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어느 날 오후에 업무 관련 교육이 있었는데 교육 장소가 2호선 선릉역 근처였다.
교육이 끝난 후 집에 가기에는 조금 여유가 있어서 내심 망설이고 있으려니
함께 온 동료 중에 “시간이 된다면 근처에 있는 선릉, 정릉에 들렸다” 가자는 의견에 미리 약속이나 한 것처럼 대답대신 무언의 동의를 하고 느릿느릿 걷기 시작했다.
아마도 멀리가지 않아도 늦가을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들을 한 것 같다.
입구를 찾아 들어서니 나무들 마다 뿜어내는 상큼한 냄새가
잠시 늘어져 있던 정신을 가다듬게 한다.
도심 속 근처라기보다는 시골의 자그마한 동산에 온 것 같다.
선릉을 가기위해 구릉진 비탈길을 오르노니 어느새 신발 등이 희뿌연 흙먼지로 덮인다.
문득 초등 시절 학교 행사로 나누어 준 코스모스와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모종을 들고
신작로를 따라 심으면서 걸어가는데 갑자기 비가 내려서 신발을 벗어 들고 마냥 뛰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때 발바닥에 말랑 말랑하게 닿았던 젖은 흙이 생각나며 갑자기 양말을 벗고 디뎌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한다.
속도를 내서 오르지는 않아도 경사가 져서 그런지 조금 힘이 든다.
잠깐 멈추어 서서 하늘을 본다.
아직은 겨울보다는 늦가을 이라 하늘이 꽤나 높은 곳에 있는 듯하다.
어린 시절 마루에 누워 구름을 보며,
구름이 흘러 가는대로 시선을 집중하며 한참을 따라가다 너무 집중해서인지 어느새 잠들어 버렸던 추억어린 시골집도 떠오른다.
시간은 훌쩍 흘러버리고 공간도 전혀 다른 곳이지만
흙과 하늘은 오늘 따라 유난히 같아 보인다.
드디어 성종의 묘에 도착했다.
가까이에서 바라보니 하나의 언덕처럼 크게 보인다.
어린나이(13세)에 왕위에 올라 젊은 나이(38세)에 승하 했다는 기록을 보면서
재위 25년간 이어진 권위에 주눅이 들기도 하고,
왕 이외에 묻어진 다른 것들에 대해서도 호기심이 생긴다.
하지만 각자 시간의 총 착 역에서 누구도 거역 할 수 없는 죽음이라는 단어를 새겨 보면서
왕후의 릉과 중종 대왕의 묘가 있는 곳 까지 걸어오노라니
새삼 인생의 덧없음에 어깨와 다리에 들어간 힘이 살짝 풀리는 것 같다.
무릇 사는 동안 큰 욕심 없이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다짐도 해본다.
해가 막 지고 어두워질 무렵이 되어 재실 옆에 있는 500년이나 된 은행나무 앞에 섰다.
하나하나 노랗게 물든 잎과 머리를 젖혀야만 볼 수 있는 가지의 끝 부분은
저절로 탄성을 지르기에 충분했다.
곧고 튼실하게 뻗어 올라간 나무 기둥과 함께 가지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자세히 보니 굵기와 길이도 다양하고, 휘어진 모습도 다양하다.
어떤 가지는 지금 보기에도 잘라내는 편이 나을 듯 해 보인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잠시 장대한 은행나무 전체를 바라보노라니
필요 없는 가지들은 없는 듯하다.
한참을 나무 앞에 서있노라니
부모의 자리에서 아이에게 행했던 모습들이 일깨워 진다.
곁가지보다는 높게 치솟은 중심 기둥이 되기를 기대하며
특이하게 뻗어나간 가지가 되지 않도록 미리 잘라내고
가지가 혹은 잎이 아닌 다른 무엇이 되기를 바라면서
아이의 삶에 개입하려고 했던 행동들이 떠오른다.
그리고 기대해본다.
다양한 모습의 가지들이 모여서 크고 멋진 은행나무가 되듯이
나의 아이도 아이 고유의 모습대로 멋진 공동체의 구성원이 되기를
첫댓글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같이 같다온 것 같은 기분입니다. 어스름한 저녁, 아이들 앞에서 겸손해져야겠단 생각을 합니다. 고맙습니다.
'....은행나무 전체를 바라보노라니 필요 없는 가지들은 없는 듯하다....' 이 글을 읽으니.... 저도 어떤 시각으로 아이를 바라보았나 싶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