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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들이 떠다닌다. 어디서 부터 어떻게 이야기 할지 갈피를 잡는 것이 어렵다. 그만큼 많은 주제를 나에게 준 것 같다. 저자 자신의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역사의 진보를 생각하게 하기도 하고, 특정한 사람들의 이야기 같으면서도 모두의 이야기이고 결국 나의 이야기다.
1. 품격
'2장 품격과 존엄의 퍼포먼스' 부분에서는 특히 저자의 글이 격하게 느껴졌다. 품격있는 법치주의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던 나경원의원, 품격의 최고봉 의전의 왕 황교안 이야기가 나온다. 품격(品格),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니 사람 된 바탕과 타고난 성격, 사물 따위에서 느껴지는 품위, 품성과 인격의 줄임 말이라고 하는데 아마도 그 단어의 뜻이 변질 된 것 같다. 쪽방촌 주민의 품격, 품격있는 바우처 노인 요양보호사라는 말은 어딘가 모르게 어색하게 느껴지니 말이다. 품격이라는 단어를 곰곰 생각해 보았다. 질서가 있고, 우아하며 천박하지 않게 드러나는 모습으로 내면의 모습이 흘러 밖으로 비치는 것은 결코 나쁜 의미가 아닌데, 그것을 아파트, 차와 같은 데 붙이니 오히려 천박해 지는 모양새다.
십 수년 전, 신도시에서 살 때 직장 동료에게서 아이가 '우리 집은 아파트가 아니니 집에서 생일 파티를 하지 못하겠다.'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참 마음이 불편했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 이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아이들조차 알게 모르게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를 세부적으로 나눈다. 그러려니 살다가 지금의 동네로 이사를 왔는데 여러모로 놀랐다. 아이들이 전에 살던 동네 같지 않게 주거환경이나 부모들의 지위에 크게 상관하지 않고 자신을 보여주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물론 모두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내가 만난 사람들이 그러하다.) 나보다 사회와 이웃을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들은 경제적인 상황이 좋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안위보다는 함께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서로 힘을 합치고 강하게 유대하고 있었다. 그들은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만들고, 도서관을 만들고, 생협을 만들고, 아동센터를 만들고 지역의 쪽방촌 주민들과 함께 하고, 학교 앞 화상경마 도박장을 몰아내었다. 겨울에 난방비 아끼다 감기를 달고 살면서도 그런 삶의 조건들이 진정 자신에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이야기하는 모습에서 진정한 품격을 느꼈다. 그들과 함께 하게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지만 종교인들보다 더 헌신하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그렇게 살 자신이 없기에 한쪽 발만 담그려 하는 나를 깨닫는다.
2. 실격
실격당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실격당한 자들은 누구인가.
이 부분을 생각할 때는 뜬금 없지만 '관상'이 떠올랐다. 눈의 생김새가 어떻고, 코의 생김새가 어떤가를 보며 그 사람의 길흉화복을 점치게 되는데 백범 김구 선생님이 이야기 한 것과 같이 관상, 성상, 체상, 심상이라고 관상이 다는 아니지만 얼굴은 몸의 오장육부와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꼴은 타고난 건강을 드러내는 것은 맞는 것 같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의문이 들었다. 관상이 그러하기 때문에 그런 것일까, 아니면 그렇게 보기 때문에 그러한 것일까? 어쩌면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이 살면서 그렇게 보기 때문에 그렇게 해석되는 것은 아닐지 생각해 보았다. 일 예로 여학생은 남학생에 비해 수리능력이 좋지 못하다는 생각을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고 실제로 점수가 그러한데 그것은 실제로 수리능력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그런 편견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있었다. (http://health.chosun.com/site/data/html_dir/2010/10/14/2010101402141.html?Dep0=twitter, 그다지 마음에는 들지 않지만 조선일보의 예를 들어본다.)
장애인과 같은 사회적 약자들에게도 그런 편견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이럴 것이다. 저럴 것이다. 저자의 표현대로 그들의 서사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라면을 끓일 수 있는가'와 같은 기능에만 집중을 한다. 독거 노인에게 혼자 못 해 먹는 김치를 줬으면 고맙게 가지고 가야지 이러쿵 저러쿵 바라는 것이 많다고도 한다. 그들의 세부적인 욕구는 그야말로 거세 당한다. 또한, 장애인은 도와줘야 하고, 배려해야 하는 대상으로 보는 것도 편견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배려와 보호라는 명목은(혹은 편견은) 성인이 되기 이전까지는 그래도 학교를 다니면서 주어진 기능을 발달 시킬 수 있는데 성인이 된 이후에는 대부분 집이나 요양원에 머물도록 하여 그나마 있는 기능도 쇠하게 한다.
