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정말 아득하기만한 용건 한가지를 갖고 선생님께 새해 인사도 드리지 못한 가운데 편지를 드립니다. 과연 편지 속에 담긴 뜻을 제대로 다 풀어내 선생님께 전해드릴 수 있을지, 가늠할 수 없는 시간입니다. 그래도 편지 속에 지나온 시련과 고통의 세월을 표현하느라 선생님의 마음을 무겁게 해드리지는 말자 그렇게 다짐해 봅니다. 그게 어찌 쉬운 일이겠습니까만, 모든 일상마다 빛과 그림자가 함께 담겨있다면, 어둠으로 빛을 해석하지 말고 빛으로 어둠을 해석하며 저희 속에 있는 생각을 선생님과 나누려고 합니다.
저희들이 선생님께 드리는 용건은 새로운 후원자 700명을 이번에 얻고자 하는데 선생님이 그중 한분으로 참여해 주십사 요청 드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얻어진 새 후원금 1억 8천만원으로 올해 저희는 ▲“수능 정시 중심이냐 수시 중심이냐 싸움을 넘는, 국민들을 통합할 미래지향적인 대입제도”를 제시할 것입니다. 또한 ▲“아이들을 한 줄로 세우는 대학 서열구조 개선 국민운동”을 전개하며, 여기에 ▲“출신학교 차별금지법 제정을 매듭짓고 ▲직업 간 임금 격차 해소 사업”을 새로이 출범하고자 합니다. 또한 ▲“학원 등 사교육 시장에서 소비자로서 주권을 상실하고 피해를 보는 시민들을 대변하고 지켜주는 사교육 소비자 주권 옹호 사업” 및 ▲“공교육에 아이들을 보낸 부모의 마땅한 권리로서 일정한 정도의 책임교육을 요구하는 입법 운동”도 전개하려 합니다. 끝으로 ▲핏덩이 아이들을 사교육시장으로 몰아넣는 공포 마케팅을 바로잡기 위해 “영유아 사교육 거짓 정보를 규명한 소책자를 10만 명에게 보급하는 사업”을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이 편지 용건을 접하시고 “내가 바라고 원하는 일이 시작되었구나, 얼른 후원자로 참여해야지!” 그렇게 반가워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내 재정 상황이 여의치 않고 후원할 곳도 확정되었으니 곤란하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요. 어느 편이든, 신년초 한번 보내는 이 편지는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가슴 속에 품고 있는 뜻과 생각을 가장 깊고 진솔하게 설명 드리는 기회이오니, 이 단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며 일년을 보낸다는 말인가, 살펴보신다는 차원에서도 저희들 편지를 끝까지 읽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선생님도 아시다시피 지난 2018년은 저희 단체로서는 가장 어려웠던 한해였습니다. 촛불 민심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가 ‘절대평가 중심 대입제도’ 등 상당수의 교육공약들을 폐기했고 이 과정에서 그 공약 수립에 기여한 저희 단체는 안팎으로 심각한 비판과 공격을 받아야했습니다. 요즘 대입제도의 공정성을 이야기하지만, 시중에 떠도는 우스개 소리로 “어떤 시험이 공정하냐고? 그것 간단하지. 내 새끼에게 유리한 시험 제도가 공정한 거야!” 그런 말들을 농담이라 받아넘기기에는 각자에게 정말 사활을 거는 문제가 바로 대학입시제도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20년 동안 진보 보수 정부할 것 없이, 각 정부는 한줄로 경쟁하는 대입제도, 5지 선다 객관식 문제풀이 중심 시험으로는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를 대비하는 역량을 키울 수 없다고 해서 학교교육을 혁신하며 동시에 학교 교육이 중심이 되는 대입제도를 설계하고 확대하는 데 심혈을 기울여왔습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새 정부 들어서 이런 기조의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정부가 중심을 잡고 나라교육의 미래를 설계하며 국민들과 이해당사자들을 설득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채 대입제도를 둘러싼 국민들의 기대와 욕망이 분출 되는 대로 흔들리다 보니 결국 어느 쪽도 만족하지 못한 상태로 2022년 대입제도가 어정쩡하게 봉합되어 버렸습니다. 