말마따나 해가 거듭되면서 이곳 역시 수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닿았을 거라고 생각해보게. 많은 사람들이 좋아 보이는 곳만 골라 탐란(探蘭)했을 것이고, 그런 곳이라면 초보(初步)의 눈에도 그럴싸해 보인다. 누구든지 우선적(優先的)으로 그곳을 공략(攻略)하겠지. 초보(初步)에서 소위(所爲) 베테랑까지. 그런 곳에서 무슨 물건이 남아 있겠는가. 그런데도 그 점(点)을 경시(輕視)하고 행운(幸運)만 바라며 같은 코스를 답습(踏襲)한다면 채란율(採蘭率)은 제로에 가까울 것은 뻔한 일이 아닌가. 일정(一定) 장소(場所)에 변이종(變異種)은 몇 포기나 존재(存在) 할 것인가? 먼저 왔던 선배들이 가져가 버리고 난 뒤끝에 새로운 변이종의 탄생(誕生)은 또 몇 년이 흘러야 가능(可能)하겠는가. 포자(胞子)가 떨어져서 신아(新芽)로 태어나는데 보통 5~7년이 걸린다더군. 그사이 이 코스를 선택(選擇)하고 하루 산행(山行)을 한 난인의 숫자가 그 얼마며, 반복(反復)된 산행이 십 수년에 걸쳐 똑같이 행해질진대 어찌 그런 결정적(決定的) 헛점을 경시(輕視)한단 말인가? 그래서 나는 이렇게 쉽게 눈에 들어오는 좋은 숲을 가리켜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라고 표현(表現)한다네.
영 : 듣고 보니 그렇군요. 그렇다면 우선적으로 사람들이 꺼려할 만한 곳을 택한다?
일 : 그렇지, 그게 1 순위지. 서두(序頭)에 말 햇지만 포자(胞子)는 어느 곳이든 마다 않고 바람에 날려가며, 숲이 거칠다고, 북벽(北壁) 가시 넝쿨이라고 거부(拒否)하지 않지. 그리고 그런 곳에서도 혼신(渾身)의 힘을 다해 싹을 틔운다네. 우리는 이 부분을 직시(直視)해야 하고 난인 들이 잘 타지 않는 곳만 골라 입산(入山)한다면 채란(採蘭) 확율(確率)은 상대적(相對的)으로 높아 질 거라고 보지. 이렇게 산행하기 어려운 곳만 골라 탈 때는 위축(萎縮)된 자신(自身)을 일깨우기 위해 “저수지에 고기 없을까?”라고 자위(自慰)하기도 하지.
영 : 하긴 북벽(北壁) 가시 덩쿨 숲에도 난(蘭)은 많더라구요. 산행(山行)이 힘들어 피해 다녀서 그렇지.
일 : 또한 초입(初入)에서 코스를 정할 때, 그 장소(場所)에서 앞으로 진행(進行)할 방향(方向)도 염두(念頭)에 두어 행로(行路)를 정해야 되네. 보이는 면이 북벽인 산이 있다고 하세. 경사(傾斜)는 완만(緩慢)해서 괜찮으나 숲이 너무 거칠고 난이 없어 보인다, 이럴 땐 뒤편 산도 계산(計算)에 넣도록 하게. 이 쪽이 북향(北向)이니까 대부분(大部分) 뒤편은 남향(南向)이 되기 십상이지. 남벽(南壁)은 거의가 숲이 좋아 난이 많다네. 지리적(地理的)으로 산 뒤편에 사람이 들기 어렵겠다 싶으면 하루 일정(日程)을 계산(計算)하여 지형(地形)지물(地物)을 철저하게 익혀야 한다네. 이것이 바로 “악산(惡山) 뒤에 양산(養山)”이라는 말일세.
