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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零)과 일(壹)의 이야기
식물(植物)은 물리적(物理的)인 힘에 의해 이동(移動)되지 않는 한 뿌리 내린 곳이
영원(永遠)한 안식처(安息處)가 된다. 그리하여 우리는 너무도 의외(意外)인 곳에서
난(蘭)의 명품(名品)을 만나곤 한다. 蘭이 좋아 山에 오르지만 경험(經驗)이 없
어 방황(彷徨)하는 영(零)과, 채란(採蘭)에 어느 정도 일가견(一家見)이 있는 일(壹)의 대화(對話)를통해 채란(採蘭)의 해법(解法)을 엿본다.
* 글쓴이 오광택 님 : 전남 화순군 남면 검산리 274
월간지 난과 생활 1999년 10월~2002년 9월 호에서 연제 된 내용으로 이슈를 일으켰든 글을 옮김
식물(植物)은 이동성(移動性)이 없다. 다만 번식(繁殖)의 수단(手段)으로 수많은 포자(胞子)를 바람에 날려보낼 뿐…
바람은 그 수많은 포자를 어느 산, 어느 모퉁이를 가리지 않고 내려놓는다. 그곳이 바위 틈 이건, 북벽(北壁) 의 가시 덩쿨 속이건, 소로(小路)의 한 가운데 건, 산 정상(頂上)의 무덤 가건 따지지 않은 채, 물리적(物理的)인 힘에 의한 움직임이 아니면 그곳이 그들의 마지막 안식처(安息處)가 될 것이다. 적자생존(適者生存)의 원칙(原則)에 따라 악조건(惡條件)의 환경(環境)에서도 신아(新芽)로 태어나는 포자(胞子)에 한해서.
실제로 그렇다는 것을 우리는 산행(山行)을 통해 확인(確認)할 수 있다. 너무도 거친 곳에서, 의외(意外)의 곳에서 명품(名品)을 만날 수 있었으니까. 한번 뿌리를 내리면 외적(外的) 물리력(物理力)이 아니고서는 고사(枯死)하지 않는 한 그 자리를 벗어 날수 없다. 숙명(宿命)이기에…
영(零)과 일(壹)의 이야기는 한번 뿌리 내린 난(蘭)은 사람의 눈을 피해 숨을 수 없다는 사실(事實)을 대명제(大命題)로 하여 채란(採蘭)의 해법(解法)을 찾고자 하는 것이다.
난(蘭)이 좋아 산을 찾는 蘭人 중 경험(經驗)이 짧아 산에서 방황(彷徨)하는 그러한 집단(集團)을 영(零)이라 칭(稱)하고, 나름의 요령(要領)과 방법(方法)을 체득(體得)하여 명쾌(明快)하게 채란(採蘭) 하며 일가견(一家見)을 갖춘 듯 행세(行勢)하는 집단(集團) 중 일인(一人)을 일(壹)이라 명(命)했다. 지식(知識)과 안목(眼目)의 차이야 백지 한 장일지 모르나 결과(結果)는 너무도 판이하니 한번쯤 귀 기울여 봐도 괜찮지 않을까?
본문
영 : 본격적(本格的)인 시즌(season)을 목전(目前)에 두고 기대(期待)와 흥분(興奮)보다는 초조(焦燥)함이 앞서내요.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라고 너무도 열심히 이산 저산 헤매고 다녔는데, 수년(數年)에 걸친 산행(山行)을 정산(定算)하면 한숨뿐. 도대체 어느 산 어느 곳을 찾아야 변이종(變異種)을 찾을 수 있을지 막연(漠然)합니다. 작년 시즌에도 선배(先輩)의 수확(收穫)은 좋았지요? 무슨 비결(秘訣)이 있는 겁니까?
일 : 특별(特別)한 비법(秘法)이라기보다도 나름대로의 방법(方法)을 갖 취야 하는 것이 아닐까?
영 : 무리한 부탁일까요? 그 방법을 공개(公開)하라면. 초심자(初心者)는 물론이요 경험(經驗)이 풍부(豊富)한 난인(蘭人) 들도 일부분(一部分) 참고(參考) 할 수 있는 새로운 계기(契機)가 될 텐데요.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신선(新鮮)한 전기(轉機)요 난계(蘭界) 발전(發展)의 주춧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일: 너무 거창하군. 원한다면 본인의 주관적(主觀的) 견해(見解)를 피력(披瀝)하겠네.