정부가 중심을 잃으니 국민들 간 생각의 균열이 벌어지고, 미래 교육 방향과 원칙을 통해 갈등을 통합하는 것보다는 누구의 욕망이 더 큰지 가늠하고 그쪽에 힘을 싣는 것이 정책 결정의 키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저희들은 창립 이래 가장 혹독한 시련의 시기를 지나왔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교육공약 수립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쳐온 책임이 저희들에게 있기에, 이에 동의하지 않는 시민들과 정치권, 언론, 일부 보수 교육단체 등으로부터 견디기 어려운 공격을 받아왔습니다. 밑도 끝도 없이 기자회견장에 와서 조직적으로 회견을 방해하고 비난하고,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라는 이름이 마치 악의 축이라도 되는 양 조롱하는 말들을 여름날 소나기를 맞듯이 수없이 들어야했습니다. 심지어 우리 단체 관련 기사에 댓글을 달며 대표들과 대표들의 가족들을 저주하는 등 비난이 거의 광기 수준까지 치달았습니다. 그 댓글들을 보고 우리 단체 상임 변호사가 더 이상 참지를 못하고 대표실에 들어와 이것만큼은 명예훼손 소송을 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하기도 했으나, 악의적인 시민이나 이익집단들일지라도 그들과 싸워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변호사를 말렸습니다. 더욱이 이런 민심의 역류 속에서 일부 회원들과 후원자들이 흔들려서 창립 후 10년 만에 가입자보다 탈퇴자가 이백여명 더 많은, 초유의 사태를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문재인 정부는 교육공약들을 중단하겠다는 선언을 했습니다. 2022 대입제도 최종 발표를 앞두고 8월 14일 뙤약볕 여름날 세종시 교육부 청사 정문 앞 도로, 지나가는 행인도 교육부 공무원도 하나 없는 허허벌판에서 3일 동안 피켓을 들고 섰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결정된 이후 9월부터는 2달 동안 매주 토요일 서울시청 청계광장 부근에서 공약 되찾기 집회를 열기도 했습니다.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이 빈손으로 내몰린 그 광장에서 촛불을 들며, 우리는 촛불 정부 하에서 왜 이런 사태가 시작되었고 일은 어디서부터 어긋났는지 돌아보고 돌아봤습니다. 그 자리에서 우리는 정치가 응답하지 않을 때 시민운동은 어느 만큼 현실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어느 선부터는 넘어갈 수 없는지, 그 가능성과 한계를 가슴 아프게 확인했습니다. 또한 정치는 민심의 반영이니 만큼, 정치의 퇴행에 영향을 미친 민심이 어디서 시작됐고 그 이유는 무엇인지를 분석하고, 우리는 그 민심과 어떻게 대화할 것인가라는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과제를 떠안기도 했습니다. 교육공약 관련된 기사가 뜰 때마다 댓글에 수없이 등장하는 우리 단체에 대한 비방과 인신공격을 읽어가면서 이 거칠고 메마른 분노가 10년의 과거 보수 정부에서는 침묵하다가 왜 지금에 와서 터지는지 고심하고 또 고심했습니다.
참 힘들고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우리는 어느 언론사가 말한 대로 전문가 싱크 탱크가 아니라 풀뿌리 대중 교육운동이니, 민심을 등에 업고 세상을 바꾸는 것을 유일한 정체성으로 삼고 지금까지 달려왔는데, 적지 않은 대중들과 불화가 생겼으니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는 결코 가볍지 않았습니다.