이렇게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고려하여 코스를 생각한 다음 길을 살피게. 사람 통행(通行)이 많은 곳은 절로 길이 다듬어지며 바닥에 풀도 별로 없고 길 옆 넝쿨들도 치위 져 있지. 상황(狀況)에 따라 통행이 빈번(頻繁)한 길인지 뜸했던 길인지 판단(判斷)해야 된다네. 또 멀리서 내다보아 산길이 넓고 뚫린 곳 같으면 계곡(溪谷) 초입(初入)의 야산(野山)을 공략(攻略)하는 것이 의외로 수확(收穫)이 좋을 때도 있다네. 산세(山勢)가 깊을수록 사람들은 안으로만 들어가고 기대(期待)와 흥분(興奮)에 들떠 바로 코앞의 산을 경시(輕視)하기 때문이지. 또 사람들은 입산(入山)하면서 흔적(痕迹)을 많이 남기지. 시원한 산길 옆에 두고 물론 기대(期待) 심리(心理)겠지만 꼭 자기만의 샛길을 낸다든 가 하는, 이때 나무 가지가 부러지고 발자국을 남기며 풀이 뽑힌다네. 이런 흔적(痕迹)이 많으냐 적으냐에 따라 바로 코앞의 산도 입산(入山) 여부(與否)가 가려지겠지. 초입(初入)이 아니다 싶으면 흔적이 끊길 때까지 깊이 깊이 들어 가보게. 물론 들어가면서도 흔적을 찾는 것에 게을러서는 않 되겠지. 총체적(總體的)으로 판단(判斷)해야 하니까. 채란(採蘭)은 고생(苦生)의 시작(始作)이다 각오(覺悟)하고, 이런 과정(過程)으로 코스를 정해야 한다네.
영 : 별 것 아니잖아. 채란인(採蘭人)들이 찾고자하는 처녀지(處女地)가 가까운 곳에서 인적(人跡)만 피하면 된다는 이야기잖아요.
일 : 물론 난인 들이 처녀지(處女地)를 갈망(渴望)하는 것은 그만큼 채란(採蘭) 확률(確率)이 높기 때문이지. 최소한 몇 년 내에는 난인 의 발길이 닿지 않았다고 여겨지는 곳, 이러한 곳이 넓지는 않지만 찾아보면 제법 많다네. 무슨 말인고 하니 사람들의 발길이 빈번(頻繁)했던 산인데도 어느 특정(特定) 장소(적게는 서너 평 정도에서 많게는 20~30평 정도까지)는 몇 년 동안 사람들의 흔적(痕迹)을 전혀 찾아 볼 수 없으며 서로 약속(約束)이나 한 듯이 그 지역(地域)만 제쳐두고 탐란(探蘭)했다는 것이네. 이렇게 사람들이 제쳐 둘만 한 곳만 찾아다닌다면 그날의 채란(採蘭) 은 어떻겠나? 자 이런 가능성(可能性)이 있을만한 곳을 산에서 찾아보세. 어느 산을 막론하고 산아래 자락(보통 1~2부 능선)은 햇빛이 잘 들지. 또한 이런 곳은 키 작은 잡목, 잡풀이 우거져 거칠다네. 반면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산길이 바로 옆을 지나가거나 논, 밭 등 시선이 트인 곳과 맞닿아 있기 마련이지. 이런 지리적(地理的) 특성(特性)과 채란(採蘭)의 어려움으로 대부분(大部分)의 사람들이 이런 곳을 그냥 지나치거나 직선(直線) 통과(通過)한다는 것일세. 이렇게 낮고 시선이 트인 곳에 무슨 물건이 있겠나 하는 심사(心思)겠지.
하지만 그것이 맹점(盲點)이라네.(호나 단엽, 서 개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1, 2부 능선만 집중적으로 공략한다. 이런 개체는 채광과 통풍이 특히 중요한 종자들이다. 확율상 이런 곳이 아니면 어디서 찾으랴.) 사람들이 소흘 히 하는 1~2부 능선(稜線)이 처녀지(處女地)가 있을만한 첫 번째 후보지(候補地)다 그런 말일세.
