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아이 중 한 명은 친구의 부탁을 잘 거절하지 못합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아이에게 화를 내고 혼을 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아이는 유치원에서 대장 노릇을 하는 아이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자신도 공주역할을 하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그 아이는 우리아이를 놀이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아이는 혼자 울었다고 합니다.
전 그래서 그런가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시간이 흘러서 아이가 4학년이 되었을때, 저의 다른 아이의 상처를 알았을때, 우리 아이가
유치원에서 당한 것은 왕따였음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는 더 이상 친구에게서
따돌림당하지 않기 위해 친구의 말을 무조건 들으려고 한다는 것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유치원에서 지속적으로 그런 일을 당하지는 않았습니다. 아이가 친구의 말에 복종하게 되었으니까)
무척 아쉬운 것은 그것을 지켜본 유치원선생님의 생각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왕따를 시킨
가해아이의 엄마에게 가해아이가 리더쉽이 뛰어나다고 칭찬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선생님은
저에게는 우리 아이가 순수하고 너무도 좋다고 했습니다.
만약 선생님이 아이들의 놀이에 적극 관여하여 모든 아이들이 여러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도했다면,
아이들은 유치원에서 좋은 인성교육을 배울 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어떠한 아이도 상처입지 않고
서로를 존중하면서 배려하는 그러한 것을 배울 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가해아이는 초등학교에 가서 친구를 놀렸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가해아이는 자신의 말을 듣지 않으면 친구의 사소한 약점을 이용하여 지적했습니다. 우리아이는
사투리를 쓴다는 지적을 받았고 아이는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래서 우리아이 또한 다른
아이의 약점을 이용하여 놀리기도 합니다. 친구가 실수하면 큰 소리로 웃어서 상대방을 상처입게 합니다.
물론 그 사실을 안 저는 아이에게 설명하고 있지만, 쉽게 고쳐지지는 않고 있습니다.)
아이의 이상한 행동은 아이의 마음의 상처에서 비롯되었을 수 있습니다.
아이를 혼내기 전에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를 생각해야 합니다.
아이를 이해하고 바르게 이끌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학교에 가기 싫다는 말을 하거나, 그런 뜻을 비춘다면 아이의 말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됩니다.
아이를 살피고 무엇이 힘든지 살피고 또 살펴야 합니다. 아이를 어떻게 도울지 고민해야 합니다.
아이의 도움의 외침을 놓치지 않았으면 합니다.
전 제 아이들의 외침을 놓쳤고 아이들은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전 세상을 잘 모릅니다. 누군가는 절보고 온실속에서 자랐다고 했습니다. 전 그 말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 말에 동의합니다.
제 아이들의 상처를 보면서 많은 것을 배웁니다.
제 아이들의 첫 사회생활이었던 유치원은 저에게나 저의 아이들에게나 너무나도 위험한 곳이었지만,
저도 제 아이들도 알지 못했기에 큰 상처를 입어야 했습니다.
물론 이러한 경험이 초등학교 생활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어떤 아이도 비난받거나, 외면받거나, 소외되거나, 무시되어서는 안됩니다.
모든 아이들은 보호받고 지도받아야 합니다.
우리 아이를 왕따시킨 아이를 잘 지도했다면 유치원생활은 아주 완벽했을 것입니다.
우리 아이를 때렸던 아이를 잘 지도했다면 우리 아이는 분노를 가슴에 간직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지도한다는 것은 아이를 도와주는 것을 말합니다. 친구를 왕따시키고 때리는 아이는 도움이 필요한 아이입니다.
제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이 아이들을 도와주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유치원때의 모든 상황이 같게 흘러가는 과거로 돌아간다면 글쓴이께선 어떻게 하실지 궁금해요.
