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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더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를 읽고
멋진 신세계,
평소 문학 작품에 대한 소양이 별로 없었기에 특별한 사전정보 없이 읽게 되었다. 앞쪽의 서문을 읽는데 ‘야만인이 문명사회에서 미쳐있던가, 야만인의 세상에서 살던가.. 이 소설은 분명 오류가 있다’ 등등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아 일단 읽기 시작했다. ‘공상과학 소설이군.’ 하면서 읽어나가는데 초반부 보카노프스키의 양육 과정 중 전기충격을 보고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멋진 신세계에서는 포드를 신처럼 숭배하며 태어날때부터 알파 베타 감마 델타 입실론 5개의 단계로 구분되는데, 보카노프스키 과정으로 부화한 96명의 입실론 쌍둥이들은 다른 사람들이 꺼리는 노동현장의 노동자들로 키워진다. 그들은 태아 상태에서 산소를 충분히 공급하지 않는 등 일부러 저 지능인 상태로 키워지며 태어나서도 책과 꽃을 전기충격에 연결시켜 멀리하도록 한다. 그리고 소마라는 합법화된 마약을 제공 받으며 행복을 유지한다.
이 충격적인 내용 덕분에 추석 명절 내내 뱃멀미를 하는 듯 속이 울렁거렸다. 이제 글을 쓰면서 소화가 되었으면 좋겠다.
<멋진 신세계> 관련 정보를 찾아보며 1930년대 초반에 쓰여진 디스토피아 소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포드 시스템, 대량생산, 작업의 세분화, 스키너 박스 등등이 머릿속을 지나갔다. 지금은 너무나 당연하지만 20세기 초 테일러의 작업 세분화 컨베이어벨트 시스템의도입이 그 당시 사람들에게 얼마나 충격을 줬을지 이 소설에 반영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1936년 영화인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도 같은 맥락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작업의 세분화와 컨베이어벨트 시스템은 포드 자동차에 엄청난 생산성 향상과 원가 절감을 안겨줬지만 그에 비해 아직 사람들의 지불 능력은 부족했기 때문에 그 해결방법으로 직원들의 월급을 올리고 자동차를 리스의 형태로 판매해 자동차의 대중화를 불러왔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이다. 1913년의 포드 시스템의 성공을 보며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을까.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을 만큼 충격적인 사건임이 분명하다. 그것은 하나의 학문이 되어 산업공학을 발전 시켰고, 나도 그 분야에서 일하며 약 5~6년간 작업자들의 생산성을 분석하기도 했다. 나는 산업공학 전공자는 아니었기에 별도로 업무를 위해 공부를 하다 보니 일어나는 동작 하나, 눈의 움직임까지 효율적으로 만들기 위해 통제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노동자는 임금 노동을 하는 동안에는 사용자의 부품으로 존재한다는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이 소설에서는 그것이 사업장으로서가 아니라 국가적으로, 아니 전 세계적인 통합을 이루어 사람을 부품화 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고급 부품, 중간 부품, 하급 부품으로 나누어 사람을 생산하고 배치하여 굴러가도록 하는 것이다. 2020년의 관점에서 이 소설을 보면 독일의 레벤스보른의 예, 스키너 박스의 실패 등 목적에 맞는 사람을 생산한다는 것부터 (저자가 서문에서 이야기 한 오류와는 관련이 없을 수 있지만) 분명 오류가 있다. 하지만, 3대 디스토피아 소설로 꾸준하게 읽히고 있는 것을 보면 인류 보편적인 무언가를 담고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기독교인으로써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한 명의 개인이 얼마나 존귀한 존재인지를 깨닫기 위해 늘 애쓴다. 신은 한명 한명을 구원하기 위해 직접 육신을 입고 십자가에서 희생하셨다. 그런 가르침에서 보면 분명 인간의 부품화, 도구화는 그에 반하는 개념일 것이다. 이 시대에서도 분명 개인의 존엄함이 무시당한 채 하나의 부품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있을 것 같아 그 부분을 자세하게 생각해보고 싶었지만 쉽지 않은 것 같다. 대신 입실론의 삶을 한번 상상해보았다.
