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하기 전에는 하루를 온전히 내 뜻대로 보내는 일이 이렇게 어려울 줄 미처 몰랐다.
자고 싶을 때 자고 저절로 눈이 떠져서 잠을 깨는 사소한 만족감을 잊은 지 오래, 나의 정신건강에 지대한 도움을 주는 취미생활은 경제활동과 집안일에 늘 밀리고,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어하면 이기적으로 보는 따가운 눈초리가 나를 긴장하게 만든다.
대부분의 커플은 서로 상반되는 매력에 끌린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가 나를 사로잡았던 그의 매력은 결혼과 동시에 극복하기 버거운 단점이 되어 나를 덮치는 것이다. 10여 년을 함께 살면서 편안했던 날보다 긴장했던 날들이 더 많았다. 나와 너무 다른 사람이라서. 언젠가는 온전히 내 뜻대로 보내는 하루를 만들기 위해 투쟁해왔다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찾아질 내 기준에서의 평화로운 일상이 있을 거라고 기대하고 살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남편은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어서 나는 우리집을 내 뜻대로 움직이는 '마이 월드'로 구축하지는 못했다. 반은 맞춰주고 반은 내게 맞추도록 하는 협상이 오늘도 일어나는 와중이다. 협상을 하느라 오늘도 지지고볶는다. 부부의 세계에서 한쪽만 인내한 결과는 늘 좋지 않다. 그냥 참아주는 건 언젠가는 그냥 터지고 마니까.
마흔 중반, 결혼 후 '마이 월드'를 구축한 친구들이 꽤 보인다. 다들 10여 년쯤 살았으니 누구 하나는 포기하고 한쪽이 완벽하게 기세를 잡은 것이다. 조금은 부럽기도 했다. 그런데 시끄러운 소음을 못 참는 한 친구가 남편과 아이들이 집에서도 까치발을 하고 다니고 문 하나도 쾅 닫지 않는다며 엄마를 위할줄 아는 착한 가족들이라며 자랑을 하는 데 이르러서는, 이건 좀 심하다 싶었다. 까치발을 하고 다니는 그녀의 가족들은 이렇게 해야 엄마가 행복하고 엄마가 행복해야 가정이 평화롭다는 세뇌(잔소리)를 수없이 받았으리라. 누구에게서? 집에서 서열 1순위인 최고 권력자 엄마에게서.
내가 진짜 놀랐던 건, 집안에 '마이 월드'를 구축한 그녀들이 한결같이 사는 게 지루하다고 했을 때였다. 평화로워서 행복한데 동시에 삶이 무료하고 우울해질 것 같다며 새로운 자극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본인은 지루하고 가족은 눈치보는 그녀들의 '마이 월드'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매일 얼굴을 보는 가족이 늘 새로운 자극이 되어줄 수 있다면 좋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러려면 가족들에게 온전히 그들 뜻대로 사는 삶을 돌려주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도저히 내가 예측할 수 없는 하루하루가 이어지도록 내가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는 조금의 권력이라도 내려놓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오늘은 내 남편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해 미치겠고, 오늘은 우리 아이들이 어떤 꿈을 꾸는지 함께 설렐 수 있고, 오늘 내가 보낸 하루가 가족들에게 진심으로 인정받고 박수받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멋진 신세계>를 읽고 평화로운 어느날을 기대하기보다는 협상의 연속인 오늘에 감사하게 되었다.
첫댓글 평화가 주는 지루함이라니, 정말 인간의 욕망은 놀라워요. 인간은 행복하기 위해 진화한 게 아니라,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 근본적으로는 "욕망하기 위해" 진화했다는 관점이 다시 소환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