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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학년도 수능 수학 가형 시험 범위에 <기하>가 빠진 것에 대한 수학·과학계의 반발이 극심하다. 이 글은 요즘 수학계가 주장하는 대로 <기하>가 4차 산업혁명시대에 가장 중요한 과목임을 인정해서 쓰는 것은 아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에 대한 소비적인 논쟁보다 어떻게 배울 것인가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넘치는 정보와 자료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지 정보 그 자체가 아니다.
만약 <기하>가 수능 과목에 포함되고 <미적분>이나 <확률과 통계>가 제외되었더라도 수학계는 똑같은 주장을 했을 것이다.
“4차 산업혁명시대에 이공계 공부를 하는데 가장 기초가 되는 <미적분>이 얼마나 중요한가?”
“4차 산업혁명시대에 빅 데이터, 사물 인터넷 등을 잘 다루어야 하는데 <확률과 통계>를 빼다니?”
다만, 수학계에는 이번 <기하> 제외가 수능 역사상 고등학교 수학 전과목이 시험 범위에서 한 번도 빠진 적이 없는 과거의 경험에 대한 충격일 수 있다.
이 글에서는 다음 두 가지 관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기하>가 수능 과목으로 포함되는 것과 제외되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타당한가?
둘째, <기하>가 수능 과목에서 제외되면 고등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는가?
1. <기하>를 수능에서 제외해야만 <기하>의 교육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2018년 2월 서울대 입학본부가 보고서로 발표한 <2015 개정 교육과정과 연계한 입학전형 발전 방안 연구>에 따르면 수능의 문제점을 심각하게 지적하고 있다. 수능 시험 점수를 따기 위해 문제집을 반복적으로 풀게 하고 있는 고등학교의 수업 현실은 대학 수학(修學)을 위해 필요한 학문적 재능과 역량을 충분히 확인하는 지표로써 한계점을 드러내고 있다. 오지선다형인 수능 앞에서 학생은 은연중에 하나의 정답만이 옳다고 생각하는 편협한 사고를 강요받게 된다. 더불어 본래 교육과정을 통해 익혀야할 기능과 태도 영역은 현재의 ‘수능’ 시험에서 확인조차 할 수 없다. 수능은 본래 교육과정을 통해 각 교과마다 학생이 익혀야 할 지식·기능·태도를 고르게 평가할 수 있는 도구가 아니다. 시험지라는 종이 위에 적힌 문제의 정답만을 선택하도록 하는 단편적인 지식 확인 과정 이상의 것이 아니다.
또한 2015 개정 교육과정의 특징 중의 하나는 교수·학습 개선을 통한 수업 혁신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즉 학생들이 학교생활 속에서 학생 각자의 소양과 자질을 개발할 수 있는 기회가 학교생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교실 수업 안에서 다양하게 제공될 수 있도록 제안하고 있다. 교육과정 내용에 대한 성취기준을 달성하기 위한 적절한 수업 방법은 물론 평가 방식도 개선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학생마다 다른 재능과 적성을 획일적인 측정 수단으로 평가하지 말고 교육과정을 통해 학생이 함양해야 할 실제 역량을 충분히 얻어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서울대, p.112).
한편 교육부는 2015 개정 교육과정 해설(교육부, 2017)에서 학생 스스로 지식을 창조하고 가치를 창출할 수 있도록 하는 ‘창의성 발현’을 교육과정 구성의 중점으로 거론하면서 학습자의 능동적인 태도가 교육 목표의 성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로 보고 있다. 그러므로 학습자의 능동성을 이끌어내는 교수·학습 방법은 필연적인 것이며 학생 참여형 수업을 확대하고, 토의·토론 학습을 활성화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국내의 수학·과학계도 현재의 평가 방식의 변화에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것이다. 2018년 5월, 수능 <기하> 배제를 반발하는 원탁토론회에서 나온 결론을 토대로 발행한 <한림원의 목소리 72호>에 제안된 사항 중에도 ‘과정을 중시하는 평가’를 적용하라는 권고를 하고 있다. 2015년 8월 미래부와 수리과학연구소가 공동으로 개최한 산업수학 문제헌터 발대식 기조연설에서 박형주 교수는 수학 공교육 강화를 위해 위한 방법으로 ‘반복적인 문제풀이와 숙제 지양’을 주장했다.