물론 이런 불화와 비판이 2017년에도 있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새 정부 들어서 교육공약을 이행하고자 하는 의지를 갖고 있는 것처럼 보였던 때인지라, 공약의 유력한 제안자로 우리 단체가 지목된 후 여러 공세가 가해졌을 때에도 우리는 이를 의연히 견뎌냈습니다. 그래도 교육공약이 구체적인 정책으로 실현되면 아이들에게 혜택으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며, 우리가 그런 모욕을 겪더라도 그것은 변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치러야할 댓가라고 여겼지요. 그러나 2018년 교육공약이 좌초되고 나서는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공약이 폐기되었으니 희망이 사라진 것이고 공격과 비난을 견디어낼 마음 속 버팀목을 잃은 것입니다. 가슴 속에 돌덩이를 안고 사는 것처럼 찾아온 절망감에 존재를 가누기가 어려웠습니다. 자식을 잃고 눈의 초점을 잃고 실성한 부모처럼, 아이들을 지켜낼 희망을 백주에 도둑맞은 충격 때문에 운동을 이어갈 힘도, 삶을 이어갈 의욕의 끈도 잃었습니다. 지난 6년 전, 입시 사교육 제로 국민운동을 시작하면서 “초등학교 1학년이 고등학생이 되는 2022년 대한민국에서 입시 사교육은 사라집니다!” 그렇게 자랑스럽게 내세웠던 깃발, 그 시간적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자신을 채찍질하면서 휘몰아쳐 달려왔던 깃발, 그 어떤 시련 속에서도 결코 접지 않았던 마음의 북극성 같은 목표를 결국 접어야했습니다. 서럽고 분했습니다. 땡볕 아래에서, 바람 부는 길바닥에서 헤맨 시간은, 그렇게 그 가슴 속 낙심과 절망의 독기를 빼어내느라 몸 부린 친 세월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작년 11월 등대지기학교 강의 때 전남대학교 철학과 김상봉 교수님을 모셨습니다. 그분은 탁월함에 대한 개념을 이야기하면서 ‘진정한 탁월함’이란 타자의 고통에 응답하기 위한 동기에서 나오는 것이라 설명하셨습니다. 그때 우리 대표들이 여쭈었습니다. “교수님,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내기 위해 우리는 가진 모든 것을 쏟아 부어 일해왔습니다. 교수님이 말씀하신 그 탁월함, 즉 고통받는 사람들 편에서 일하려 할 때 얻어지는 탁월함을 얻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왔습니다. 주장하는 바를 데이터로 정리해서 국민과 정치를 설득하고자 수많은 시간과 돈을 쏟아 부었고, 그래서 우리의 탁월함으로 더러 세상을 바꾸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의 문제는, 그 탁월함을 어떻게 지속해야할지 길을 잃은 상태라는 것입니다. 지난 10년 보수 정부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았는데 촛불 정부 속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숙제는 탁월함을 지속하는 힘에 관한 것입니다. 그 힘은 어디서 오는 것입니까?” 그렇게 질문했습니다.
그분이 대답하셨습니다. “그게 바로 내가 당신과 당신의 조직을 좋아하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은둔하다시피 하며 연구와 글쓰기에만 몰두하고 있는 제가 당신들이 오라 하면 묵묵히 서울로 오는 이유입니다. 탁월함의 지속 비결, 새로운 세상이 온다는 확신의 근거가 다 사라진 현실 속에서 그 세상이 온다는 확신은 어쩌면 종교적 수준의 어떤 믿음과 연결될 것입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새로운 세상이 온다는 믿음, 그 확신을 잃지 않아야합니다.” 그분의 말씀은 남들이 듣기에는 동어반복과 같은 대답인지라, “그래요, 알다마다요. 그런데 그 견고한 믿음, 확신은 어떻게 온다는 것입니까?” 그런 추가적 질문을 얼마든지 던질 수 있는 데도 우리는 질문을 멈추고 그분의 대답에 그만 눈물을 쏟고야 말았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10년 전 이 운동을 처음 시작할 때 붙들었던 뜻에 관한 깨우침이었습니다. 그때, 아무 것도 없던 시절, 황무지와 같은 벌판에서 모든 사람들이 다 말렸던 ‘입시경쟁과 사교육 고통에서 우리 아이들을 지킨다’는 목표의 깃발을 세우려 할 때, 우리는 10년 후 오늘을 내다봤습니다. 이익과 욕망의 대중적 싸움에서 어느 누구도 승복하지 않으려는 이 입시 경쟁의 싸움에서 아이들을 지키려다가 영혼이 상처를 입고 갈갈이 찢기어지고 기력과 명예를 다 잃어버리고야 말 미래의 우리 자신을 보았습니다. “그러고도 시작하겠니?” 그런 질문에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때 아이들을 지도하는 한 젊은 목회자가 “입시 경쟁, 사교육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은 문제가 어려워서가 아니라, 그 문제를 푸는 일에 자신을 바친 사람들이 대한민국의 40년 교육 역사 속에서 한 사람도 없었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하는 일갈에 “그렇습니다. 내가 우리가 그 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그렇게 우리 자신을 드림으로 열려진 10년의 길이었습니다. 김상봉 교수님의 지적은 저희들에게 “너희들이 그때 그 약속 그 결심을 하지 않았느냐. 오늘의 고통을 내다보지 않았느냐? 그러고도 나서겠다고 해서 달려온 세월 아니었느냐. 새로운 세상으로 가는 길이 어디 쉽더냐? 아이들을 지켜내는 길에서 다치지 않을 수 있느냐? 너희 것을 다 주어야 아이들을 지킬 수 있는 것이거늘, 무엇을 불평하느냐? 지금 잃은 것 같아도 그렇지 않다. 되찾게 될 것이니, 새날이 올 것이라는 그 첫 마음을 결코 잃어서는 안 된다.” 그런 말씀으로 우리를 위로하신 것입니다.
