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출판기획자로 일하면서 수없이 보도자료를 쓰고 또 보도자료를 쓰고 늘 보도자료만 쓰고…… 사실 내 글이라고는 책들을 위한 보도자료가 거의 전부였습니다. 그것도 몇 편 되지 않는. 출판사를 그만둔 순간, 더 이상 글을 쓸 일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진짜 내 글’을 쓰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래! 나에게 진짜 내 글이란 더 이상 책이 아닌 ‘나’를 위한 보도자료겠구나! 꽤 멋지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글을 쓴다면 일기가 기본이겠죠. 예전부터 일기를 쓰려고 여러 번 노력해봤습니다. 그런데 일기를 쓸 때마다 저는 묘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가식적이라는 생각, 아니면 쓸데없다는 생각. 저는 하루 종일 저에 대해 골몰히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일기란 자고로 나에 대해 집중해보는 시간이지 않겠습니다. 일기를 쓰는 그 순간만큼은 내가 누구인지, 내가 무엇을 느꼈는지, 내 안을 탐험해봐야 할 터인데, 저는 머릿속으로 늘 내가 누구인지 정리를 하고 있고 무엇을 느끼는지 예민하게 느끼고 있기 때문에 일기를 쓰려고 하면 쓸데없는 일이 반복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 일기가 아닌 다른 형식이어야겠다! 왠지 나다움을 찾은 듯했습니다.
잠시 잠깐, 출판사 홈페이지에 제 마음대로 칼럼 게시판을 만들고 칼럼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편집자의 시선으로 출판계의 현실과 비전 등을 적었지요. 하루 24시간 책 생각만 할 때라 정말 하고 싶은 말도 많았고 어디서도 풀지 못한 내 사정을 하소연하는 기분으로 술술 썼던 기억이 납니다. SNS가 활발하지 않던 시절이라 사람들이 읽을거리가 많지 않았던지 그래도 조회수가 몇 백은 나왔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가장 즐거운 글쓰기 추억입니다. 쉽게 썼고, 기대보다 많은 사람들이 읽어줬고, 나만큼 이 분야를 잘 아는 사람도 없을 거라는 자신감도 충만했고. 그렇게 삼박자가 잘 맞으니 글 쓰는 맛이 났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 이런 글만 쓰면 될까요?
사교육걱정에서 글쓰기를 공부하면서 책 리뷰, 강연 리뷰, 짧은(정말 짧은) 소설 등을 써봤습니다. 1년쯤 전에 글쓰기 욕망이 충만할 때 잠시 브런치를 열어 글 한 편을 적었을 때보다 훨씬 뒤처지는 글이 나오는 것 같았습니다. 후퇴하는 기분이 싫은 건 저뿐만은 아니겠죠. 내가 모르는 분야를 무턱대고 ‘쓴다’는 것이 저에겐 건방진 일 같아 보입니다. 나의 메시지가 정확히 드러나지 않는 글에는 점수를 줄 수가 없습니다. 메시지는 쉽게 나올 수 없다는 것도 잘 압니다. 그만큼 쓰려는 주제에 대해 통달해야 할 것만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쓰기 영역을 확장하고 싶습니다. 고민이 깊어지네요.
저란 사람은 글쓰기 전에 더 많이 공부하고 내 의견을 정하고 강력한 그 하나의 메시지가 잘 전달되는 글을 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겠습니다. 글을 쓰면서 정리가 되었습니다. 역시 글의 힘이란 이런 거군요! 표현해야만 결론이 내려지는 일들이 있습니다. 말하면서 생각나는 말이 있듯이, 쓰면서 떠오르는 글이 있다는 것을 오늘 또 알게 되었습니다. 글을 쓰게 하는 동기부여가 이 세상의 가장 훌륭한 글쓰기 선생님 아닐까요. 검사받아야 할 글을 쓰게 해주신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