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결혼을 하고 마지막 직장에서 만나 15년째 가까이 지내는 친구가 있다. 첫째와 둘째의 출산시기가 비슷하면서 더더욱 유대감은 커졌다. 마침내 그 친구에게 준비되지 않은 선물같은 셋째 딸이 태어나면서 늦둥이의 기발한 모습에 웃을 일이 참 많다.
두 가족이 모이면, 오빠 두 명과 언니 세 명 사이에서 막내가 얘기를 할 때면 ‘아~~니~~!’ 로 시작한다. 친구의 얘기를 들어보니 말 잘하는 식구들 사이에서 약자로서 자신의 논리로 말을 시작해야 할 때 발언권을 얻기 위해서 강한 부정의 단어인 ‘아~~니~~!’로 시작한단다. 다 같이 서커스단의 놀이를 할 때 오빠들은 무술쇼를 하고, 언니들은 체조를 하면서 등장하고, 다른 언니 한 명은 서커스입장권을 팔고, 막내에게 관람객을 하라고 시켰을 때, 솔톤의 ‘아~~니~~!’하면서다른 사람들을 멈추게 한다. 그래서 그럼 뭐 할 거냐고 물으면 ‘으~~음~~ 그러니깐~~ 으~~음~~ 나는 으~~음~~’하면서 생각을 이어간다. 기다리다가 그냥 그거 하라고 하고 다시 시작하려고 하면 막내가 다시 ‘아~~니~~!’라고 말을 하며 또 끊는다. 그래서 다시 멈추고 물으면 ‘으~음~’으로 시작하는 말하며 생각하기를 반복한다. 두 세 번 반복하다가 떠오르는 게 없으면 그냥 아무렇지 않게 웃으면서 신나게 논다.
내 친구 딸의 막내에게 ‘아~~니~~!’는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존중을 요구하는 신호이다.
반면,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부정의 단어를 써 본 기억이 드물다. 농사철에 일을 도와야 하는 일꾼의 역할이 우선이였기에, 주어진 일을 하기에도 버겁고 분주했기 때문인 거 같다. 일에 관한 질문만이 허용되었고, 그 외의 질문은 쓸데없는 즉, 필요없는 데에 시간을 허비하는 사람으로 취급되었다. 그런 환경에서 ‘아~~니~~!’라는 단어는 태생부터 허락되지 않았다. 아니, 아니라고 해 본 적이 있었다. 일을 시켰는데, 시킨 일이 틀린 때가 종종 있었다. 즉, 아니라고 해서 지시가 잘못되었음을 시정할 때는 가능했었다. 그 외에 언니들이 아니라고 했던 기억이 몇 번 있다. 그 댓가는 천하의 불효자식, 인정머리없고 무식한 자식 취급되는 걸 봤다.아니라는 말은 알고 있지만 입 밖으로는, 특히 부모님 앞에서는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부모님이 나쁜 분들은 아니였지만, 그 시절엔 그렇게 해야 먹고 살 수 있었던 거 같다. 내 자녀들과 함께 부모님댁을 방문하며 아니라고 종종 말하는 나를 발견했을 땐, 아! 나도 거절을 할 줄 알고, 부정의 단어를 쓸 줄 아는구나를 알게 되었다. 그런데, 부모님께는 거절의 의미로 전달되지 않는 걸 깨달았을 때는 절망했다.
‘너는 닥스 선생님이 싫으냐?’의 닥스선생님은 ‘수업이 끝난 뒤에 학교에 남아 있지 말자’라는 생활 목표를 ‘수업이 끝난 뒤에 학교에 남고 싶은 사람은 남아 있자.’로 바꾼다. 심지어 ‘규칙을 철저히 지키는 것이 교육이라고 생각하는 벽창호 같은 선생님들이 아직 수두룩하단다.’라고 말하며 자유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 하는 건 아주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아이들의 입장에서 어른들의 규칙을 어른이 깨는 이유를 설명하는 과정이 멋지다. 규칙보다는 아이들의 삶이, 삶에서 자유 시간을 누리는 선택권을 가질 수 있음을 부정으로 보여주었다.
친구 딸의 ‘아~~니~~!’와 닥스 선생님의 부정을 보면서 어쩌면 ‘아니’, ‘안돼’는 우리가 개인으로서 존중받고 싶다는 신호이자 아이들이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벽을 깨는 첫걸음이지 않을까?
첫댓글 하하하, 친구 딸 모습이 그려져서 글을 읽는 내내 미소가 머금어져요. 제목도 재밌고요!
친구 딸 이야기를 포착해서 닥스 선생님의 관점과 연결시킨 솜씨도 놀랍습니다.
샘의 글을 읽으니 부정적인 반응을 먼저 보이는 사람, 섣불리 긍정하지 않는 사람에 대한 편견이 있었는데, 다시 생각해봐야겠어요.
참, 기자단 모임 끝나고 글 올리기는 미루거나 건너 뛰게 되는데, 잊지 않고 글을 쓰신 성실함과 정성에 박수를 보냅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