김상봉 교수님의 그 말씀에 정신이 번뜩 났습니다. 그리고 질문 하나를 떠올려 보았습니다. “입시경쟁과 사교육 고통에서 우리 아이들을 지키려는 그 처음 뜻을 우리는 아직도 지키고 있는가?” 그 질문에 우리는 “그렇다!” 그렇게 말할 수 있다는 사실이 다행스러웠습니다. 비록 지난 1년, 흔들리고 잃어버리고 부족함이 컸던 시간일지라도, 우리가 그렇게 일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처음 뜻을 가슴 속에 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니 수많은 공격과 비판, 모함과 비난에 억울해 할 일은 아닐 것입니다. 그만큼 우리와 생각이 다른 이들조차 울분이 차있는 셈이고 그분들 역시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는 것이니, 우리는 그것조차 품는 더 탁월한 길을 찾아야할 것입니다. 설사 우리가 취한 운동의 방향이 잘못이 아닌데도 우리가 비난을 받은 것이라 해도, 그것은 무릇 변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감수해야할 몫이니 그 또한 불평할 일이 아닐 것입니다. 또한 모든 변화로 가는 길이 다 끊어졌을 때라도 길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위해 자기 인생을 던지는 사람 그 자신이 길이라는 마음으로 다시 일어서야할 것입니다.
지난 해 정치에 의한 교육개혁은 결국 멈추었습니다. 앞으로도 변화는 당분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마저 멈추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정치에 영향을 끼친 민심의 실체를 확인하고 그에 대답하며, 무엇보다 민심의 요구와 일치하는 영역을 찾고 민심과 함께 일해야 하겠습니다. 시대가 요구하는 바이지만 민심과 괴리가 있는 부분은 민심의 요구와 시대의 요구 간극을 메꿀 지혜와 통찰을 끈기 있게 찾아야할 것입니다.
모든 싸움이 한바탕 다 지나간 지금, 우리의 심경은 호랑이 등 위에서 달리다가 막 내려온 다소 홀가분한 상태입니다. 정부의 교육공약을 지키겠다는 마음으로 정부 정책과 한 몸이 되어 달려오느라, 급하지는 않지만 중요한 일, 좋은 정책을 요구하는 사람들의 마음 속 건강한 욕구를 자극하는 일, 무엇보다 입시 경쟁과 사교육 고통에 소리 없이 우는 아이들의 흐느낌을 찾아 세상에 드러내 주는 일을 충분히 돌아볼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교육공약 때문에 상황에 내몰려 끌려가는 일이 멈추어진 지금, 이 시점에 맞는 새로운 과제를 붙들고 다시 시민들과 함께 일하는 자리로 복귀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마음 상태가 편하고 홀가분합니다. 혹독한 병을 심하게 앓고 일어난 후 주변의 작은 것들이 다시 눈에 들어오고 생의 의욕과 활력으로 가득한 마음의 상태로 돌아왔다고나 할까요.