그러나 한가지 짚고 넘어가세. 이건 나 개인(個人)이 체득(體得)하여 주장(主張)하는 방법(方法)이라 오차(誤差)가 클 수 있네. 전체적(全體的)으로 참고(參考)는 하되 무슨 쪽 집게 비법(秘法)인양 맹신(盲信)해서는 않 될 것이네. 또한 모두가 하나되어 연구(硏究)․관찰(觀察)하고 난계(蘭界) 발전(發展)이란 명제(命題) 하에 자기(自己) 발전(發展)의 방법(方法)을 홍보(弘報)하여야 될 걸로 믿네.
영 : 일반론적(一般論的)인 이야기라 생각됩니다. 일말(一抹)의 기대(期待)심리(心理)도 생긴다면 막연(漠然)한 심정(心情)에 한 가닥 촞불이 될 수도 있겠지요. 그거면 족(足)합니다.
일 : 좋아. 그럼 이야기를 시작해 보세. 우선(于先)산행(山行)에서 채란율(採蘭率)을 높이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3박자를 갖추어야 한다고 보네.
첫째, 꾸준한 인내(忍耐)와 집중력(集中力)의 소유자(所有者)가 되어야 한다는 것.
둘째, 산행(山行)경험(經驗)을 많이 갖추어 약간(若干)의 변화(變化)에도 민감(敏感)하게 반응(反應)할 수 있는 동물적(動物的)인 선구안(選球眼)을 가질 것.
셋째, 항상 무심(無心)의 자세(姿勢)를 견지(堅持) 할 것. 이상의 3박자네. 이와 같은 기본적(基本的)인 모양새를 갖추었다고 전제(前提)한 다음 산행(山行) 방법(方法)을 두 가지로 나누어서, 하나는 산 속 상황(狀況)에 대처(對處)하며 산을 타는 법, 다른 하나는 색(色)과 형태(形態)를 알고 물건(物件)을 찾는 법(法)으로 설명(說明)하겠네.
영 : …
일 : 부연(敷衍)설명(說明)을 하자면 3박자 중 첫째는, 산행(山行) 시 보편적(普遍的)으로 입산(入山) 2~3시간 정도가 지나면 체력(體力), 집중력(集中力), 감각(感覺) 등이 급격히 저하(低下)된다는 것을 알아야 하네. 이 시간대(時間帶)가 지나면 하루 여정(旅程)중 나머지 2/3에 해당하는 시간엔 반 최면(催眠) 상태(狀態), 즉 본인이 의식(意識)하지 못하는 혼돈(混沌)의 상태(狀態)가 되고 말지. 그 상태는 난 잎에 나타나는 작은 변화(變化)를 눈으로 보면서도 깨닫지 못하고 지나칠 정도로 심각(深刻)한 것이네. 무슨 말인고 하니, 속도감(速度感)이 붙어 사물(事物)을 정확(正確)히 알려하지 않고 건성(乾性)으로 부정(不正)해 버리는 신경(神經)이 이완(弛緩)된 상태(狀態)다 이 말일세. 그래서 나 같은 경우 타인(他人)의 이런 상태까지 감안(勘案)하여 등산(登山)할 때도 있네. 직선(直線)행보(行步) 하여 타인의 2~3시간 분량(分量)을 뛰어 넘는 거지. 그리하여 타인들의 시선(視線)이 분산(分散)되었다고 여겨지는 지점(地點)에서부터 본격(本格)산행(山行)을 시작(始作)하기도 하네.