앞에서 거론한 서울대 보고서에서도 ‘창의융합형 인재 양성’을 위해 적절한 교수·학습 방법과 평가 방법을 제안하고 있다. 학습자의 능동적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소집단 공동 학습 활동을 통한 협동학습 경험을 충분히 제공해야 하며, 단편적 지식의 암기를 지양하고 핵심 개념과 일반화된 지식의 심층적 이해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그리고 학습 내용을 실제적 맥락 속에서 적용하고 활용할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제공하는 수업이 필요한 것이다.
수학계가 주장하는 대로 정말 <기하>가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한다고 해보자. 그렇다면 오히려 <기하>는 수능 과목에 제외되는 것이 타당하다. <기하>가 수능 과목이 되면 그야말로 문제 풀이 위주의 수업이 난무한다. 지식 위주의 오지선다형 평가로는 학생 참여 중심의 수업을 의미 있게 견인할 수 없다. <기하>가 중요하고 그것을 제대로 가르치는 것은 학생 참여 중심의 수업과 과정 중심 평가를 통해서 해결해야 한다. 수학계가 만든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 <기하> 교과의 학습 목표를 보면 더욱더 극명하게 드러난다.
가. 사회 및 자연 현상을 수학적으로 관찰, 분석, 조직, 표현하는 경험을 통하여 이차곡선, 평면벡터, 공간도형과 공간좌표에 관련된 개념, 원리, 법칙과 이들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고 수학의 기능을 습득한다. 나. 수학적으로 추론하고 의사소통하며, 창의・융합적 사고와 정보 처리 능력을 바탕으로 사회 및 자연 현상을 수학적으로 이해하고 문제를 합리적이고 창의적으로 해결한다. 다. 수학에 대한 흥미와 자신감을 갖고 수학의 역할과 가치를 이해하며 수학 학습자로서 바람직한 태도와 실천 능력을 기른다. |
수학계는 <기하> 교육의 목표를 위와 같이 세 가지로 제시하고 있다. 이 중에서 수능 시험으로 달성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사회 및 자연 현상을 수학적으로 관찰, 분석, 조직, 표현하는 경험을 오지선다형인 수능으로 평가하는 것은 효율적이지 않을뿐더러 불가능하다고 하는 것이 더 적당한 표현일 것이다. 수학적으로 추론하고 의사소통하는 능력, 창의·융합적 사고 등을 어떻게 수능으로 평가할 것인가? 특히 수학에 대한 흥미와 자신감을 갖고 수학의 역할과 가치를 이해하며 수학 학습자로서 바람직한 태도와 실천 능력을 기르는 일은 수능이 아니라 수업을 통해서만 구현할 수 있는 목표라 할 수 있다.
또한 2015 수학과 교육과정에서 공간도형의 ‘교수·학습 방법 및 유의사항’으로 제시한 “우리 주변의 자연이나 건축물, 예술작품 등에 나타난 공간도형의 성질을 이해하고, 수학의 심미적 가치를 인식하게 한다.”는 것도 수업을 통해서 달성가능한 일이지 오지선다형 수능 문제로 평가할 수 없는 일이다. 2015 개정 교육과정이 지향하고 있는 학생 참여 중심의 수업과 과정 중심 평가를 통해서 매 시간 학생들의 성취를 피드백하고 정의적 영역의 성취도를 높여야만 해결가능한 일이다.
2. <기하>는 고등학교에서 얼마든지 가르칠 수 있다.
<기하>가 수능 과목에서 제외되면 고등학교에서 가르칠 수 없는가에 대한 답은 ‘아니다’이다. 얼마든지 가르칠 수 있다. 진로 선택 과목인 <기하>는 공통 과목인 <수학>을 학습한 후, 기하적 관점에서 심화된 수학 지식을 이해하고 기능을 습득하기를 원하는 학생들이 선택할 수 있는 과목이다(2015 개정 교육과정). 고1에서 공부하는 <(공통)수학>만 학습하면 고2부터는 언제든지 <기하>를 가르칠 수 있다. 이것에 대한 판단은 고등학교가 하며, 대학이 입시에서 이공계의 필요한 학과 지원 자격에 <기하> 이수(履修)를 강제할 수도 있다.