올해는 입시 경쟁과 사교육 고통의 원인으로서 민심과 일치하는 사업에 보다 집중하고자 합니다. 먼저 수능 정시 중심이냐 수시 중심이냐 이런 단기적 대학입시 정책 싸움이 끝난 지금, 아이들의 미래를 염려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라도 동의할 근본적이고 미래지향적 대입제도를 설계해야할 것입니다. 학교 시험과 수능 시험이 5지 선다 객관식 정답 찾기 중심 시험으로 고착된 현실에 균열을 낼 새 길을 마련해야하겠다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이렇게 한 등급 한 문제 더 맞고 틀리고로 아이들의 미래가 결정되는 이 상황을 언젠가는 끝내야한다는 생각으로 보다 획기적인 미래형 대입제도를 구안해야할 때라 생각하고, 오랜 동안 고민해왔던 바를 정리해 늦지 않게 세상에 내놓을 것입니다. 물론 그것이 대입제도 개선만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돼지고기 등급처럼 아이들을 한 줄로 세우게 하는 이 왜곡된 대학 서열구조 자체를 개선하는 일”에도 착수할 것입니다. 그것은 어마어마한 일입니다. 무릇 이전에 맞서보려 했던 이들마다 상처입고 판판이 깨져나간 저 거대한 골리앗과 같은 주제의 싸움 앞에서, 그에 대항할 ‘다윗의 물멧돌’은 어디에 있는지 꼼꼼히 살펴야할 것입니다. 여기에 지금 의회에 계류 중인 출신학교 차별금지법 제정을 확정해서, 공공기관에만 머무는 블라인드 채용이 민간 기업으로 확대될 수 있도록 하며, 나아가 직업 간 임금 격차를 해소하는 연구를 올해 착수함으로 그 법률이 더욱 효과를 발휘하도록 할 것입니다.
또 하나 새로운 사업도 시작하려 합니다. “학원 등 사교육 시장에서 소비자로서 주권을 상실하고 피해를 보는 시민들을 대변하고 지켜주는 사교육 소비자 주권 옹호 사업”입니다. 거의 80% 이상의 국민들이 자녀를 학원에 보내는 상황에서 소비자로서 당연한 권리를 누리지 못한 채 학원의 상술에 돈과 시간을 낭비하는 이 문제를 바로잡아야할 때입니다. 뚜렷한 이유도 없이 특정 학원 등록을 거부당하고 학원 교습 등록비가 터무니없이 높게 책정되어도 호소할 곳도 없고, 국가가 학교 교육과정으로는 도무지 감당하지 못하는 문제를 수능 문제로 출제해도 이를 항의할 수 없는 부모들의 권리를 회복시키는 일을 올해는 시작하려 합니다. 적지 않은 시민들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학원을 다니지 않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니 나 같이 학원에 자식을 내 맡겨야할 사람들은 도움받을 수 없는 곳이라는 그런 오해를 불식시키고, 평범한 시민들 곁에서 그들을 대변하는 운동을 시작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교육없는세상’이 아니라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라는 깃발을 든 이유를 모든 시민들이 이해하고 환영할 수 있게 할 것입니다.
학교 교육과 관련해서도 한가지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려 합니다. “공교육에 아이들을 보낸 부모의 마땅한 권리로서 일정한 정도의 책임교육을 요구하는 법률 운동”이 그것입니다. 학교에 아이들을 보냈는데 학교가 적정한 수준의 학력을 책임져주지 않아서 결국 학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문제를 이제는 끝내야할 것입니다. 이것은 단지 성적 부진학생들에 대한 기초 학력 보장으로 국한되는 것이라 아니라, 대부분의 평범한 아이들의 권리를 신장하는 일로 확장되는 것입니다. 즉, 모든 아이들이 학교 교육을 받으면 이 정도의 교육은 받을 권리가 있다는 적정 수준의 기준에 비추어 학교가 책임지고 아이들을 교육시킴으로 부모들이 학교 교육을 따라가지 못해 자식들을 학원에 맡기는 병폐를 해소하는 일을 법률로 견인하자는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줄세우기 없는 학교 캠페인을 해서 상당한 정도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성적 순으로 급식을 한다든지, 도서관 기숙사 배정을 한다는지 그런 불공정하고 비교육적인 관행을 해소해왔지만, 그런 비교육적 관행이 해소되었다고 해서 교육적 새 질서가 그 빈자리를 자동적으로 채워주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니 적정 수준의 교육에 대해 학교가 책임져서 줄 세우기 교육이 없는 그 빈자리를 채우게끔 하는 일이 필요한 것입니다. 많은 고민과 논의가 필요하지만, 이제 그 가능성을 타진해 보고자 합니다.
