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 상서중, 故 송경진 교사를 애도하며
채하(전북 고교 교사)
산 옆 외 따른 골짜기에 혼자 누워있는 교사를 본다. 아무 말, 아무 움직임 없이 하늘을 향해 눈도 감지 못하고 차가워진 교사를 본다. 따스한 눈빛, 햇빛에 반짝이는 은빛 안경, 故 송경진 선생님! 당신은 자부심 강한 대한민국이자 전북의 교사셨구나.
가슴에선 아직도 더운 피가 뿜어 나온다. 장미 냄새보다 더 짙은 피의 향기여! 지금도 입가에선 무엇이든 학생에게 다 줄 수 있다는 열정이 솟구친다. 수국향기보다 더 진한 교육자의 냄새여!
엎드려 속상하고 분한 그 교사의 주검에 뭉클하며 나는 당신이 주고 간 마지막 말을 듣노라.
“나는 죽었노라. 쉰여섯 늦지 않은 나이에 대한민국의 교사로 숨을 마치었노라. 질식하는 이념과 독선의 바람이 미쳐 날뛰는 전북교육에서 상서중학교 교단을 지키다가 드디어 숨지었노라. 내 손에는 범치 못할 정의(正義), 머리에는 끼어지지 않을 교사로서의 사명감이 씌어져 불의와 거짓과 싸우기에 한 번도 비겁하지 않았노라.
내 핏속엔 그보다도 더 강한 양심의 혼(魂)이 소리쳐 나는 달리었노라. 아이들이 있는 곳이라면 산과 골짜기와 바다를 가리지 않고 셜리반처럼, 페스탈로치처럼, 헤르바르트처럼 인간의 세상을 만들어가기 위해 밤낮으로 가식적 세상을 밀어가며 싸웠노라.
나는 더 가고 싶었노라. 저 고통의 처음까지, 저 위선의 발원지까지 가고 싶었노라. 인간을 버린 폭풍우가 되어 무시무시한 어두운 죽음의 장막에서 소용돌이치는 가짜 진보의 피라미드까지 밀어가고 싶었노라.
내게는 사랑스러운 아내, 귀여운 딸, 든든한 형제들도 있노라. 어여삐 사랑했던 청춘의 기억도 있었노라. 나도 이 땅의 당신들처럼 봉오리지어 가까운 내 사람들과 함께 인간으로 피어 살고 싶었노라. 아름다운 저 하늘에 무수히 나르는 부안의 바닷새들과 함께 부둥켜서 노래하고 싶었노라. 그래서 더 뜨겁게 교사로, 가장으로 살았노라.
나의 아내여! 딸이여! 동료들이여! 제자들이여!
모두가 나의 죽음을 알지는 못하지만 지나가는 습기찬 바람이 숨지어 넘어진 내 더운 피를 토닥거려 식혀주고 저 하늘의 푸른 별들이 밤새 내 외로움을 위안해주지 않겠는가?
이제 나는 교사의 수의(壽衣)를 입은 채 골짜기 풀숲에서 지친 몸을 쉬노라. 애지중지 가꾸던 고추며, 참외며, 양배추를 떠올리며 전북 교육청과 전북학생인권센터의 강압에 짓눌린 수치와 좌절의 기억을 내려놓느라.
나는 내 분신(分身)이자 미래인 가족을 위해 살았고, 교육을 위해 지식인과 교사로서 교단에 섰으며, 마지막까지 교사로서 자존감을 지키려다 숨지었나니, 여기 내 몸 뉘인 곳인 낯선 골짜기와 밤이슬 내리는 풀숲에서 박대 받던 접동새(子規)의 영원한 짝이 되었노라.
바람이여! 저 이름 모를 새들이며! 그대들이 지나는 어느 길에서 누구라도 교사를 만나거든, 학생이 물어보거든 부디 일러다오. 나를 위해 울거나 안타까워하지 말고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며 울어달라고.
저 가볍게 나는 부안의 새, 비둘기야! 혹시 네가 살았던 상서중에서 내 사랑했던 제자를 만나거든 나를 위해 지못미(지켜주미 못해 미안해)하거나 그리워하지 말고 ‘이념이 있기 전에 인간이 있고 법이 있기 전에 밥이 있는 사람들의 세상’을 위해 울어 달라 일러다오.
사랑하는 아내여! 딸이여! 학생들이여!
나는 인간의 진실과 양심을 지키기 위해 갔다. 전라북도교육청 산하의 학생인권센터가 학생들의 집을 방문할 때마다 나는 징그러운 벌레였으며, 부안교육지원청이 “선생도 만나지 마라, 학부모도 만나지 마라, 상서 근처에 얼씬도 하지 마라, 집에 가만히 있으라, 9월 1일자로 특별전보발령을 낼 것이니까 다른 학교에 가서 징계를 받으라.”고 할 때마다 겁에 질려 숨조차 쉬기 어려웠다. 전라북도교원연수원으로 팽개쳐져 감옥의 독방마냥 견뎌냈던 100일에 가까운 굴욕의 시간에서 결국 나는 먹는 것, 자는 것, 입는 것의 기억을 잃어버렸다.
나는 갔다. 그 것들을 모두 내 안으로 접고 갔다. 사자(死者)로서 질식할 것 같은 공포와 두려움 어둠을 해치고 부활의 첫 새벽을 열기 위해 총총히 갔다.
아누비스(Anubis)여! 테미스(Themis)여!
오래지 않아 거친 바람이 내 몸을 쓸어가고 저 땅의 벌레들이 나와 함께 할지라도 나는 기쁘게 그들과 함께 벗이 되어 골짜기 내 나라의 땅에 한 줌 흙이 되고자 하니, 바라건대 아직 채 식지 못한 내 주검과 살아있는 전북의 교사들을 위해 인권으로 포장한 가짜 진보들의 행진을 멈추게 해다오. 내가 거짓을 인정하는 것은 비겁하고, 항복보다 노예보다 비열하기에 복종하지 않았고 광기와 독단의 세상에 맞서다 죽은 것을 기억해다오.”
산 옆 외 따른 골짜기 혼자 누운 故 송경진 교사를 본다. 아무 말, 아무 움직임 없이 하늘을 향해 눈을 감지 못한 망자의 한을 본다. 그대는 자상하고 다정다감하며 자부심 강한 이 땅의 교육자였고 남편이었으며 아버지였구나. 가슴에선 아직도 채 마르지 않은 뜨거움이 분수마냥 치솟는다.
첫댓글 이런 일도 있군요..정말 안타깝네요..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제대로 드러나고 해결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