다음 더 올라가면 3부에서 8부 능선(稜線)까지는 산에 오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여들어 반상회(班常會)가 열리는 장소가 된다. 보통 접근(接近)이 쉬우므로 어느 산이든지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장소(場所)라는 것이다. 이런 곳에서 무엇을 기대(期待)한다는 말인가?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각선(對角線) 이동(移動)으로 산 한 두개를 거쳐 7~8부 능선에 이를 쯤 이면 체력(體力)과 집중력(集中力)이 저하(低下)되는 시점(始點)이다. 또한 정상(頂上)이 눈에 들어오기 때문에 기대(期待) 심리(心理)가 떨어져 산만(散漫)해진다. 이런 이유로 9~10부 능선에 오르면 부분적인 처녀지가 제법 눈에 뜨인다. 나무 또한 작아지며 통풍(通風)과 채광량(採光量)이 좋아진다. 이런 곳이 무늬 종과 좋은 색화(色花)를 기대(期待)할 수 있는 두 번째가 아니겠는가.
다음은 산채(山採)의 특성(特性)으로 찾아볼까. 많은 사람들이 계곡(溪谷) 주변(周邊)으로 산을 오른다. 행동(行動)하는데 거추장스러운 것이 적고 산세(山勢)가 부드러우며 신아(新芽)에서 대주(大株)까지 분포(分包)가 다양(多樣)하기에 사람들이 좋아하는 곳이다. 이런 곳 또한 소문난 곳이다. 반대로 사람들의 흔적(痕迹)이 없다면 홈런 한방도 날릴 수 있는 곳이다. 따라서 흔적(痕迹) 유무(有無)를 꼼꼼히 따져 결정(決定)해야 한다. 산행을 할 때 우리는 철저하리 만큼 배타적(排他的)으로 접근(接近)해야 할 필요가있다. 사감(私感)과 분위기(雰圍氣)에 유혹(誘惑)되지 않고 냉정(冷情)한 판단(判斷)과 논리적(論理的) 사고(思考)로 개념(槪念)을 정리(整理)하여 채란(採蘭) 확율(確率)이 높은 쪽을 선택(選擇)한다. 이것이 전문가(專門家)고 프로의식이다. 빈손으로 내려온다면 일상(日常)의 하루처럼(?) 여길 수도 있겠지만 결국은 내 생의 하루를 무의미(無意味)하게 낭비(浪費)하는 셈이다.
계곡(溪谷) 쪽으로 산을 올라가는 것이 무의미(無意味)하다면 어느 쪽이냐? 경험상(經驗上) 산이 배처럼 불거진 부분(이쪽 계곡과 다음 계곡의 중간 부분쯤)에 발길이 뜸하다. 수평(垂平)이동(移動)은 해갔으나 1부에서 10부까지 수직(垂直)상승(上昇)은 어렵다는 이야기다. 이런 곳은 잡목(雜木)과 숲이 많아 시야(視野)를 가리고 거칠다. 또한 상대적으로 채광(採光)이 좋고 부엽층(腐葉層)이 얇다. 부엽층은 난(蘭)의 생멸(生滅)에 결정적(決定的) 요인(要因)이 된다.
영 : 부엽층(腐葉層)이라면 낙엽(落葉)이 쌓인 것을 말하는 것이지요? 그걸 중요하게 봅니까?
일 : 학문적(學問的) 근거(根據) 제시(提示)보다는 일반적(一般的)으로 접근(接近)하겠네. 그저 경험(經驗)에서 나온 부분(部分)만 이야기하자면 나는 산길을 가다가 발바닥을 통해 땅의 감각(感覺)이 느껴지지 않으면 무조건 방향(方向)을 틀어버리네. 다시 말해 땅의 딱딱한 감촉(感觸)이 없을 만큼 부엽층(腐葉層)이 깊으면 그런 곳에서는 헛수고만 한다는 것이지.
