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로 인해 십수년 습관처럼 내달리던 삶의 쳇바퀴에서 놓여나 새로운 경험을 했다.
새벽에 다니던 수영을 못하게 되었다, 그랬더니, 아침이라는 시간이 다시 열렸다. 새벽기도를 다녀와 먼저 화초에 물을 주고, 화분 하나하나를 살핀다. 꽃이 새롭게 피고, 새로운 잎이 돋아나는 과정을 매일 아침 확인하면서 어제보다 조금 더 자란 초록의 생명력을 알아차리고 기뻐한다.
사회적 활동이 줄어드니, 가족간의 시간을 더 많이(의도치 않게) 갖게 된다. 모두 성장해서 사회적 진입을 코앞에 둔 네 자녀들의 일상을 보다 자주 접하게 되고, 곧 다가올 독립 후의 이별을 대비해 맛있는 것도 좀 더 정성껏 하게 되고, 또 나누는 대화도 보다 신중할 수가 있다.
딸과는 동대문 종합상가를 가보게 되었는데, 비즈의 세계, 퀼트의 세계, 악세사리의 세계가 새롭게 열렸다.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던 바느질 공그르기의 세계에 입문을 다 하게 되었다. 함께 천을 고르고 부속품도 고르고 해서 필통, 주머니, 가방등을 만들어 나간다.
직책이 주는 의무를 수행했던 시간들이 이젠 인간 백성주가 사용하는 시간으로, 더 나다운 선택으로 메꿔나가는 법을 익혀가고 있다. 아무리 산다고해도 유한할 나의 삶이 이제 살아온 날보다 살아낼 날이 더 작아지는 상황에서 참 좋은 멈춤을 해 본것이다. 이것은 코로나가 내게 준 수혜이다.
그러나 코로나는 현재 전세계 18,443,344(국내 14,423)명의 확진자, 전세계 697,144(국내 301)명의 사망자등을 휩쓸며 전대 미문의 공포심을 안겨 주었다. 더구나 모든 매체를 뒤흔들었던 국내 감염경로는 청년들의 대거 도피처가 되어 주었던 종교, 열악한 노동환경에 내몰리는 콜센터, 물류센터등 우리 사회의 아킬레스건이 어디인지를 보다 확연히 보고 인지하게 해 주었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함께 겪었고 함께 기억할 것이다.
수영장이 오픈하여 다시 새벽 수영을 다니고 있다.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싶다. 이전과 달라 진 것이 있다면 이 시간이 내게 얼마나 소중한지, 그리고 가족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중요한 선택은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여러차례 연습한 상황에서의 시간 활용은 예전과 다르다. 화초는 여전히 아침마다 잠깐이라도 보고, 출근시 전동차 안에서는 책을 보고, 퇴근시에는 맛난 음식 요리법을 검색하면서 저녁메뉴를 고민한다. 자기 전, 소근이랑은 더 많이 이야기 한다.
내가 오늘 무엇을 먹었느냐가 나의 몸이 되는 것처럼 오늘 내가 무엇을 기억하느냐가 종국에는 나의 인격이 될 것이다.
코로나를 통해 막연한 공포를 겪어 낸 시간들에 대한 기억, 아이들과 함께 두려운 이 시기를 건넌 기억등이 나와 아이들에게 앞으로 겪어나갈 고비고비에서 충분한 근력이 되어 줄 것이다.
첫댓글 '무엇을 기억하냐가 종국에 나의 인격이 될 것이다'
는 말이 가슴에 서늘하게 내려앉습니다.
현재 진행형인 이 기억의 유효기간을 오래 유지하려면 자꾸 성찰하는 수밖에요
"더 나다운 선택으로 메꿔나가는 법을 익혀가고 있다."-> 이 문장에서 정말 반가웠어요. 저도 이 생각 하나 붙들고 지금 시절을 건너가고 있거든요.
앗, 글에서 보여주신 여러 장면들 사진이 추가되었네요. 고맙습니다~!
와우! 넘 좋은 글이에요! ^^
모퉁이님의 글을 읽으며, 생각해보니 코로나가 우리에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아요. 잠시멈춤의 시간을 선물해주었으니까요. 좋은 깨달음 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