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며칠 전 밤 중3인 아이가 시험 공부하려고 역사책을 펼쳐놓고는 연필을 들었다가 놓고 ‘정말 흥미가 안 생긴다..... 학교가기 싫다’ 며 연필을 놓았다. 이미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성적이 너무 안 좋아서 고등학교 입시에 떨어질지도 모른다며 남은 두 번의 시험이 중요하고 일단 중간고사 성적보고 다시 이야기하자는 말을 들은 상태라서 시험공부를 시작도 못하는 아이를 보며 정말 심각하게 아이의 진로에 대해 다시 한 번 이야기를 나눠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아이와 우리 부부는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어쩌면 시험 스트레스 때문에 해 본 이야기일 수 있지만 이대로 계속 성적이 안 좋아서 일반고 입시에 떨어진다면 그 다음에 어떻게 할 것인지도 걱정이지만 어찌어찌해서 일반고를 간다고 해도 중학교 보다 더 심각한 입시위주의 분위기에서 아이가 견뎌야할 시간들도 걱정이 되었다.
아이는 지난 3년 동안 학교에서 배운 것도 없고, 흥미 있는 과목도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학교에서 할 일이 없다면서 한 마디로 학교가 싫다는 것이다. 시험 스트레스나 고입에 실패할까 나름 걱정이 돼서 그런가 해서 만약 시험 준비를 안 해도 된다면 그래도 고등학교에 안 가고싶냐고 물었더니 고등학교를 왜 꼭 가야하냐고 안가고 그냥 자기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했다. 하지만 얼마 전까지도 별로 하고 싶은 것이 없다고 했었기 때문에 그 말은 그리 마음에 와 닿지 않았지만 이 날은 이상할 정도로 그냥 아이의 이야기를 판단하지 않고 듣고 싶었고 아이가 그 순간 마음에 있는 이야기를 마음껏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이러 저런 이야기 끝에 일단 우리는 졸업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힘들더라도 좀 더 견뎌서 중학교는 졸업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학교를 그만 두는 문제는 엄마 아빠에게도 어려운 선택이기 때문에 결정하는데 시간이 좀 필요하다고 이야기하면서 너도 다시 한 번 잘 생각해보고 다시 이야기하자며 아이를 보냈다.
큰아이를 키우면서 소위 무서운 중2아이를 경험했지만 작은 아이는 또 달랐다. 밖으로 표출하는 스타일의 큰아이는 같이 싸우고 화해하는 과정 속에서 오히려 서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는데 말이 적고 속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 시크한(?) 작은 아들은 나에게 참으로 어려운 대화 상대였다. 그래서 소위 중2병이 극에 달했던 때 아이는 나와 어떤 문제로 말이 길어지거나 내가 화를 내면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 이러다 사이만 더 악화되겠다 싶어서 공부와 관계 중에 관계를 선택하고 아이에게는 자신과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는 것만 지켜달라는 말을 하면서 아이와 적당한 거리를 두고 지켜보려고 정말 노력했다. 하지만 때때로 정말 참다가 내가 폭발 할 때도 있었고 그러면 지금까지 참았던 것이 아무 소용도 없게 된 것 같아 또 속상했다. 그러다 너무 답답하면 큰아이를 통해서 살짝 작은 아이의 상황를 듣고 나름 작은 아이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정말 부모가 필요할 때 언제든 옆에 있다는 사실만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심정으로 아이를 지켜보고만 있는 일은 너무 힘들었고 끝없이 나 자신에게 내가 지금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지 물었고 그때마다 이것이 옳은 방법인지는 모르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해줄 수밖에 없었다.
다행이 아이는 3학년이 되면서 서서히 안정되는 듯했고 2학기 시작하고는 스스로 여름 방학을 푹~ 쉬고 나니 상태가 좋아졌다며 등교시간도 스스로 챙기면서 나름 학교에 잘 다니는 듯해 이제 좀 마음을 놓아도 되겠구나했더니 이런 일이 생긴 것이다.