그런데 실격은 (내가 말하고 싶은 것, 내가 생각하는 것이 제대로 전달 될 기회도 없이 -거절이라는 것을 거칠 것도 없이- 단박에 판단되어지고 평가되어 지는 것은) 사회적 소수자들 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 같다. 수 많은 교실에서 조용히 하지 못해 판단되어지는 아이들은 스스로를 학교의 부적응자라고 꼬리표를 달고, 대학 입시에서 실패했기 때문에 실패자가 되고, 여성이기 때문에 판단되고, 노인 또한 혐오의 대상이 된다. 오래전 이야기지만, 버스였는지 지하철이었는지 어떤 나이가 있는 부부로 보이는 분들의 대화를 들었다. 남자분이 여자분에게 "자네는 집에서 빨래하고 밥 하고 단순한 일만 하지? 머리가 그렇게 굳어져서 내가 생각하는 복잡하고 중요한 일은 모를 수 밖에 없어." 지금으로서는 상상을 할 수도 없는 말이다. 지금의 용기가 있었다면 무슨 개가 풀 뜯어 먹는 소리를 하냐고 버럭 소리를 질렀을 것 같다.
3. 정체성과 수용
저자는 자신의 정체성에 반하는 보통의 사람들과 비슷한 상태, 최대한 정상적으로(?) 보이고자 노력하는 것에서 벗어나 정체성을 가지며 자신의 욕구를 인식할 것을 이야기 한다. 자신의 장애가 제한이 아닌 선물 같은 것으로 여기며, 이겨내고 정신승리자가 되는 것도 경계한다. 그것들은 어쩌면 자신을 부정하는 것으로 이것은 비정상적이라는 꼬리표를 스스로에게 가지는 모순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나는 나의 몸과 정신의 상태를 극복할 수 없으니 몸과 정신에 따른 결과를 책임질 필요가 없고, 책임질 수도 없다. 그럼에도 나는 내 몸이 자유롭고, 존엄하고, 가치 있어야 한다는 책임을 지기로 '결단'한다."고 정체성에 대한 수용을 한다. 스스로를 사랑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책임을 진다는 말은 그 무엇도 자신의 존엄을 훼손하지 못하도록 스스로를 지킨다는 강인함이 느껴진다.
4. 존엄, 역사의 진보
그럼에도 책을 읽는 내내 이런 생각도 들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적인 합의도 필요하고 비용도 많이 들잖아. 어떻게 개개인의 서사를 이해하고 수용하며 욕구를 만족할 수 있을까. 과연 가능한 일일까?
용산구 관내에 있는 어떤 사회적기업은 작년에 장애인고용을 핑계로 부당하게 큰 금액의 나랏돈을 횡령하려다가 내부 고발되는 사건이 있기도 했다. 사회적기업조차 사람을 수단으로 여겼다는 것에 허탈감을 느낀다. 지금은 코로나로 도서관이 휴관 중이지만 고래이야기에는 서울시 정책으로 작년 하반기부터 장애인근로코칭이 진행 중이다. 한 명의 코칭 선생님과 두 명의 경증발달장애인이 근무를 하며 업무를 배워나가는데 공간에 익숙해지는 것, 사람들과 인사를 제대로 하는 것에도 오랜 시간이 걸렸고, 간단한 사항도 아직 일일이 코칭 선생님이 일러주어야 한다. 어떤 친구는 책을 자꾸 뒤집어 꽂는다. 과연 이 친구들이 독립적으로 사서보조 업무를 할 수 있을까 싶기도 했다. 과연 이 친구들이 직업 훈련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이 지점에서 역사학자 이만열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역사의 진보는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역사의 주역이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지배 계급, 승리한 자들이 중심인 역사가 이어져 왔다면 좀 더 보통 사람, 나아가 모든 사람들이 역사의 주인공이 되어 가는 것이 역사의 진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대한민국의 촛불은 대단한 역사적 진보였다고 생각한다.) 더더군다나 소위 실격당한 자들은 역사의 주역으로 나서는 데 더욱 어려움이 많았을 것이다. 역사학자 이만열의 역사의 진보의 정의에 비추어 보았을 때 우리 사회는 그래도 지속적으로 진보하고 있으며 그 위에서 투쟁(?)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 소수자들도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 삶의 주역이 될 수 있도록 사회가 점차 점차 변해가야 할 것이다. 그것이 서로의 존엄을 세워갈 수 있는 길이 아닐까?
누가 어떻게? 그 또한 역사의 주인공들에 의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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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우와................ 이렇게 꼼꼼히 책 내용과, 내 삶과, 알고 있는 지식을 교직해서 쓰시다니, 놀라워요!
먼저 쓰신 두 분이 잘 쓰셔서 뒤에 쓰시는 분들이 부담 느끼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