영 : 산(山) 속에서 타인(他人)의 집중력(集中力)이 떨어진 것인지 산만(散漫)한 것인지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일 : 오죽하면 채란(採蘭)을 심리전(心理戰)에 비유(比喩)하겠는가. 지면(地面)에 남겨진 발자국, 난이 해쳐진 이곳에서 다음 해쳐진 난과의 거리(距離)나 방향(方向), 신아(新芽)에 손을 댔는지 대주(大株)를 살폈는지 등 전체적(全體的)으로 분석(分析), 추리(推理)해 보면 많은 것을 알 수 있지 않겠나? 점심을 먹은 흔적(痕迹)이 있다 치세. 그런데 그 주변(周邊)이 신아(新芽) 밭이었다. 놓칠 수 없는 밭이 아닌가. 그냥 지나칠 것인가, 아니면 숱한 발자국을 무시(無視)하고 샅샅이 훑을 것인가. 중요한 갈림길이겠지. 어떤 선택(選擇)이냐에 따라 채란(採蘭)과 허탕(虛蕩)의 교차로(交叉路) 가 되겠지. 이럴 때 판단(判斷)이 얼마나 중요하겠나.(일반적으로 많은 흔적이 아니라면 사람들이 모였다 흩어지는 곳의 주변이 신아 밭이었다면 무조건 꼼꼼히 보아야한다.) 우선(于先) 발자국을 보고 이 사람들이 내려가는 방향(方向)인지(발뒤꿈치 자국이 깊이 패였다면 내려가는 길이다. 이런 발자국은 채란(採蘭)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 탐란(探蘭)이 건성이기에), 옆으로 가는지(探蘭에 熱中하기에 헤쳐진 蘭의 距離를 보고 判斷해야 한다. 距離가 많을 때는 이 발자국을 無視해도 좋다), 이 바탕으로 꼼꼼히 탐란(探蘭) 했는지 의 여부(與否)를 가리고 보폭(步幅)을 따져 건성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겠지. 또한 흔적(痕迹)이 남겨진 난(蘭)이 연달아 있는지 띄엄띄엄 있는지를 보고 그 사람의 집중력(集中力)을 알 수 있겠지. 다음은 혹시 채란(採蘭) 된 흔적(痕迹)이 있는지의 확인(채란 된 흔적이 있다면 무조건 그 장소에서 벗어나라. 이때의 집중력은 평소의 배에 달하니까)에 따라 그 흔적(痕迹)의 경과(經過) 된 시간(時間)을 유추(類推)해 보고 형제주(兄弟株)를 찾는 것인지, 신아(新芽) 밭이기에 습관적(習慣的)으로 탐란(探蘭) 한 것인지 등 전체적(全體的)으로 판단(判斷)하고 결정(決定)을 내려야 한다는 것이지. 신아 밭 백여 평 정도면 꽤 시간이 걸릴 것이니까. 새로운 공급원(供給源) 아닌가?
영 : 허어 참. 이렇게 된다면 뒷사람 을 위해서 일부러 라도 흔적을 남겨야 겠군요.
일 : 기술적(技術的) 차원(次元)에서는 배려라 할 수 있겠지. 그러나 상대적(相對的)으로 나의 몫이 적어진다고 생각하면 조금치 의 흔적도 남겨서는 않 되겠지.
영 : 겨울 산, 소나무 가지 사이로 스며드는 잔광(殘光)을 얼굴에 가득 받은 채 고목(古木) 등걸에 걸터앉아 한 모금 연기에 세상(世上) 번민(煩悶) 다 부어버리고, 한 폭의 묵화(墨畵)처럼 신선(神仙)되어 독야청청(獨也靑靑)하려 했더니 이미 물 건너갔군요. 좋았어. 이번엔 산 속의 홈즈가 되는 거야.
일 : 아가사 크리스티 여사(女士)는 어떤가? 그 사람이 산에서 채란을 한다면 어떤 모습일까? 우리처럼 네발로 길까? 마음 돌아선 여인(女人)처럼 차갑게 식어버린 김치로 돌돌 말아 헤질 대로 헤져 속살 드러낸 김밥 앞에 두고, 허공(虛空)에 분산(分散)하는 진눈깨비 이슬 되어 빗물 되어 이내심사 뒤집으면, 에라 모르겠다 산신령(山神靈)님 난(蘭) 캔다고 구전(口傳)되는 것 들었느냐? 이내 마음 신선 되어 북풍(北風)에 비산(飛散) 하는 눈발 같다. 이내 마음 금방 산 되고, 난 되고, 토끼 되어 바위틈에 숨어들고 시름은 구름 속에 녹아내려 산야(山野)를 뒤덮는다. 뉘라서 이 마음에 고즈넉한 술잔을 들어줄까. 이 겨울의 조명(照明)은 난(蘭)이 해주는 게 아니었을까.
영 : 겨울 산행(山行)은 정말 운치(韻致)가 있어요.