영 : 왜 그렇지요?
일 : 결론적(結論的)으로 새로운 공급원(供給源)이 없기 때문이지. 그런 곳에서는 거의 대부분의 난(蘭)이 대주(大株)라네. 열 몇 촉에서 스무 촉 이상씩의. 이런 대주(大株)들이 몇 십년 세월(歲月) 동안 꽃대가 맺히고 포자(胞子)가 떨어지길 얼마나 반복(反復)했을까? 그러함에도 이런 곳에는 신아(新芽)가 보이질 않네. 단적(端的)으로 환경(環境)이 열악(劣惡)함을 나타내는 것 아니겠나? 포자(胞子)가 발아(發芽)하지 못할 만큼.
사람 눈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아 보이는 생태적(生態的) 환경(環境)임에도 불구(不久)하고 새로운 공급원(供給源)이 생성(生成)되지 않았다면? 그 위에 십 수년의 세월(歲月)이 얹히고 그사이 많은 사람이 이곳을 다녀갔다고 생각하면 나의 눈에 이런 곳이 좋게 보일 리가 없지. 그래도 혹시나 하고 산을 탔다가 역시나 하고 산을 내려온다면 또 하루를 낭비(浪費)한 셈이 되겠지. 우리는 한사코 냉철(冷徹)하게 판단(判斷)해야 함을 염두(念頭)에 두게나.
영 : 결국 거듭되는 과정(科程)에서 새로운 변이종(變異種) 공급(供給)이 없으니 그나마 몇 안되는 물건을 다 캐 가버린 뒤끝이라 헛수고만 한다 이 말이군요.
일 : 반면(反面)에 숲이 좋아 보이지 않는 잡목(雜木) 숲이나 혼합림(混合林)의 바닥은 부엽층(腐葉層)이 얇네. 예상외(豫想外)로 신아(新芽) 생성(生成)이 잘 되고 있다는 이야기지. 실상(實狀)이 이럴진대 굳이 소나무 숲만 고집할 필요가 있겠는가?
영 : 그렇군요.
일 : 다음으로 경계선상(境界線上)을 따라 이동(移動)해야하네. 이동 중에 수시로 산세(山勢)와 환경(環境)이 바뀜을 알 수 있지. 숲이 멈추고 계곡(溪谷)이 있다든가 돌산이 가로막든가 아니면 좋은 숲에서 갑작스럽게 나타나는 변화(變化)에 사람들이 쉽게 적응(適應)하지 못한다는 점을 주시(注視)해야하네. 그래서 이런 경계선상(境界線上)의 폭 4~5m를 공략(攻略)해야 한다는 것이네. 위아래로 전진(前進)하면서.
영 : 그런 곳은 사람들이 너무도 쉽게 무시 해버리는 곳인데…, 정말 요점(要點)만 간추리는군요.
일 : 산채(山採)에서는 인적(人跡)을 피하는 것이 최선(最先)일세.
영 : 그러자면 자연(自然) 심리(心理) 파악(把握)이 우선(優先) 되어야 하겠습니다.
일 : 어느 저수지(貯水池)든 고기는 있기 마련이니까.
영 : 막연(漠然)한 심정(心情)으로 그저 운만 바라고 무작정(無酌定) 산행(山行)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산을 읽고 들여다보듯 전진(前進)한다? 그야말로 독특합니다. 이렇게 체계적(體系的)이라면 변이종(變異種) 찾는 것도 도식화(圖式化) 되었겠네요. 그렇다면 구체적(具體的)인 방법(方法)에 대해서 들어보고 싶군요.
