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회의 안건은 직장 내 세대갈등 해결법입니다. 여러분 각자 생각하는 바를 자유롭게 이야기해주시기 바랍니다.”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마냥 서팀장의 목소리가 공허했다.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들 누군가 먼저 이야기해주길 바라며 눈치만 보고 있었다.
영미는 이런 것이 당연하다는 듯 슬쩍 웃었다. 다행히 표정을 감춰주는 마스크가 있어 편했다.
“아무도 말씀 안 하시면, 한 명씩 지목하겠습니다.”
지목당하는 사람은 의무적으로 한 마디씩 해결방안을 말했다. 황당한 의견이어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그대로 될 일이 없으니까.
영미가 다니는 회사는 60여 명 정도가 근무하는 중소기업이다.
적은 인원이 오순도순 일하는 가족 같은 분위기도, 그렇다고 시스템에 의해 움직이는 대기업도 아닌 어정쩡한 크기의 회사였다. 그래도 사장은 늘 회사 직원들을 가족이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영미는 ‘가족 같은 소리하고 있네. 내 가족은 집에 있다.’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사장은 고리타분한 의견으로 젊은 직원들의 의견을 무시하기 일쑤였다. 자신의 의견이 옳다고 주장하면서 사사건건 잔소리를 퍼부었다.
그러면서 “요즘 젊은이들은 몰라. 너도 한 번 늙어봐라. 다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고 수시로 말했다.
영미는 정말 사장이 싫었다. 이해할 수 없었다. 일반화의 오류겠지만, 사장 때문에 나이든 사람들은 다 꽉 막히고 고집불통이라는 편견까지 생겼다. 지하철에서 무례하게 구는 노인을 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이런 특딱충 같으니라고!’라며 중얼거렸다.
회사 내 젊은 사람들 중에는 영미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점점 세대 간에 갈등이 심해졌다. 게다가 나이든 사장과 젊은 사람들을 이어주는 중간 관리자마저 점점 꼰대로 변해갔다. 책임져야 할 식솔이 있다보니 그들에겐 용기가 없었다. 고양이 목에 방울을 걸 사람이 점점 줄어들었다. 자꾸 회사 분위기가 어두워졌다. 궁여지책으로 직장 내 세대갈등을 해결한다는 긴급회의가 열리게 되었다.
몇 번의 회의에도 해결책은 보이지 않았다. 물론 근본 원인은 사장에게 있겠으나, 그 외에도 회사 곳곳에 각자 자기 입장만 생각하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어디서부터 해결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결국 인사부 서팀장은 외부 전문가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삶을 위한 문해력, 리터러시를 연구하는 학자를 회의에 불렀다. 그분은 삶의 리터러시를 높이기 위해 ‘자신과 생각의 결이 많이 다른 사람과 인터뷰를 해서 그걸 정리해보고, 이 사람이 왜 그런 용어를 써서 그런 말을 하고 있는지 이해해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회의에 참여한 사람들은 반신반의했다. 영미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궁금증이 들긴 했다. 사장을 포함, 경멸하기만 했던 노인들의 삶에 호기심이 생겼다. 그분들이 그렇게 행동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뭔지 조금은 알고 싶어졌다. 영미 자신은 한 번도 살아본 적 없는 삶이지만, 그분들은 평생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이다지도 서로가 다른 것은 아닐까 생각도 들었다.
솔직히, 전문가처럼 지속적으로 삶의 리터러시를 높일 자신이 영미는 없었다. 이해하고 싶은 마음보다 싫은 마음이 큰데 이걸 어떻게 지속한단 말인가! 그래도 한 번이라도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을 이해해보려고 노력했다는 것에 만족했다. 이마저도 큰 발전이라고 생각했다. 다음 번에 서점에 가면 그 전문가가 쓴 책도 한 권 사보리라 다짐했다.
첫댓글 하하하, 진희 샘, 너무 재밌네요. 진희 샘 영미씨랑 좀 친하시죠? (혹시 저는 서팀장이랑 친한가 잠시 고민;;)
"자신과 생각의 결이 많이 다른 사람과 인터뷰를 해서 그걸 정리해보고, 이 사람이 왜 그런 용어를 써서 그런 말을 하고 있는지 이해해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는 말이 와닿습니다. 지금 제게 필요한 것이네요. 잘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