* K2781
K2781은 치카프 남부 쓰레기처리구역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생활반경이라고 해봐야 끝없이 펼쳐진 쓰레기산과 그 안에 있는 몸만 누일 수 있는 숙소가 전부였다. 같은 모습의 K2783도 K2781과 같이 쓰레기를 태우는 일을 했다. 그런데 얼마 전 실수로 오른쪽 팔과 다리, 얼굴에 화상을 입었다. 그래도 같은 일을 하며 대화를 하는 유일한 동료였는데 지난 번 K2754와 마찬가지로 치료보호소에 갔다고 한다. 우리의 포드신께서는 모든 필요를 알고 먹을 것도 주시니, 분명 K2783도 잘 보살펴줄 거라 믿지만 눈앞의 부상 앞에 불안한 마음을 억누르기 어려웠다. 이런 어려움을 알고 고맙게도 치카프 남부 쓰레기처리구역중앙센터에서는 소마를 보내주었다. 이제 이 약을 먹고 나는 다시 내 일을 열심히 하면 된다. 나에게 주어진 일을 성실하게 하는 것만큼이나 행복한 일은 없으니까. 게다가 내일은 특별한 음식이 나오는 날이다. 일년에 한 두 번만 나오는 진짜 사과를 먹을 생각을 하니 소마가 없어도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번에는 아끼다가 쥐에게 뺏기지 않도록 바로 다 먹을 거다.
오늘은 운이 좋다. 오전에는 달콤하고 향긋한 사과를 먹었고 오후에는 쓰레기 소각장에서 좋은 옷을 발견했다. 게다가 K2783을 대신할 일꾼이 바로 다시 투입되어 일이 수월했다. 황갈색의 피부와 뭉툭한 모양의 손가락은 나와 같지만 나보다 훨씬 새것 같다. 포드신께서 나에게 축복을 해주시는 게 분명하다. 뜨거운 불 앞이지만 어렵지 않다.
모든 일이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 휴식을 하는 시간 잠들기 전 소마를 먹기 위해 선반에 손을 뻗쳤다. 그런데, 없다. 낮 동안 쥐가 물어뜯어 놓았나보다. ‘망할 놈의 쥐새끼들!’ 원망을 하지만 이미 소마는 없다. 어쩔 수 없이 자리로 돌아가 잠을 청해본다. 얼마나 지났을까 정찰 헬리콥터가 하늘을 날고 있는 시간까지 잠이 오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여기저기 데인 상처들이 아파온다. 머리도 아프고 땅이 빙글빙글 돌면서 식은땀이 난다. 여기 있다가는 땅속으로 빨려들어 갈 것 같은 두려움이 덮치며 목을 졸리는 듯 숨도 쉬기 힘들다. 밖으로 나가면 좀 나을까 싶어 좁은 목구멍으로 힘겹게 숨을 쉬며 문으로 기어나간다. ‘아.. 아. 살려주세요..’
눈을 떠보니 하얀옷과 하얀 마스크로 온몸을 덮은 사람들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여기가 바로 치료보호소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지나간다. ‘포드신이 나를 보살펴주시기 위해 구해주셨구나.’ 안심이 된다. 키가 크고 안경 넘어 파란 눈을 한 사람들은 잘 알아듣지 못할 말들을 서로 주고받는다. 그런데, 자세히 들으려 하니 이런 말이 들리는 것 같다. “입실론 K2781 고장, 수리불가.” 어린 시절부터 나와 같은 모습을 했던 친구들이 서로의 일할 곳의 부름을 받고 떠났던 기억, 일을 할 수 있음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늘 듣고 자랐던 기억, 넓고 넓은 일터에 왔을 때의 뭉클함이 스쳐지나갔지만 지금은 알 수 없는 두려움에 손끝부터 부들부들 떨려온다.
이제 누가 끌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어딘가로 이동한다. “나는 살아있어요!! 나는 살아있다구요!!” 소리를 치지만, 누구도 대답하지 않는다. 나는 어디로 가는 걸까...
첫댓글 추석 연휴동안 뱃멀미하는 것처럼 불편하셨다니, 작품에 깊이 몰입하셨나봐요. 게다가 이런 이야기까지 만드셨네요!
디스토피아 속에서도 이러한 상상력이 우리를 구원할 거라 믿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