일: 몇 군데 더 짚고 넘어 갈 것이 있네. 우리는 산을 이동하면서 산길도 많이 이용하지. 초입(初入)에서 목적(目的)한곳까지 이동(移動)중 이라던가, 아니다 싶어 산을 바꿀 때라던가. 그런데 산길이 보통 1~2부 능선(稜線)을 따라가기 십상이거든. 지형상(地形上) 산길 아래쪽은 폭 넓은 계곡(溪谷)이거나, 논밭, 폭 좁은 야산(野山)으로 되어 있지 않나? 이런 산길 아래쪽이 또한 알려지지 않는 곳이라네. 누구나 한번쯤은 건성으로 시선(視線)을 주고 지나가나 꼼꼼하게 탐란(探蘭)을 하지 않는다네. 협소(狹小)한 면적(面積)이라 하루 일정(日程)중에 시간(時間) 배당(配當)이 여의치 않아서 일 테지. 이런 곳을 따라가며 채란 해도 언젠가 월척(越尺)을 올리는 때가 있을 걸세.
영 : 그렇군요. 그런 곳도 헛점 투성이 입니다. 난(蘭)이 분포(分包)하는데도 귀찮아서 무시(無始)해 버리는 곳이지요.
일 : 사람이 생(生)을 살아가며 들여다 볼 수 없는 것이 한두 가지이겠는가 마는 하늘의 변화(變化)와 땅의 조화(調和)는 영역(領域) 밖의 불가침(不可侵)의 성역(聖域)일 것이네. 무슨 말인고 하니 채란(採蘭) 하는 과정(科程)에서 인연(因緣) 또한 무시(無始)할 수 없는 요인(要因)으로 작용(作用)한다 이 말일세. 이걸 점지(點指)라고 표현(表現)하며 산행을 하다보면 도저히 감(感)이 잡히지 않는 날도 있을 걸세. 이런 날에는 인연(因緣)을 믿고 수직(垂直) 등산(登山)을 하라 는 것일세.
사방(四方)에 발자국 투성이라서 어디로 가야할지 막막할 적엔 무조건 폭4~5m를 잡고 정상(頂上)을 향해 똑바로 올라 보라는 것일세. 내려 설 때도 마찬가지고. 일컬어 “수직상승, 수작하강”의 방법인데 언젠가는 고개를 끄덕일 때가 있을 걸세.
그리고 포자(胞子)가 바람에 날려 분산(分散)되기 때문에 물건이 나온 바탕에서는 형제주(兄弟株)나 변화주(變化株)를 꼭 챙기도록 하게나.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어떤 곳에서는 2~3주(株)가 연(連)이어 나타나는 곳도 있기 때문이지. 해마다 신아(新芽)가 나온 바탕을 기록하여 이듬해 다시 그 바탕을 확인(確認)하는 것도 중요하네. 호(縞)가 나온 곳의 산반(散叛)과 사피(蛇皮)는 변화주(變化株)에 속한다네. 반대로 산반이 보인 곳의 호(縞) 는 변화주(變化株)가 되니 이 또한 가볍게 여겨서는 않될 것이야. 자 여기까지가 내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內容)일세.
영 : 용기(勇氣) 백배(百倍) 입니다.
일 : 덧붙이건대 어디까지나 개인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라 학문적(學問的) 이치(理致)에서 벗어 난 것도 있을 테고 생각이 다른 부분도 있을 거라네. 다만 이런 방법도 있다라고 참고(參考)하는 선에서 받아들이게나. 이제 조금 쉬었다가 산에서 변이 종을 찾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뉘 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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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산에서 변이을 찾는 방법 기대되네요^*^
일리가 있습니다 근데 염려되는 것은 다 알아 버렸으니 - 이제 변이종은 끝났다 싶네요....ㅎㅎㅎ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산행에 유익한정보 감사드립니다^^ 다음 영과일의 이야기3 산에서 변이종을 찾는방법이 기대됩니다 이장님 수고하셨습니다 좋은하루 되십시요,,,
좋은 글 퍼 갑니다.
좋은 글 잘 보았어요,
그래도 상에서 만나는것은 인연이 있어야겠죠
상식을 깨는 유익한글 역발상 해서 산을 타봐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