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국민학교에 입학한 1970년대, 그 때는 잘사는 사람보다 못사는 사람이 더 많았다. 그래서 책이 귀했다. 우리 집도 마찬가지였다. 교과서 외에 책을 사줄 형편이 되지 못했다. 매달 내는 육성회비조차 제때 내지 못했으니 당연했다. 그래서였을까, 친척에게 국민학교 입학선물로 받은 옛날이야기 책 한 권이 내겐 정말 소중했다. 읽고 또 읽었다.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아마 나에겐 책에 대한 결핍, 허기가 오래도록 있었나 보다. 나이 마흔을 앞두고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입학하기 전에 시작한 학습지를 오히려 입학을 앞두고 그만뒀다. 사교육에 들어가는 비용을 차라리 책에 들이는 게 남는 것 같았다. 나의 막연한 이 생각은 내게 있는 책의 허기에서 기인한 것일 수도 있다. 또한 사회적인 분위기도 무시하지 못했다.
1980년대에 한국은 해적판 왕국이라는 오명으로 불렸다. 1987년에야 세계 저작권 협약에 가입했다. 그림책 분야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던 중 80년대 들어서면서 웅진출판사에서 본격적으로 그림책 출판을 한다. 1993년을 ‘책의 해’로 지정하고 국민독서 실태조사를 대대적으로 펼친다. 국민 1인당 1년에 책을 몇 권 읽으며, 몇 시간을 읽는 지 등의 내용이다. 그러다 IMF로 출판 시장은 불황을 맞게 된다.
2000년대 들어서면 전자도서관이 등장하고 도서관 사업이 활발해졌다. 인터넷 서점과 어린이 전집도서가 많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2002년에 MBC에서 ‘기적의 도서관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전국에 기적에 도서관을 책 읽는 사회문화재단과 함께 도서관을 건립한다. 그와 함께 2005년 초등까지 하루 세 권씩 만권 읽기를 강조하는 푸름이닷컴이라는 사이트가 생겨나고, 2007년 초등까지 3천권 읽기를 강조하는 기탄출판도 생겨났다. 또 사회적으론 조선일보가 ‘거실을 서재로’라는 캠페인을 1년간 실시했다.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한 2008년은 독서열기의 최정점에 있었다. 다독을 강조하고 도서관을 건립하고 독서의 장점에 열광했다. 책은 좋은 것이며 책을 읽어야 한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나의 책에 대한 허기는 아들의 책 사재기에 몰두하게 만들었다. 그 당시엔 푸름이닷컴을 맹신하고 있었다. 다행인 것은 그곳에서 제시하는 것에 대해 의구심이 들면서 책값도 무시하지 못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사들이는 책이 읽는 책보다 많아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도서관 교육을 주장하는 도서관옆신호등을 알게 되었다. 책을 소유하는 것이 아닌 책의 내용을 소유하는, 내가 낸 세금으로 만든 도서관을 이용할 권리가 나에게 있다는 것을, 그동안 나의 책에 대한 허기를 잘못 채우고 있었음을 알게 했다. 하지만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아 책 구입을 단번에 끊지는 못했다. 직장맘이고 도서관을 이용하기 쉽지 않다는 이유를 대며 스스로에게 책 구입에 대한 정당성을 주었다.
과하면 부족함보다 못하다는 것을 알면서 책에 대한 소유욕은 쉽게 떨쳐지지가 않았다. 그 책들은 아들의 잠자리 독서로 활용되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아들은 그 시간을 책 읽는 시간이 아니라 하루 종일 떨어져있던 엄마와 교감하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좋아했던 것 같다. 나 역시 졸린 눈을 부비고 졸면서 책을 읽어줬었다. 지인에게 선물 받은 ‘~에서 살아남기 시리즈’를 같이 보며 웃다가 눈물까지 흘렸다. 아들은 지금도 가장 재미있는 책을 고르라고 하면 그 책을 집어 든다. 초등 고학년 땐, 잠자리 독서로 읽어줬던 [전태일]을 들으며 소리죽여 눈물 흘리고 아빠가 나빴다며 흥분하기도 했었다.
