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울산의 한 고등학교에서 학부모 30여명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 자리에서 아이들이 가정에서 생활하는 모습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중 한 학부모의 아이만이 교복도 손수 빨아 입고 자신에 관한 모든 일들은 엄마에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한다는 것이다.
다른 학부모들의 부러움의 탄성이 흘러나왔다.
“어찌 그럴 수 있나요?” “언제부터 그랬어요?” 등등 많은 질문이 그 학부모에게 쏟아졌다.
그리고 “딸인가 봐요!”라는 말에 “아니요, 아들이에요!”라는 대답에 더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그 학부모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3~4살의 유아기 시절부터 아이가 하고 싶어 하는 것은 스스로 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많이 주었고, 그리고 스스로 해야 할 것에 대해서도 스스로 해내도록 기회와 도움을 주었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자신이 해야 할 것에 대해 엄마나 아빠에게 의존하기 보다는 스스로 하는 생활습관이 몸에 배어서 교복을 손수 빨아 입는 것은 물론 자기 방 청소, 자기 물건 챙기기 등 거의 모든 것을 스스로 알아서 한다는 것이다. 물론 고등학생이 된 지금은 자신의 공부마저도......
이 때 “똑같은 나이인데 우리 아이는 왜 그렇게 안 될까요? 대학교를 가면 시간적으로 여유가 생기면 그렇게 하겠죠?”라고 하였다.
과연 대학생이 되어 시간적 여유가 생기고, 나이가 들면 저절로 스스로의 일을 하게 될까?
아니라고 본다.
결혼해도 “엄마, 반찬 좀”..신캥거루족 아세요?(머니투데이, 2018.3.16.)라는 기사를 보았다.
결혼을 했거나 부모와 떨어져 사는 경우 생필품이나 반찬까지 지원을 받는 신캥거루족이 늘어나는 추세라는 것을 이야기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부정적 인식보다는 의존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사회적 구조가 문제라는 것이었다. 의지가 없어서가 아니라 저임금, 고용불안 등 경제 구조적 문제에 직면한 청년층의 상당수가 실질적인 경제적 독립이 불가한 캥거루족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높은 주거비용과 고물가도 이들이 부모에게 손을 벌리는 이유라는 것이다. 이는 결혼을 하고도 부모로부터 반찬이나 생활용품을 지원받을 때가 많은 것으로 자연스럽게 연결이 된다는 것이다. 부모들 또한 자녀를 돕는데 주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사에서 한 전문가는 처음 캥거루족이 심리적 문제로 발현된 것이 맞으나 지금은 독립 자체가 어려운 만성적인 경제 문제가 캥거루족 현상의 주 원인이라며 이들을 부모 품을 떠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더 이상 캥거루족을 단순히 의지 부족 등의 문제로 치부해 손가락질 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물론 이 기사의 주장이 틀렸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 편 생각하면 눈에 보이는 사회 구조적인 문제의 탓으로만 돌릴 것이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과연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 자녀들만이 부모에게 어떤 형태로든 의지하는 문제가 있는 것일까? 아니라고 본다.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대부분의 가정에서 벌어지는 모습을 보면 자녀가 결혼을 했든 하지 않았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든 없든, 부모도 힘들어하면서 자녀 뒷바라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녀 또한 부모에게 의지하지 않고는 여러 면에서 생활을 해 나가기 어려워하는 모습을 본다.
위의 울산의 남학생이 이후 살아가는 모습이 더욱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이 기사를 보면서 과연 이 학생도 자신이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면 부모님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이 학생에게 일어나지 않은 상황을 예측한다는 것은 어려우나 이 학생의 경우 자기 스스로가 자신의 어려움을 헤쳐 나가기 위해 부단히 스스로 노력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는 주도성 경험의 차이에서 비롯될 수 있다고 본다. 현재 우리의 가정에서 일어나고 있는 부모와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아이들의 대부분의 문제를 부모들이 마치 자신들의 일 인양 대신 해결해 주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러면서 부모들은 기대할 것이다. 아직은 어려서 그렇지 나이 들고 크면 자신의 문제는 스스로 알아서 하게 될 것이라고......
하지만 부모나 자녀들에게 돌아오는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미 주도성을 잃은 아이들은 자신의 문제에 자신이 직면하기 보다는 부모를 비롯한 다른 도움으로 시선을 돌리고 그 문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해결되지 못하면 부모 탓부터 시작으로 다른 원인들을 찾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대한민국 대부분의 학교에서 목표로 삼는 자기주도학습이 제대로 되지 않는 원인도 여기서부터 출발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주도적으로 학습을 스스로 경험하기보다는 타인의 손에 이끌려 경험하는 학습이 먼저 이루어지고 여기에 내 아이만큼은 더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더해져 지금의 대한민국 사교육 시장을 만들고 있을 것이다. 이 사교육시장이 단순히 성적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아이들의 삶에서 스스로가 주인공이 되지 못하고 늘 타인의 손에 의지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양산해낸다는 사실에 문제의 심각성이 더해진다고 본다.
신캥거루족의 문제가 경제문제에서 비롯된 사회구조적인 문제로 풀어야 한다는 것에도 동의를 하나 그보다 먼저는 유아기 때부터 우리 아이들이 경험하고 몸에 배어야하는 주도성 결여에서 오는 현상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진정한 주도성을 우리 아이들이 경험할 수 있는 가정환경과 부모들의 의식이 우선되었으면 한다.
자기의 일은 스스로하자! 라는 옛 광고를 떠올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