“영유아 사교육 걱정을 덜어주는 정보 소책자 10만명 보급 사업”도 곧 시작할 것입니다. 이미 소책자의 원고는 다 정리되었고 2월 중에 출간해서 3월 이전에 전국의 영유아 부모들에게 반가운 소식을 전할 것입니다. 또한 “수학 대안교과서 1,2학년 교과서가 이미 완성된 상황이기에 올해는 3학년 교과서를 마무리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 단체에 참여해서 사교육 부담을 덜고 자녀들과 관계가 좋아지며 아이들의 진로와 부모들의 성장에 큰 변화가 있는 것을 연구 분석으로 확인한 상태인데, 어떻게 회원들과 일반 시민들이 그런 혜택을 누릴 수 있게 할 것인가에 대해 2차 연구에 착수했고 곧 결과가 나오면, 이를 보급하는 새로운 사업이 시작될 것입니다.
무엇보다 이제 이 모든 일들을 더 이상 사무실의 30명 상근자들만의 힘으로 감당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 곁에 수많은 시민들과 전문가들이 있고, 뜨거운 가슴, 유능함을 갖춘 후원자들이 계시니, 단지 그분들을 상근하는 이들을 격려하는 존재들로 머물게 하지 않고 함께 고민하고 전략을 세우는 동반자로 일하게 하는 체계를 만들 것입니다. 비록 사무실에서 일하는 상근 인력은 30명에 불과하나 그 이면을 들여다보니 수백명의 사람들이 함께 움직이는 구조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만큼, 조직의 면모도 획기적으로 일신할 것입니다.
선생님이 이 사업들만 보셔도 “아,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고심을 많이 했구나!” 그렇게 느끼실 것입니다. 기대가 되는 사업들도 있고 특별히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사업들도 많을 것입니다. 저희들 역시 2019 새해 이루어질 새 일들을 기획하면서 상처 입은 마음 속 심장이 다시 뛰는 것을 경험합니다. 마치 단체를 재 창립할 때와 같은 심정이라 할까요. 상처와 절망 속에서 이런 새 의욕은 사뭇 낯섭니다. 아마 마음의 길이 새롭게 열린 것은 우리 지난 세월 싸움을 잘 견디며 스스로를 철저히 들여다봤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니, 아직은 우리가 지켜야할 아이들이 입시 경쟁과 사교육 고통으로 피를 철철 흘리고 죽어 가는데 너희가 힘을 잃으면 안 된다고 하늘에서 우리에게 주신 기적과 같은 마음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보니까, 비록 탈퇴한 회원들이 적지 않지만 우리를 응원할 시민들 또한 수없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며, 이 운동에 뜻을 같이 할 시민들을 얻는 수많은 상상력이 회복되는 것을 느낍니다.
선생님 보시기에 올해 국민들에게 사랑을 받으며 민심 속으로 더 깊게 들어가는구나, 그렇게 반가워하시도록, 그 길을 열심히 가볼 생각입니다. 이를 위해 사교육 소비자 권익 옹호 운동에는 학원 경력이 있는 1-2명의 새로운 상근자를 곧 채용할 것입니다. 시민들과 함께 하는 캠페인을 위해 1명, 교육공약을 시민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시민의 언어로 번역해주는 일을 위해 1명의 직원을 새롭게 채용할 것입니다. 총 4명의 인건비와 관련 사업비, 3,000만원 소책자 제작비 등 총 1억 8천만원의 추가 재정이 만만하지는 않겠지만, 꼭 가야할 길이기에 주저하지 않겠습니다. 이를 위해 약 700명의 새로운 후원자를 찾고자 합니다.