아들에게 책의 허기를 느끼게 해줬어야 했을까. 그럼 나처럼 책을 손에 쥐고 놓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을 한때 했었다. 물론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아들은 나와 다르다. 아들은 책보다 밖에서 친구들과 직접 부딪히며 즐거워했다. 책은 직접 경험할 수 없기에 간접 경험을 하는 것도 있다. 하지만 직접 경험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걸 안다. 자동차를 좋아하니 자동차 잡지를 사주는 엄마의 한계를 아들은 자동차 동영상을 보며 앞서간다. 그래서 여행 책을 보지 않지만 친구들과 직접 여행을 하는 아들의 방식을 인정한다.
난 여전히 아들의 관심거리가 될 만한 책을 은근실적 권한다. 좀 자극적이라 혹 할 수 있는 것들이 있으면 더 좋다. 가장 최근에 권한 책은 [슈퍼괴짜경제학]이었다.
목차는 <1장 _길거리 매춘부와 백화점 산타클로스가 노리는 것 : 비용과 가격에 관한 진실들
|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 매춘이라는 비즈니스가 영원한 이유
| 왜 매춘부들은 예전보다 가난해졌을까?
| 오럴 섹스의 가격이 싸진 이유는?
| 포주와 부동산업자가 하는 일
| 길거리 매춘부와 백화점 산타클로스의 공통점
| 그 많던 교사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 고액연봉 매춘부 앨리 ...> 이다. 후후 아들이 걸려들었다. 결국 보고야 말았다.
마흔에 시작한 아들을 위한 책 사재기는 몇 년이 지나 멈췄다. 하지만 나의 책에 대한 허기는 내 책 사기로 넘어왔다.
첫댓글 재미있게 읽었어요. 저는 얼마전 TV에서 정재승교수가 이야기한 독서에 대한 말이 떠오르네요. '독서가 어떻게 습관이 되나요? 독서는 습관이 아니라 쾌락이 되어야 해요.' 부모들이 가끔은 아이에게 독서를 습관화하기 위해 유아기때부터 책읽기를 강요를 하는데 그런 방식은 초등고학년부터 서서히 무너져 가장 책을 많이 읽고 생각해야 할 시기인 청소년기에 책을 멀리하게 되고 어른이 되어서도 책을 좋아하지 않게 되는 우를 범하더라구요. 안타까워요. 독서에 대한 생각도 '공부란 무엇인가?'만큼 각 가정에서 생각해봐야 할것 같아요. 독서는 어떤 학습을 잘하기 위한 수단으로 습관을 들려야 하는것이 아닌데 말이예요.
독서에 관해서도 아이를 키우며 다른 아이들을 만나며 깨지고 부서지며 제대로 알게 되었어요. 책이 좋은 것은 알지만 책만 좋은 것은 아니기에, 더욱이 매체세대인 요즘 아이들에게 무조건 책만 들이미는 것은 효과가 없죠. 독서의 맛(쾌락)을 알게 되면 언제든 책 읽기는 가능하리라고 봐요. ㅎㅎ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공감요... 자랄수록 점점.... 게임을.. 이어폰을 꼽고 힙합을 듣는 아들에게 책은 지루할 뿐인 .. 그런 대상이라는게 참 안타까워요... 그럴수록 너무 들이밀지 말아야하는데... 들이밀고 싶은 내 맘... 으쩌면 좋아
아이가 독서를 해도 한 부분만 계속 파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일종의 편식인데..아이가 일본 소설을 주로 읽어서 가벼운 수필을 권해주곤 합니다. 어제 읽어보라고 했더니..생각보다 좋다고 하네요. 같은 책을 읽으면 아이와 이야기 할 소재가 되서, 더 친해지는 느낌입니다.
공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