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의 방’ 이라는 그림은 내게 특별하다. ‘어느 날 느닷없이 찾아온 감정의 북받침’
10년이 훨씬 지난 일임에도, 난 여전히 그 날 미술관 작은 방에서 겪은 내 안의 격한 폭풍과 고요의 시간을 기억한다. 아쉽게도 그 감정을 표현할 단어는 찾지 못했다. 다만 지금은 사건과도 같은 그 경험이 내게 필요했고, 더 늦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누군가 내게 ‘미술’에 관해 묻는다면 학창시절 시험문제를 먼저 떠올리거나 익숙한 화가의 이름 몇 명 아는 정도라 답하겠다. 그래서 늘 유명한 미술관에 가더라도 내가 보고 느낀 것들의 가치를 제대로 모르고 지나치는 것 같아 찜찜한 기분이 들곤 했다. 그냥 답답하고 불편했다.
그 날도 그랬다. 무심히 미술책에서 많이 본 그림들 위주로 보고 있었는데, 한 그림 앞에서 발길이 멈춰 졌다. 그리곤 또르르 눈물 한방울이 맺히는가 싶더니, 바로 앞에 있는 그림이 잘 안 보일정도로 계속 흐느끼게 되었다. 여러 가지 감정이 뒤섞인 채, 왜 그리 서러운 눈물이 흐르던지. 당황스럽기도 하거니와 다른 이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으려고 손으로 입을 막을수록 어깨가 더 들썩였다. 결국 한 켠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조금 멀찍이서 그림을 보며 조용히 감정을 추스렸다.
그 짧은 순간 폭풍처럼 스쳐간 생각들 중 또렷이 기억나는 것이 있었다. ‘미술 시간, 그리고 검은색뿔테 안경의 미술선생님’ 참 슬프고 아프게 떠올랐다.
‘넌 미술하면 안 되겠다 ’
무엇 때문에, 왜인지는 기억에서 흐릿하지만, 그 한마디와 뿔테 안경 속 불편한 눈빛이 또렷이 기억이 난다. 학교를 마칠 때까지 난 정말 미술시간이 싫었고, 이후로도 미술에 소질이 없는 사람으로 알고 별 관심두지 않고 살아온 것 같다. 그런 내가 한국도 아닌 이국 땅에서 갑작스레 그 기억을 떠올리며 토해내듯 서러운 감정을 쏟아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그 갑작스런 감정의 북받침을 나름대로 해석해보고자 한참을 씨름해봤다.
고흐의 불행한 삶이 연상되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고, 같은 그림인데도 미술책에서 본 그림과는 전혀 다른 그림처럼 색깔이며 붓의 그림 결들이 방금 화가가 작품을 완성한 듯 느껴지는 생생함에 감동이 되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이 벅찬 느낌들을 선생님의 한마디로 외면한 채 살아온 지난 날이 억울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고, 선생님께 ‘도대체 왜 그런 말씀을 학생에게 하느냐’고 항변하지 못한 자책이 억눌려 있다가 터져 나온 건지도 모르겠다. 이제 분명한 건 그 날 이후로 미술관이 보물창고 같이 느껴진다는 사실이다. 작품 하나하나 찬찬히 살피게 되고, 화가에 대해 알아보기도 하고, 서투르지만 스케치도 시도해볼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사전 지식이 없어도 그림 자체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 가장 기쁘다. 그림 속에 담긴 화가의 생각들을 상상해보는 일, 내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들을 생각하다보면 마음 속 갤러리에 근사한 작품들이 하나둘씩 쌓여가는 느낌이 든다.
‘위로와 치유’라는 말은 좀 거창하지만 내게 그 날의 느닷없는 기억은 상처로 닫힌 문이 다시 열린 것이라 이야기할 수 있다. 나의 경우는 미술과목이었지만 학교에서 나처럼 어이없는 계기로 학업에 흥미를 잃는 사례를 자주 접해 안타깝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강의 중에 ‘수학 문제 함부로 풀게 하지 말라’ 는 원칙과 조언이 있다. 개념을 충분히 이해하지 않은 상태에서 문제를 풀다보면 아이에게 마음의 상처가 생긴다는 것이었다. 얼핏 들으면 수학문제와 상처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실제 벌어지는 일이다. 수포자의 시작이 이 문제 상처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보는 것이다. 영어도 마찬가지다. 삶과 동떨어진 어려운 단어를 암기하고 시험보고, 문법문제를 푸는 일을 반복하며 외국어를 배우는 즐거움을 제대로 알 수 있을까. 외국어에 대한 좋은 기억 한 가지만 있으면 비록 영포자라 해도 다시 외국어를 만나는데 어려움이 없다. 아이들에게 평가 이전에 충분히 그 배움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하고 기다려주는 일이 그래서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목소리 높이고 싶다. 나는 우리나라에서는 유난히 부모의 학업 트라우마 치유가 아이 양육에 무척 중요한 영향을 줄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살아가다보면 내가 어디가 아픈지도 몰랐던 상처가 불쑥 나오기도 하고, 원하지 않아도 상처를 주고받게 되는 일을 겪게 된다. 이 상처를 마주하는 일은 오롯이 개인의 숙제로 남지만 곁에서 공감하고, 지지하고 격려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조금이라도 회복의 시기를 앞당길 수 있을 거라 믿는다. ‘고흐의 방’은 고흐가 친구 고갱을 기다리며 꾸며놓은 방을 그린 작품이다. 이 방에서 정말 고흐가 원했던 것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세상에서 받은 상처를 이해하고 격려해줄 누군가였을텐데..’ 라는 생각을 해보며 오늘 하루 만나는 그 누군가에게 격려의 한마디 정성껏 건네야겠다.
첫댓글 글을 읽으며.. 저 또한 이런 경험이 있기에 몰입했네요. 저에게도 '같은 곳을 바라보고, 세상에서 받은 상처를 이해하고 격려해줄 누군가'가 팔요해요. 그리고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프네요.
아하...학업도 치유에서 시작된다라는 글이 와 닿습니다. 좋은 글이네요^^
''그 날의 느닷없는 기억은 상처로 닫힌 문이 다시 열린것'' 공감하는 부분입니다.
"개인의 숙제로 남지만 곁에서 공감하고, 지지하고 격려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조금이라도 회복의 시기를 앞당길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저도 확고히 믿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