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3 담임이었던 ‘그’는 몽둥이를 들고 내 허벅지를 내려치던 모습, 그 하나의 형상으로 나에게 영원히 남아 있다.
나는 1교시가 시작돼 고요해진 크고 텅 빈 운동장을 혼자 터벅터벅 등교하던 날도 있을 정도로 전교에서 지각 잘하기로 유명한 아이였다. 아침에 일어나는 일이 유난히 힘들었고, 새벽의 기운이 온몸에 퍼지면 살아있음을 느꼈던 아이.
엄마는 나를 깨우느라 늘 지치셨고, 밥 한술이라도 먹고 가는 것만 중요하셨을 뿐, 지각하는 나를 크게 혼내지는 않으셨다. 그저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은 온전히 내 책임이라는 듯이 쯧쯧 혀를 차는 게 전부셨다.
내가 반 분위기를 흐린 건지, 유난히 우리 반에는 지각생들이 많았는데 선생님이 급기야 지각생들에게 몽둥이를 들기로 결심하셨던 것 같다. 1년 내내 몽둥이를 휘두르셨던 선생님이라 인기는 별로 없었지만, 나는 지각 빼고는 나름 우등생이었던지라 선생님이 그리 무섭지도, 몽둥이가 그리 실감나지도 않았다.
어느 날 선생님이 선전포고를 하셨다.
“내일부터 지각하는 사람들은 2대, 그 다음 날은 4대, 다음 날은 8대! 그렇게 배수로 맞는 횟수를 늘려갈 테니 지각하지 않도록!”
긴장한 탓에 처음엔 잘 피해가던 내가 다시 지각을 시작할 때쯤 맞는 횟수는 128대가 되어 있었다. 설마 했지만, 선생님은 자신의 말을 번복하면 체면이라도 깎인다는 생각인지 기어이 128대를 다 때리겠다고 나에게 칠판을 잡고 허벅지를 대라고 시켰다.
소문은 순식간에 퍼졌고, 전교생이 우리 반 창문에 모여들었다.
모두가 설마 날라리도 아닌 학생을 겨우 지각으로 128대를 때리겠냐며 수군대기 시작했다.
퍽! 퍽! 퍽!
나는 아니고, 단짝이었던 친구가 내 옆에 와서 울었던 기억이 난다.
집에 왔는데 그제서야 허벅지가 시커매진 걸 발견했던 기억이 난다.
엄마가 쯧쯧 하며 나를 토닥여주셨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나는 계속 지각을 했다.
선생님도 이젠 별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더 이상 지각에 대한 언급이 없으셨다.
선생님은 내 버릇을 고쳐주고 싶었던 걸까,
좋은 선생님이고 싶었지만 실패했던 걸까,
원래 포기가 빠른 사람이었던 걸까,
‘그’는 나에게 뭘 하고 싶었던 걸까 궁금함만 남는다.
첫댓글 아... 제 허벅지가 다 아파요 ㅠㅠㅠ
완전 충격...우리 학창 시절 체벌이 심하긴 했지만, 128대는...
놀라운 '추억'(?) 이네요. 빅에그썬님을 새롭게 인식하게 만드는 일화예요:-) 마지막에 '그'가 뭘 하고 싶었는지 헤아린 이유 중에 답이 있을지 없을지, 다른 이유는 없을지 생각하게 돼요.
저도 지각대장이라 공교육에 부적합한 엄마라고 딸이 놀리며 손자의 학원 버스 시간도 못 맞출 사람이라고
함께 걸어다닐 수 있는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졸업시켰어요^^ 학교 들어갔다고 초초해지는 마음이 그 선생님의 마음과 비슷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