사실 새로운 후원자 700명을 얻는 것은 저희들로서는 엄두가 안 나는 목표입니다. 지난 몇 년째 신년모금을 해오면서 최대로 가입한 후원자 수가 400명 남짓 정도이었습니다. 지난 세월 단 한번도 700명을 목표로 삼아보거나 그 목표를 달성해본 적도 없었는데, 이번에 목표로 세운 것입니다. 이는 저희 대표들의 결심이 아니었습니다. 네 아이의 엄마로 지난 7년간 정말 충성스럽게 저희 단체의 모금사업 일을 도맡아 온 백성주 모금국장이 저희들에게 제시한 목표였습니다. 이 엄두가 나지 않는 이 목표에 대해서 우리가 물었습니다. “왜 이런 방식의 무모한 목표를 제시했습니까? 우리가 과연 이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까요? 탈퇴자들이 늘고 갈수록 우리를 기피하는 시민들이 많아가는데 말입니다." 그렇게 말이지요. 이에 백성주 선생님이 단호히 이렇게 말했습니다.
"대표님들. 지난 1년 간 ‘공정성’이란 미명하에 아이들을 상대평가로 더 몰아넣자는 여론이 드셀 때 저희만큼 절망하고 아파하신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비록 나서서 말하지는 못했지만 말이에요. 그분들은 우리 단체가 수많은 비난 속에서도 버틸 때 마음으로 응원하셨고, 또 저희가 상처입고 낙심할 때 아파했으며, 그러나 끝내 다시 일어서는 것을 보고 ‘다행이구나!’ 안심하셨을 것입니다. 그런 분들이 반드시 계실 것이고, 이번에 후원자들로 나설 것이라 저는 믿습니다." 그렇게 울먹이며 말씀하셨습니다. 몇 번을 물어도 흔들림 없이 말이지요.
선생님. 저희는 백성주 국장의 믿음과 확신을 지켜 주고 싶습니다. 이것은 저희 두 대표를 위한 일만이 아닙니다. 지난 10년 간 신년 초 새 후원자를 찾는 까마득한 모금 목표가 어김없이 채워지는 것을 볼 때마다 우리 두 대표들은 이미 충분히 기적과 위로를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여한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저희 두 대표들이 아니라 백성주 국장을 비롯한 우리 상근자들에게 위로가 되는 기적이 있으면 합니다. 언제까지 우리 두 대표가 이 운동을 이끌어갈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언젠가는 저희가 자리를 비울 때 남은 이들이 이 운동을 책임질 것입니다. 그때 그들이 이 운동을 책임질 힘은 어디서 오겠습니까? 밑도 끝도 없는 불안이 찾아올 때, 그래도 정신을 잃지 않고 “그렇지, 시민들이 이 운동을 돕고 지키는 것은 두 대표들 때문이 아니지. 뜻을 세우면 누군가 저렇게 분연히 일어나 우리를 돕던 경험을 나도 했었지.” 그렇게 이번 신년 모금을 회고하며 두려움을 떨치고 일어설 용기를, 우리 30명 직원들에게 여름날 소나기처럼 퍼부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700명 새 후원자 명단에서 선생님의 반가운 성함을 보기를 기대합니다.
저희가 비록 많은 것을 잃었지만 아직도 남은 소중한 것들을 지켜서 또 먹구름이 몰려올 때는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겠습니다. 우리 가슴에 품은 그 ‘뜻’이 우리만의 것이 아닌, 민심의 들판을 가득 채우는 교육의 봄꽃으로 살아 오르도록, 더 용기있고 지혜롭고 끈기있게 일하겠습니다. “위기 속에서 절망하더니, 저토록 철저하게 돌아보고 성찰해, 더 큰 군대를 끌고 다시 일어서 끝내 아이들을 지켜내는구나!”그런 탄성이 국민들로부터 터져 나올 수 있도록, 힘써 노력하겠습니다.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2019. 2. 12.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공동대표 송인수 윤지희 올림
※ 이 편지를 읽으시고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월정 후원자로 참여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월정 후원금은 2만원부터 시작합니다.
※ 후원에 참여하실 때는 아래 후원 기대표(특히 녹색 박스 부분)를 참고해 주세요. 저희들은 앞으로 아래와 같은 방식으로 모금이 이루어질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후원 결정하실 때는 현재 100명 이상 참여하는 매달 10만원 이상 후원하는 텐텐 클럽 참여도 적극적으로 고려해 주세요.
※ 이 편지를 보내 드린 후 일주일이 지나면 선생님을 포함해서 다른 분들이 참여하신 후원 결과에 대해서 몇 차례 중간보고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