대학이나 수학계가 <기하>를 중시한다면 이미 수시모집이 70% 이상인 현재의 대입 상황에서 고등학교가 결코 <기하> 교육을 소홀히 할 수 없을 것이다. 대학은 학생부 전형 등 수시모집에서 이미 각 고등학교에 대한 교육과정을 중요하게 평가하고 있으니 <기하>는 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 절대 소홀히 다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고등학교 관계자나 수학 교사들 역시 교육적인 양심을 가지고 <기하> 교육에 대한 고민을 할 것이라 믿는다. 각 학생은 진로 선택을 3개 과목 이상 이수해야 하기 때문에 <기하>가 정말 중요하다면 학교에서 선택할 가능성은 물론 학생 개인이 선택할 가능성 또한 높을 것이다.
3. 4차 산업혁명시대에 걸맞는 교육은 무엇일까?
4차 산업혁명시대 바람직한 ‘인재’가 되려면 어떤 능력을 갖춰야 할까? 미래부 산하 미래준비위원회가 만든 <미래 일자리의 길을 찾다>를 보면 ‘미래 인재’의 모습이 자세하게 드러나 있다. 여기에선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역량을 3가지로 정리했다. 첫째는 창의성을 바탕으로 복잡한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다. 둘째는 인간과 기계의 공생을 통해 다양성의 가치를 조합하는 대안 도출 능력이다. 셋째는 기계와 협력하고 소통할 수 있는 역량이다.
<협력하는 괴짜(Cooperative Geeks)>의 저자 이민화는 “정답이 따로 없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창조적인 발상과 집단지능을 활용한 협력적 문제 발굴과 해결이 중요해졌다. 최초 개척자의 역할을 할 인재를 키우기 위해서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문제를 찾고 해결하는 창조와 협력의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와 같은 4차 산업혁명시대의 이상적인 인재상은 현재와 같은 우리나라의 교육 시스템에서 잘 길러질 수 있다고 보기 어렵다. 오지선다형으로 정답이 하나뿐임을 강요받는 교육은 더 이상 경쟁력이 없다. <제4차 산업혁명>의 저자 크라우스 슈밥은 칸막이식 사고의 틀을 벗어나 다양한 생태계를 포용 통합하고 협력적이고 유연한 구조를 만들어내고, 공동의 담론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기하>가 정말 가르쳐야만 하는 중요한 과목이라면 그것은 결코 수능 시험이 아닌 학생 참여형 수업으로 해결되어야 할 일이다.
2007년 앨빈 토플러는 “한국의 학생들은 하루 15시간 동안 학교와 학원에서 미래에 필요 없는 지식과, 존재하지도 않을 직업을 위해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고 했다.
현재 근로시간 단축을 위해 주당 52시간을 상한선으로 하는 것에 공감대가 모아지고 있지만 학생들의 삶은 거꾸로 가고 있다. OECD 국가 학생들은 주당 33시간 정도 공부하는데 우리나라 고등학생의 경우는 주당 평균 70시간(일반고 2학년), 80시간(특목고 2학년)을 넘어가고 있다. 우리나라 학생들의 삶의 만족도는 세계 꼴찌이고 학습 효율도 바닥이다. 건강은 물론 창의성이 질식당하고 있다. 수능 시험 범위가 <기하>로 확대된다면 우리는 또다시 아이들을 다람쥐 쳇바퀴로 몰아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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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공감합니다.
벡터의 내적을 이용하는 문제풀이나 계산을 귀신같이 하는 학생들이
두 벡터의 크기의 곱에 cos값이 곱해지는 이유를 모르고 있는 현실...
또한 벡터의 내적이 중학교 과학에 나오고 고등학교 과학에서 배우는 일의 크기를 계산하는 법이라고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저 계산만 할뿐 그 의미를 모르는 채 시험의 답을 찾는데만 사용되는 기하를 보며
우리 교육의 현실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아..선생님의 글을 보니, 영혼없이 암기하기 포기..!
한땀..한땀.. 수놓듯이 이해하려 노력하겠습니당.
바쁘신 일정에도 우매한 질문에 영혼있는 친절한 답변 감사합니다^^
잘 숙지하여 지인들께 공유하겠습니다~^^
어른들에게만 저녁있는 삶이 필요한게 아니라 학생들이야말로 저녁있는 삶이 필요한데...ㅠㅠ
공부다운 공부를 회복하는 길만이 저녁있는 삶을 가능하게 할거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