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초기 인트로 앨범 중 ‘아홉, 열 살 쯤 내 심장은 멈췄다’는 가사가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때쯤이 처음으로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고,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나를 보게 된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 때 이후 저는 점차 밤하늘과 별들을 올려다 보지도 않게 됐고 쓸데없는 상상을 하지도 않게 되었습니다.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틀에 저를 끼워 맞추는데 급급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우리는 이름을 잃어 버렸고 유령이 됐습니다.
지금, 저는 당신에게 묻고 싶습니다.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무엇이 당신의 심장을 뛰게 만듭니까?”
- BTS 유엔연설문 중
얼마 전, 오랫만에 학교 선배를 만났습니다.
선배는 제게 대학 땐 안 그랬는데, 지금은 왜 이리 생기가 없냐며 걱정했습니다. ‘다소 천방지축일정도로 생기발랄하던 너였는데 지금은 빛을 잃었다’는 선배의 말에 내가 그런 사람이었던가 기억을 더듬어보았습니다. 까마득한 옛날이라 잘 생각이 나질 않습니다. 지금과 너무나 다른 모습이기에 떠올리기 더 어려웠습니다.
다행히 선배가 쏟아내는 무수한 에피소드를 들으면서 조금씩 기억이 살아났습니다.
‘그래, 그랬지. 그 땐 펄떡이는 생선 같았는데...’ 기억은 이내 씁쓸함으로 바뀌었습니다.
왜 내가 생기를 잃어버렸을까. 왜 나란 존재를 잊고 살았을까.
돌이켜보면 저는 인생을 무겁게 산 것 같습니다. 굳이 그렇게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데 늘 뜻대로 되지 않을까봐 안절부절했습니다. 첫 아이를 낳고 인생이 내 맘대로 되지 않는구나를 깨달았을 때, 무거운 맘을 내려놓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나만이 갖고 있는 색깔을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 그리고 누군가가 정해놓은 틀에 저 자신을 끼워 맞추려고 했습니다. 세상이 정해놓은 표준 시계에 따라 숨가쁘게 살아왔습니다. (몇 살에 결혼하고, 몇 년 뒤에 아이를 낳고, 언제 승진하고, 집 장만은 언제하고 등)
그렇게 저는 빛을 잃고, 이름을 잊고 살았습니다. 긴 시간 잠자던 저는 선배의 말에 정신을 차렸습니다.
그리고 그 때 읽은 책이 ‘증상이 아니라 독특함입니다’입니다. 이 책은 신경다양성에 대한 보고서입니다. 난독증, 자폐, ADHD 등 다양한 신경장애 유형을 소개하면서, 이들의 독특함이 어떻게 장점이 될 수 있는지를 말합니다. 저 자신은 이러한 장애를 겪지 않았기에 세부적인 내용보다 서두에 나와 있는 8가지 신경다양성 원칙이 더 크게 다가왔습니다. 그 중 6번 째 원칙인 ‘내 주변을 자신의 뇌에 맞춘다’는 저와 아이에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특히 저처럼 맞지도 않는 옷에 몸을 꾸겨 넣어 결국 생기마저 잃어버린 사람에게라면 더욱 더요.
잃어버린 생기를 되찾기 위해서는 나의 독특함, 특징을 잘 파악하는 게 우선이겠습니다.
솔직히 오랜 시간 잊고 있던 감정이라 그것을 찾는 게 쉽진 않겠지요. 그래도 하나씩 시도해보려 합니다. 환경에 나를 끼워 맞추는 게 아니라 나에게 맞춰 환경을 변화시키는 방향으로요. 그리고 같은 눈으로 아이를 볼 것입니다. 아이가 커갈수록 표준잣대를 들이민 경우가 많았는데 이제라도 깨닫게 되서 다행입니다.
다음 번 글을 쓸 땐 생기를 되찾게 될지, 아니면 여전히 그대로 일지 궁금합니다. 그 때 다시 한 번 찾아뵙겠습니다. 그럼 이만.
첫댓글 내가 원하는 걸 찾는다..
나는 이미 너무 늦은 게 아닐까, 너무 무뎌진 게 아닐까... 막막합니다
임진희님 글을 읽으니 책을 읽어보고 싶어요. 다음 글도 기다릴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