일 : 그렇다면 다음으로 넘어가서 이야기를 계속하세. 평상시(平常時) 개체(個體)의 특성(特性)을 잠재의식(潛在意識)에 입력(入力)시키는 작업(作業)이 수시(隨時)로 행해 져야 한다네. 살짝 시선(視線)이 스쳐 가는 순간에 옥석(玉石)을 구분(區分)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취야 한다는 것이지. 무늬 종(種)의 변화(變化)는 천차만별(千差萬別)일세. 떡잎에 묻어나는 실호로부터 중반(中斑)까지, 엽심(葉心)에 걸쳐진 호(縞)도 있고 무지(無地)에서 나와 엷게 벗겨지듯 들어가는 연호(軟縞)도 있지. 복륜(覆輪) 역시 조복(爪覆)에서 시작하여 편복(片覆), 사복(絲覆), 연복(軟覆)등 너무도 다양(多樣)하지. 평소 잡지 속의 그림이나 타인(他人)의 난(특히 난원에 자주 들러 산채 품을 많이 볼 것. 산채 품과 배양 품엔 많은 차이가 있다)을 구경하면서 이런 모양새를 일일이 기억(記憶), 입력(入力) 시켜놓으면 산행(山行)에서 쉽게 놓치지 않지. 또한 산행에서 무늬의 폭, 길이, 선명도를 불문(不問)하고 엽심(葉心)에 채색(彩色)된 신아(新芽)를 채란(採蘭), 배양(培養) 해보면 의외로 좋은 사피(蛇皮), 호피(虎皮), 서반(曙斑) 개체(個體)를 얻을 수 있다는 것도 알아두게. 무늬가 엽심(葉心)을 타고 흘러야 좋은 물건, 즉 발전(發展)가능성(可能性)이 높다는 얘기지. 산행시(山行時) 무의식(無意識) 상태(狀態)에서도 잎 끝에 무늬나 색이 걸렸느냐, 엽심(葉心)이 비었느냐를 한눈에 갈파(喝破)하고 다음으로 시선(視線)이 옮겨가는 능력(能力), 이런 것은 평상시(平常時) 습관(習慣)이 되어 있어야만 가능(可能)한 일일세.
영 : 변화(變化)된 모양(模樣)새를 일일이 기억(記憶)하여 척 봐서 감(感)으로 유무(有無)를 알아봐야 한다 이 말이군요. 그래야 집중력(集中力)이 떨어지는 시간대(時間帶)에도 물건(物件)을 놓치지 않는다. 말은 쉬운데…
일 : 이런 것들이 두 번째 갖추어야할 조건(條件)이네. 확연(確然)한 색(色) 대비(對比)의 명품(名品)이라 금방 눈에 들어올 것 같은 난(蘭)도 산에서는 쉽게 발견(發見)할 수 없다네. 배경(背景)에 흡수(吸收)되거나 시각(視覺)에 들게되면 녹색(綠色)으로 보이던가 고사(枯死)된 풀잎으로 보이게 된다네. 하물며 잘려진 잎 속에 숨은 호(縞)나 복륜(覆輪), 소멸성(消滅性)의 무늬종이라던가 후암성(後暗性)의 산반(散斑)이나 서반(曙斑) 등은 놓치기 십상이니 순간(瞬間)에 포착(捕捉)되는 특징(特徵)으로 유무(有無)를 판단(判斷)할 수 있는 거의 본능(本能)에 가까운 동물적(動物的) 감각(感覺)을 훈련(訓練) 시켜야 한다는 것이지. 이런 것은 자의식(自意識)과 긴장(緊張)만으로는 결코 해결(解決)할 수 없다네.
영 : 산에서 입산(入山)부터 하산(下山)할 때까지 깨어 있겠다고 꾸준히 자극(刺戟)해도 잘 안되더라 이말 입니까?
일 : 그렇지. 수많은 산행을 반복(反復)해야 만이 무지엽(無地葉)과의 미세(微細)한 차이를 일견(一見)할 수 있는 시각(視覺)을 갖게된다는 것이지. 산행(山行)에서 언뜻 스쳐 가는 시선(視線)으로 바로 집어내지 못하면 신체적(身體的) 다음 동작(動作)과 시선(視線)의 방해물(妨害物)로 물건(物件)을 놓치게 된다네.
영 : 허공(虛空)을 나는 새가 원거리(遠距離)의 작은 먹이를 쉽게 발견(發見)하는 식이 되어야 겠군요.
일 : 세 번째는 반복(反復)된 산행(山行)으로 생각이 굳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일세. 다시 말하면 중투(中透)나 호(縞)를 갈망(渴望)하는 난인(蘭人)이 산행(山行)을 하게되면 자기도 모르게 중투(中透)나 호(縞)무늬에 고정화(固定化)되어 무의식(無意識)중에 그 무늬만 찾게 된다네. 집중력(集中力)이 떨어지면, 속줄 무늬만 뇌리(腦裏)를 장악(掌握)하게 되고 다른 개체(個體)의 변이종(變異種)을 보면서도 아니다는 판단(判斷)이 앞서고 결국 그 물건(物件)을 순간적(瞬間的)으로 지나치게 된다네. 눈으로는 무늬 종을 보면서도 입력(入力)된 자료(資料)가 아니기에 한 순간(瞬間) 뇌(腦)에서 자각(自覺)하지 못하고 지나치지. 그래서 후일담(後日譚)을 누구는 중투(中透)를 밟고 지나갔네, 눈에 확연히 드러나는 산길 한 중앙(中央)에 심복륜(深覆輪)이 남아 있더라 하는 식(式)일세.
