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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인해 늘 해오던 일들에 변화가 많은 요즘이네요.
중학교에서 1학년 자유학년제 주제선택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저는 전에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온라인 수업'을 난생 처음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동영상 만들며 밤을 새던 날이 언제였나 싶을 정도로 이제 좀 익숙해졌고, 아이들과는 댓글로만 소통하던 차에 이번 주에 1학년 등교가 시작되어 마지막 한 번 남은 수업에서 아이들을 만나게 되었어요. 설레기도 하면서 첫 대면하자마자 마지막 수업이 될 이 아이들을 위해 어떤 수업을 준비할까 고심하게 됩니다.
수업 준비와 더불어 외모도 단정하게 단장해야겠다는 생각에 오랜만에 미용실에 들렀습니다. 그 동안 ‘집콕’하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커트였던 머리가 어느새 귀 밑으로 내려오는 길이가 되었습니다. 커트에서 단발로 넘어가는 일명 '거지존'의 지저분한 머리를 다듬으러 갔죠. 미용실 거울은 언제 봐도 기분이 좋아요. 희한하게 예뻐 보이는 거울이 미용실 거울입니다. 화장기 없는 얼굴로 가도 내가 가진 것 이상으로 더 예쁘게 보여주는 미용실 거울 앞에서면 자신감이 생깁니다.
그렇게 '예뻐 보이는 거울' 앞에서 여러 생각을 하다가, 지난 주 제 수업의 주제였던 '강점'이 떠올랐습니다. 사람이 약점에 집중하기보다 강점에 집중할 때 성공확률이 더 높다고 해요. 롯데 자이언츠의 이대호 선수는 키와 덩치가 커서 몸무게도 많이 나갑니다. 그래서 달리기가 다른 선수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하다보니 도루 보다는 홈런을 치는데 전력을 다하죠. 한국의 메시라고 불리는 키가 작은 이승우 축구선수는 오히려 작기 때문에 더 날렵하고 신속하게 뛸 수 있다며, 키가 작아 아쉬운 점이 없다고 합니다.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기 보다는 남과 다른 점을 강점으로 내세워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그런데 아이들에게 이렇게 강점을 보는 시각, 자신의 강점에 주목하는 것의 중요성을 얘기하면 '선생님, 저는 강점이 없어요. 저는 잘 하는 게 없어요.'라고 말하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자녀들도 그렇죠. 어깨가 축 쳐진 아이들에게 '자신감을 가져라'라고 말해봤자, 이미 자신감이나 자존감이 낮아진 아이들이 스스로 강점을 찾아낸 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온라인에서 강점검사를 하면 24개의 강점 항목 중 자신의 강점이 순위대로 1위부터 나열됩니다. 즉, 누구나 강점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왜 자신 안에 숨겨져 있는 보석 같은 강점을 알아채지 못하는 걸까요. 왜 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TV 예능프로그램 <효리네 민박>에서 효리와 소녀시대의 윤아가 이야기 나눕니다. 민박집에 손님으로 찾아 온 자매가 먼저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자매 중 성악을 전공하는 동생이 사실은 자기보다 언니가 노래를 더 잘한다고 말하자, 언니는 자기한테 없는 끼가 동생에게 있다는 걸 느끼고 어려서부터 부러워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말을 받은 동생은, 하지만 자기는 지금도 성악을 특출하게 잘 하지 못하는 것 같아 고민이라고 합니다. 여기에 효리와 윤아 역시 같은 고민을 털어놓습니다. 효리는, 걸그룹의 다른 멤버들은 모두 특출하게 잘하는 분야가 있었지만 자신은 없었다고 하고, 윤아 역시 남들이 예쁘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특출하게 무언가를 잘하는 건 없는 것 같다고 합니다. 우리가 보기에 완벽해 보이는 연예인들도 저런 고민을 하네,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윤아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어느 누군가는 나를 보며 특출하게 잘 한다는 생각을 할 텐데, 나는 저 위에 있는 누군가를 보면서 그 사람처럼 더 특출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다. 그래서 특출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마치 자매가 서로 노래를 잘한다고 상대를 인정하는데도 불구하고, 정작 자기 스스로는 잘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죠. 같은 고민을 했던 윤아의 따뜻한 위로와도 같은 말이었습니다.
다시, 예쁘게 보여주는 미용실의 마법 거울로 돌아와서 저는 이 글을 이렇게 마무리 하고 싶습니다. 심리학자 알베르트 반두라는 '어른은 아이의 거울'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여기에 덧붙여 '어른은 아이의 미용실 거울'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특출하지 않아도 괜찮아 라는 말을 백 번 하는 것 보다 한 번이라도 아주 예쁘게 비춰주는 거울과도 같은 역할을 하는 어른이 아이들에게는 필요합니다. 어른이 어떤 모습을 비춰주느냐에 따라 아이는 그 거울을 보며 자신의 모습을 인식해갑니다. 잘 못했다고, 마음에 안 든다고 지적하고 비난하고 조롱하는 거울은 아이를 주눅 들게 하고 남들보다 못한 사람으로 인식하게 합니다. 하지만 잘 못했을 때 오히려 괜찮다고, 그럴 수 있다고 격려하고 지지하면 아이는 자신이 비록 일을 잘 못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잘못 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그래서 일과 사람을 분리할 수 있는 능력이 생깁니다.
제 딸아이가 그랬거든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처음으로 시작한 아르바이트에서 주인에게 많이 혼났더랬습니다. 3개월 만에 일을 그만 두었을 때 그냥 힘들어서 그만 두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나중에서야 그만 둔 사정을 알게 된 건, 그 다음으로 구한 아르바이트에서 만난 사람들이 전 주인과는 다르다는 얘기를 하면서 입니다. 일이 그 전 보다 더 힘든데도 뭔가 재미있답니다. 힘들지만 그 와중에 힘이 되는 건, 동료들의 격려와 지지, ‘괜찮아’라는 말이라고 합니다. 처음 하는 사회생활이라 잘 모르고 어리숙한 면이 있었을 겁니다. 그래서 전 주인한테 혼나면 딸아이는 '내가 뭐가 잘 못 됐나?'하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되면서 우울해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 아르바이트에서는 같은 일을 해도 모두 괜찮다고 말하고, 자신의 행동이나 태도가 인정을 받으니 '내가 괜찮은 거구나, 내가 이상한 게 아니었구나'를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저는 그 말을 듣고, 딸이 첫 아르바이트에서 얼마나 마음 고생했을 까 생각하니 마음이 짠해지기도 했고 제가 좋은 거울 역할을 못해준 것 같아 미안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아주 신나게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습니다. 그게 다 동료들의 마법의 거울 덕분입니다. 그리고 낙담하고 자책하게 만들었던 자신의 모습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다른 시각으로 보면 강점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감 있는 사회인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거울’이 중요합니다. 특출하게 잘 하는 걸 바라는 세상에서 아이가 계속해서 자신감을 잃는다면, 안 그래도 괜찮아, 너라서 충분해, 지금의 모습 좋아, 그게 너의 강점이야, 그럴 수도 있지 라고 비춰주는 ‘마법의 거울’이 되어 주었으면, 우리 모두 그런 어른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글을 마치겠습니다.
첫댓글 글 잘 읽었습니다. 저에게도 위로가 되는 글이네요. 저도 좋은 어른이 되고 싶어요.
감사합니다. 좋은 글 써 주셔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