저도 비슷한걸 겪고 있어요. 선생님께 하지 말라고 하면 아이에게 불이익이 갈까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왕따의 문제라면 선생님께 말씀 드렸으면 합니다. 아니면, 제 글을 선생님께 보여드렸으면 합니다. 선생님들은 좋은 분입니다. 단지 몰라서 하지 못할 뿐입니다. 제 아이의 담임이 이러한 사실을 안다면 무척 마음이 아플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선생님은 정말 최선을 다했지만, 자신의 반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 놀림과 왕따라는 것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였습니다. 단지, 사회성과 인성이 제대로 자라고 있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유아를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이런 아이도 있고 저런 아이도 있구나라고 평가만을 했습니다. 아이의 마음의 상처를 미처 인식하지 못하였습니다.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그러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병설유치원이었고 교육청에 전화해서 상담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별 소용이 없었습니다. 교감과도 전화상담을 했습니다. 교감을 찾아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교장을 찾아서 상담했습니다. 첫번째 교장은 저에게 적대감을 표현했습니다. 제가 교육청에 전화한 것때문인것 같습니다. 두번째 교장은 제 말을 들었고 반박하고 저를 설득하고 교육했지만, 행동했습니다. 문제가 있는 유아와 상담했고, 담임 또한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많이 좋아졌습니다. 아이는 더이상 밤에 깨어서 소리치지 않았고 즐겁게 유치원을 다녔습니다. 담임을 믿고 담임과 상담했으면 합니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선생님들은
선량합니다. 몰라서 방법을 몰라서, 잘못된 지식으로 인해 아이들을 잘 지도하지 못할 뿐입니다. 선생님과 의논하고 친구를 놀리고 때리는 아이가 있다면 혹시 그 아이에게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아이와 상담할 것을 선생님께 부탁할 수 있습니다. 아니면, 때리거나 문제 행동을 하는 아이에게 직접 물을 수도 있습니다. 힘든 일이 있는지, 누가 힘들게 하는지를 물으면 아이는 망설이다가 대답할 것입니다. 그 문제를 해결해주면 아이는 더 이상 문제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귀염둥이라는 좋은 말에도 아이들은 상처입을 수 있습니다. 아이가 놀리는 말로 인식한다면 귀염둥이라는 말은 큰 상처가 되는 말입니다. 아이가 상처입었다는 생각이
든다면 아이에게 묻고 설명해 주어야 합니다. 아이가 이해할 수 있도록. 이상하게 생겼다라는 말에 아이들이 큰 상처를 입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아이가 사소한 말에 상처입는다면 이 또한 해결해 주어야 합니다. 불이익은 교사가 의도해서 나타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남을 도우려는 선의를 나쁘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이 위험은 항상 생각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아이를 지키는 것입니다. 아이에게 어떻게 하는게 좋은지 물을 수 있습니다.
제 아이들은 제가 학교 일에 관여하는 것을 꺼립니다. 처음에 몰라서 유치원에 가서 침을 뱉은 아이에게 무작정 따졌습니다. 초등 1학년 교실에 가서 내 아이의 수저를 쓰레기통에 버린 아이들에게 마구 따졌습니다. 뒤에 그러한 행동이 잘못된 것임을 알았습니다. 담임선생님과 조용히 상담을 했어야 했습니다. 그래도 고쳐지지 않으면 교감선생님과 상담을 해야 합니다. 지금도 저는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예습을 잠깐 하지 않았는데, 수학을 하지 못해서 아이가 또 화를 내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 해서 원인이 수학이라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영어는 선생님이 문법적인 주어와 동사에 대해 말해서 무슨 말인지 전혀 알 수가 없어서
잔뜩 화가 나서 또 영어공부를 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아이들에게 문제는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아이들의 입장에서 모든 아이들이 알아듣도록 수업해야 한다는 인식을 하지 않는한, 아이들은 계속 힘든 상황에 빠질 수 밖에 없습니다. 아이가 유치원에서 한글을 잘 못한다면 교사에게 아이가 너무 힘들어한다고 말해야 합니다. 저는 친구에게 맞았다고 아이를 합기도에 보냈지만, 아이는 유치원을 졸업할 때까지 맞았습니다. 달라진 것은 아이가 맞는다는 사실조차 제가 알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아이는 심각한 몸과 마음의 상처를 입어야만 했습니다. 한글을 모르면 집에서 가르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유치원에서 아이가 한글로인해 힘들어한다면 선생님의 수업방식을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초등2학년의 한글 실력은 그리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 유치원에서 한글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는 유치원선생님의 생각은 아이들에게 자신이 한글을 배울 수 없는 바보라는 인식과 좌절감만을 심어 준다는 것을 알려야 합니다. 저는 교육부에 신문고를 통해 계속해서 알렸지만, 지금까지 상황으로보아 전혀 반영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아이에게 무엇이 힘든지 묻고 아이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보십시오. 아이는 우리가 모르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이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아이가 유치원에 가지 않겠다고 하면 결석해도
됩니다. 결석도 의사표현의 한 가지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소한 아이의 한 마디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아이가 아프다고 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것이 아닙니다. 아이가 고민하고 생각한다음 한 말입니다. 아이가 배가 아파서 유치원에 가지 않겠다고 하면 아이가 유치원에서 힘든 일이 있는지 알아보아야 합니다. 아이의 사소한 도움의 말을 놓치지 않았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