영 : 그거야 보지 못했기 때문이지. 설마 하니 보면서도 지나 칠 려구요.
일 : 보았느냐? 보지 못했느냐의 시비(是非)군. 최소(最小) 2~3년 사이 그 물건(物件)이 있던 장소(場所)를 난인(蘭人)이 지나쳤던 횟수를 5~6회 이상(以上)은 될 것으로 생각하네. 물론 그렇지 못할 수도 있었겠지만 일반적(一般的)으로 다른 자생지(自生地)의 상태(狀態)와 비교(比較)해 보면 2~3년 내(內)의 시간대(時間帶)에 그 정도의 채란인(採蘭人)이 다녀간다는 것이네. 그런데도 그중 한사람의 눈에도 띄지 않았다? 아닐거네. 그중 어떤 사람의 눈에도 그 영상(映像)이 들어오지 않았을까? 물건이 시선(視線)의 사각(死角)에 든 상태(狀態)이기에 확실(確實)히 구별(區別)이 안되었다. 그래서 보지 못한 것이라고 강변(强辯)하네. 촛점이 맞지 않았기에 감지(感知)하지 못했다는 이야기지만 사람의 시각(視覺)은 사선(死線)에 있는 것도 감지(感知)한다네. 비록 망막에 새겨지지 못한 색이나 영상(映像)도 뇌에는 전달(傳達)된다 이것이네. 순간(瞬間) 자각(自覺)하지 못한 영상(映像)도 기억(記憶)을 더듬으면 어렴풋이 생각이 나는 식이지. 이 부분을 순간(瞬間)포착(捕捉)으로 잡아내야 된다네. 결국 사전(事前)에 Program이 입력되어 있지 않으면 이런 것들 즉 시선(視線)의 사각(死角)으로 스치는 영상(映像)들을 놓치게되고 채란률(採蘭率)은 그만큼 떨어지게 된다네. 무엇이던 받아들일 수 있는 빈 마음으로 정리(整理)된 도식(圖式), 여기에 영상(映像)이 맺히면 결코 놓치지 않는다 이거지. 이해(理解)가 될지 모르겠지만.
영 : 그러니까 새겨진 자료(資料) 속에 합치되는 영상이 들어오면, 반사적(反射的)으로 시선이 촞점을 맞추고 물건을 놓치지 않는다. 운전(運轉)이 숙달된 사람은 차가 빠져나갈 수 있는지 없는지 한눈에 알아본다는 것과 같은 맥락(脈絡)이군요.
일 : 같은 맥락(脈絡)인가 헷갈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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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식물(植物)은 이동성(移動性)이 없다. 다만 번식(繁殖)의 수단(手段)으로 수많은 포자(胞子)를 바람에 날려보낼 뿐… 다음이 기대됩니다^*^
잘보았습니다
좋은ㅈ료 잘 보았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글 쓰신다 고생 하셨네요~
영과 일의 문답이 압권입니다^^ 좋은자료 정독하며 숙지합니다 장문의 좋은 글 감사드리며 이장님 수고하셨습니다,,
오랜 만에 영과 일의 내용 읽어 봅니다. 정리하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결론은 헷가리네요~~~하하하 ; 20여년의 경험상 좋은 낭르 만나려면 --- 왕도는 접고... 자주 댕기면 되나니라라고 말하고 싶네요~~~ㅎ
오랜만에 봅니다.열심히 읽었엇는데 다 잊어버렸지요.다시 정독하고 갑니다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반복해서 읽어야 하겠습니다.
재밌게 구성되어 있네요. 탐란시에 많은 참고가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내용이라 제 블로그에 퍼 갑니다.
난과생활에서 이글만은 안빼놓고 읽었는데...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제가 2002년도에 이 연재 글을 읽기 위해 난과생활을 계속 구독하였는데..... 좋은 글 감사합니다..
참고하겟습니다.
새롭고 많은 도움이 되는 내용입니다.
다시보니 새롭습니다
산채 쉽지않지만 이론을 터득하면 많은도움 되겠습니다
오랫만에 잃으니 새롭네요 정리하여 올리시느라 수고 하셨습니다
잘보고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