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2학년 때 같은 반 친구가 허리가 옆으로 휘어 있었다.아마 교정 치료를 해야했던거 같고, 가정 형편이 어려웠던 그 친구를 위해 그 때 우리 반 아이들은 모금을 했었다. 임원이었던 나는 담임 선생님과 함께 그 친구 집에 찾아가 돈을 전달하고 왔었다.
그 후 아마도 조회 시간이었던거 같은데, 그 친구는 똑바로 서 있지 않고, 옆으로 삐딱하게 서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똑바로 안 서 있으니까 허리가 휘지."하며 얘기했고, 그러자 친구도 나에게 기분 나쁘게 반응을 했다.나는 속으로 '우리가 도와줬는데, 쟤는 왜 저래' 하는 생각을 했었고, 그 친구의 기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었다.
결혼 후 몇 달 뒤 나는 임신을 했다. 입덧으로 고생하다, 6개월에 접어들자 조금 나아지는거 같았다. 정기 검진을 받으러 병원에 갔었고, 의사 선생님은 초음파를 보다 심장이 이상한거 같다며 정밀 초음파를 받아보라고 했다. 정밀 초음파를 받으니, 아기 심장이 너무 크다며 상체의 2/3나 된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선생님은 아기를 포기하라고 권하였다.나는 의사 선생님 말에 따랐다.그 당시 내 생각에 정상이 아닌 아기를 낳을 수는 없었다.
39살 둘째를 임신했을 때, 의사 선생님은 양수 검사를 받으라고 했고, 나는 하지 않겠다고 했다. 의사 선생님은 그러면 애가 장애라도 낳을거냐고 물었고, 나는 그러겠다고 대답하고, 검사를 거부했다.
내 친구 중 하나는 세상적으로 잘난 축에 속했다. 한의사인 친구는 부잣집 외동딸인 예쁜 여자를 만나 결혼하고 딸을 하나 낳았다. 가끔 딸을 처갓집에 맡기고 와이프랑 해외 여행을 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팔자좋다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몇 년 후에 고백하기를 딸이 자폐라고 하였다. 그동안은 밝히지도 못하다가 이제는 얘기할 수 있게 되었다고. 그러며 가끔 자폐 딸 때문에 힘든 것을 토로하곤 했다. 음식점 가서 밥 먹다가도 아이가 증세를 보이면, 주위 사람 눈치가 보여 밥도 못 먹고 나온다는 얘기며, 여자 장애아들은 성폭행도 많이 당한다며 걱정하기도 했다. 둘째를 낳으면 그 애한테 짐을 지우는거 같아 둘째 낳는 것도 포기했다고 했다. 그리고 딸이 와이프랑 자신보다 먼저 죽었으면 한다는 말도 했다.
어느덧 우리 동네 버스도 저상 버스로 바뀌었다.
작년인가 버스를 탔는데, 그 때 휠체어를 탄 사람이 탔었다. 그 사람이 내릴 때, 버스 기사와 사람들은 힘을 합쳐 그 사람이 내리는 것을 도와줬다. 당연히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뭔가 울컥하며 눈가가 촉촉해졌다...
첫댓글 몸의 불편, 장애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이야기 네 개 모두 각각 몰입해서 읽었어요...! 특히, 둘째를 임신하셨을 때 양수검사를 거부하게 된 심경의 변화는 무엇이 가능케 했을까... 놀라운 마음에 여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