그날 밤 이야기를 마치고 자기 방 침대에 누워 평소 잘 울지 않던 아이가 울고 있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너무 아파 그냥 모른 척 할 수가 없었다. 아이 성격상 어떻게 반응할지 걱정도 됐지만 무작정 들어가서 누워있는 아이 옆에 앉아 가슴이 시키는 대로 말했다. 정말 힘들었겠다고 ...그런 시간들을 견디느라 고생했는데 엄마는 네가 그렇게 힘들 줄 몰랐다고 정말 미안하다고 그리고 앞으로는 말해주면 좋겠다고 했다. 엄마는 도움을 주고 싶은데 너를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잘 모르겠으니 앞으로 말해주면 좋겠다고 ....그리고 엄마가 얼마나 너를 사랑하는지 그리고 네가 어떤 사람이어도 엄마는 너를 사랑하고 도움이 필요할 때는 언제든지 우리가 도와줄 거라고 말해주었다. 그 순간에는 그냥 네가 엄마한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아이가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밖에 없어서 정말 간절하게 그런 말들을 해주었다. 그러면서 엄마가 한 번 안아 봐도 되겠냐고 물었다. 아이는 가만히 있었고 나는 용기내서 먼저 아이를 힘껏 안아주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사춘기 들어가고는 마지못해 엄마에게 슬쩍 안기던 정도였던 아들이 두 팔로 나를 꼭 끌어안아 주었다. 그 순간 나는 ‘이 아이를 내가 정말 사랑하는구나! ’ 머리로가 아니라 온몸으로 온가슴으로 벅차게 느꼈다.
그리고 문득 예전 두 아들을 키우면서 무척 힘들었던 때가 떠올랐다. 순하던 큰 아이가 초등 고학년이 되면서 서서히 반항을 시작되고 두 살 터울 아들들은 매일같이 싸우고 정말 몸도 마음도 지쳐 힘든 시간이었다. 내가 아이들을 키우면서 상상했던 모습은 이런게 아니었다. 순간 지금까지 내가 아이를 잘못 키웠나 하는 죄책감에 시달리면서 아이들이 미웠고 나도 싫었다. 그때는 아무리 노력해도 아이들을 사랑스런 눈빛으로 볼 수 없었고 미운 마음만 들어 너무 마음이 힘들었다. 그때는 정말 제발 아이들을 사랑할 수 있게 해달라고 빌었고 이런 마음을 누구에게도 털어 놓을 생각도 하지 못했다.
아이를 다독이고 방으로 돌아와 남편이 어릴 때부터 공부 습관을 억지로라도 좀 잡아뒀어야 했던 게 아닌가 하는 말에 또 슬그머니 죄책감이 올라온다. 그렇지만 순간 멈춰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한반복 되는 아이에 대한 죄책감과 자괴감으로 또 다시 마음이 병들고 싶지 않았다. 그 속에서는 아이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 생길 수 없다는 것을 그 힘든 시간을 지나오면서 힘들게 깨우쳤기 때문이다.
지나간 시간 속에서 아이들에게 잘못했던 순간들은 되돌릴 수 없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진심어린 사과는 할 수 있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아이들에게 미안했던 예전 기억이 나면 아이들과 그때 일들을 이야기하고 아이들에게 그때 마음이 어땠는지, 엄마가 어떻게 보였는지 물어본다. 이야기 나누다보면 어렸을 때 일인데 어찌나 기억을 잘하는지 놀랍고 듣고 있으면 부끄러워진다. 그리고나서 아이들에게 그때 너희들 때문이 아니라 엄마 힘들어서 그랬다고 미안했다고 말한다. 그것으로 아이들의 마음의 상처가 다 없어질지는 모르겠지만 그 상처가 조금이나마 옅어지기 바란다. 그리고 죄책감보다는 이런 방법이 나의 잘못된 행동을 반복하지 않는데 더 도움이 되는 것 같기도 하다.
다음날 아침 걱정과 달리 일찍 일어나서 학교 갈 준비를 하면서 작은 아이가 슬쩍 한 마디 한다. “ 학교 갔다 와서 시험공부 좀 해야겠어” 이 한마디에 어제의 폭풍이 지나가고 파란 하늘을 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이들을 키우면서 더 큰 폭풍이 얼마나 더 많이 남았을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이 날 밤 아들을 안으면서 느꼈던 그 강렬한 감정을 마음에 새긴다면 더 잘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이 커서 미련 없이 우리 손을 놓고 멀리 자유롭게 날아가려 할 때 축복하는 마음으로 놓아줄 수 있기를, 쉬고 싶을 때 언제나 와서 쉬었다 갈 수 있도록 우리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아이들이 돌아 올 자리를 지키고 있을 수 있기를 간절하게 바란다.
