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집이 세다.
그래서 어릴 적 부모님께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저 고집을 꺾어야 한다는 것이다.
얼마 전 윌리엄스타이그의 <용감한 아이린>이라는 그림책을 읽었다.
주인공 아이린의 엄마는 양재사 이다.
공작부인이 주문한 드레스가 완성된 날, 아이린의 엄마는 몹시 아팠다.
아이린은 아픈 엄마를 대신하여 공작부인에게 드레스를 전달하기 위해 엄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길을 나섰다.
눈보라 치는 날씨에 앞도 안보이고, 발목까지 삐긋 했을 때, 나는 아이린이 그냥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기를 바랐다.
설상가상으로 드레스도 눈바람에 날려가 잃어버렸다.
그러나 아이린은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공작부인의 저택을 향해 계속 갔다.
아이린의 시련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심지어 아이린은 길을 잃었고 눈 속에 파묻혀 버렸다.
그러나 아이린은 눈 속을 있는 힘껏 기어 나와 다시 드레스를 찾았고, 무사히 공작부인에게 전달하였다.
위험을 무릅쓴 아이린의 행동은 고집을 피운 것일까, 소신대로 행동한 것일까?
나는 몇 년 전 고집스러운 사람들을 몇 명 만났다.
내가 보기에 그들은 시지프스의 신화에 등장하는 시지프스처럼 바위를 끝도 없이 반복해서 밀어 올리는 고집스러운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그들도 눈 속에 파묻힐 때는, 포기를 떠올리기도 하고 목적을 잃어버리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다시 바위를 밀어 올리고 있었다.
나는 그전까지 바위를 밀어 올리는 그들을 무모하다고 생각해 왔었다.
그러나 고집스러운 그들에게서 나는 용감한 아이린을 만났다.
작년 촛불집회 동안에 그들이 들어 올리고 있는 바위가 조금씩 변하고 있음을 보았다.
그들을 보며 나는 다시 고집스럽게 살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자식이 진정한 자식이 되는 길은
부모의 반대를 뚫고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것
지상의 모든 자식의 의무는 부모를 이기는 것
부모를 이겨라
낡은 세대를 이겨라
조금은 가슴 아프게
조금은 배반스럽게
지상의 모든 부모의 권리는 자식에게 지는 것
미래의 주인인 자식이 자신을 딛고 나아가는
등이 되고 어깨가 되고 디딤돌이 되는 것
조금은 쓸쓸하게
조금은 쓰라리게
자신의 힘으로 부모를 이기지 못하는 자는
영원한 철부지 미성년
스스로의 힘으로 낡은 세대를 뚫고
홀로 바람 찬 광야로 나서지 못한 자는
애완견의 삶만이 기다리고 있으니
부모의 사슬도 사슬은 사슬
사랑의 사슬도 노예는 노예
스스로 사슬을 끊지 못하는 자는
언제까지나 조로한 젊은이
언제까지나 미래의 난장이
세상과 싸우는 자기 삶의 전사가 아니라
부모의 유령과 싸우는 어리석은 배냇 광대
부모를 이겨라
낡은 세대와 싸워 이겨라
조금은 가슴 아프게
조금은 배반스럽게
박노해- '부모를 이겨라',『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첫댓글 어제 구본권님의 4차혁명 강의를 들었는데 고집스럽게 한 방향으로 파고 드는 아이도 4차혁명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이 많다고 하네요..글 행간 곳곳에 글쓴이의 신념을 향한 고집스러움이 묻어납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소신일지, 고집일지, 집념일지 누가 판단할 수 있을까요?
그래도 가보는 용기에 한표 던집니다.
<용감한 아이린> 에서 이런 심오한 생각을 끄집어 내시는 내공이 부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