첫댓글 저도 막내아들을 키우며 느꼈던 감정이 이글을 읽으며 느껴집니다..부모는 아이가 힘들때 도울수 있고 들을수 있는 사람이라는 애기에 공감해요^^ 엄마도 처음이라서 자식을 어떻게 대해야 되는지 모른다는 진솔한 고백에 고개가 끄떡여 집니다. 좋은글 잘 읽고 갑니다~
ㅜㅜ 울컥..... 글을 읽으며.... 눈물이.....
저도 울컥.......ㅠㅠ 한문장 한문장.... 사랑과 희망과 고통이 교차하는 심정이 느껴져 눈물이 납니다.
감옥같은 학교.. 아무런 의미가 없는 수업시간... 아이들은 자신을 죽이며 순응하거나, 튕겨져 나가거나, 아니면 어쩔줄 몰라 혼란을 반복하거나... 이렇게 아이들은 학교라는 공간 안에서 고통스럽게 살아가고 있네요.. 우리가 이 운동을 하는 이유가 다 이 때문 아닌가요!! 이 고통을 걷어내기 위해서...
아들만 둘 키우는 저도 쌤의 이야기가 남의 일 같지가 않네요... 힘들지만 응원하고 믿어주는 엄마가 있어서 너무너무너무^^ 든든했을 것 같아요...
쌤~~~~엄청 멋진 엄마이신 듯♡♡
쌤 이야기에 저도 힘내볼랍니다. ^^
글을 읽으며 진짜 엄마의 삶을 살아가고 계신다고 생각했어요. 마음이 아프기도하고 뭉클하기도 하고 그랬네요.
감사히 잘읽고 갑니다...
아구... 넘 마음이 아파서 눈물이... ㅠㅠ 그렇게 울 수밖에 없는 아이와 그걸 지켜보는 엄마의 마음이 절절하게 느껴져서... 네가 어떤 사람이어도 엄마는 너를 사랑하고, 너는 나에게 소중한 존재라고, 네가 도움이 필요할 땐 언제든 도와줄 거라는 말, 아이가 분명 마음으로 알아들었을 거에요. 앞으로 어떤 일이 있어도 그날 밤 따뜻한 엄마의 말과 품이 내내 힘이 될 거에요.
정말 우리 아이들을 외롭게 만들지 않아야겠어요. 다짐하고 또 다짐합니다.
부모라는 자리가...... 참으로 참으로 쉽지않은 자리라는것을 새삼 다시 깨닫습니다.. 내려놓고 바라보고 기다려주고 버텨준다는것이... 참 쉽지않아요
아이참.....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말끔하게 마음의 걱정이 씻어지도록, 건강하고 든든하게 자라나기를 .... 함께 마음모아 기도합니다.
저도 울컥 했습니다..엄마의 마음은 모두 똑같나 봅니다..멋진 엄마이시기에 멋진 아들들로 자랄 거라 믿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방에서 함께 안고 있었던 장면에서 눈물이 쭈르륵 흐르네여..
학교에서 아이들이 자신의 존재의 의미를 찾고 알아가는 시간들이 만들어져야할텐데요..
저도 곧 중학생이 될 자녀들 생각에 벌써부터 답답해집니다.
저희 아이는 고1인데 폭풍이 지나가고 댁과 너무 똑같아 읽는 내내 눈물콧물 정신이 없었네요.
바로 어제 학교를 자퇴하고 싶다 했어요. 아이가 잠든후 저는 새벽 4시까지 잠을 못이루었습니다. 자퇴가 정말 아이를 위하는 것인지 힘든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너무 쉽게 포기하는 버릇을 갖게되는 건 아닌건지, 홈스쿨링이란 것이 얼마나 어려운 건지.... 아침에 학교가는 아이의 얼굴은 더욱 어두워서 가슴이 미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