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주 월요일 4월 16은 세월호 참사 4주기가 되는 날입니다.
세월호를 언급하는 것에 대해 약간의 피로감을 느끼시는 분들도 있을 만큼의
시간이 흘렀을까요?
그런 것도 같습니다.
세월호 참사 후 샤워기의 물이 내 얼굴을 흘러내릴 때마다 세월호가 떠올랐고
그 덕분에 샤워시간이 짧아졌습니다.
그러나 얼마 전 샤워를 하다가 떠오른 세월호가 모처럼 만의 일임을 느꼈고
그렇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세월호를 잊어가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저는 지금 안산의 세월호 유가족들의 치유공간인 ‘이웃’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봉사활동은 다음과 같은 연유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세월호 참사 1주기 안산의 추모식에서의 일입니다.
추모를 하기 위해 줄을 길게 늘어서 기다리다가
제 차례가 되어 국화꽃을 바치고 묵념을 하고 있었지요.
누군가 영정사진 앞으로 미친 듯이 달려와 딸의 사진을 쓰다듬으며
“고작 17년을 살다 가려고~~” 라며 소리 치면서 숨이 멎을 듯 울부짖었습니다.
얼마 후 그의 가족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와서 말렸고 현장에 있던 안내원도 그를 진정시켰습니다.
그때 저는 묵념을 멈추고 그에게 다가갔습니다.
다소 돌발적인 행동일 수도 있어 짧은 순간 갈등을 했으나
지금 이 순간이 지나면 그를 위로해 줄 기회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울다가 숨이 막혀 죽을 지도 모를 것 같이 무섭게 울음을 토해 내고 있는 그에게
기댈 곳이 잠시나마 되어 주고 싶었습니다.
아니 저도 목 놓아 울고 싶었습니다.
그 엄마도 누군지도 모르는 저를 붙잡고 울었습니다.
그렇게 집에 돌아와서도 진정되지 않은 감정을 붙잡고
뭐든 해야겠다고 한 결심으로 찾게 된 곳이 “이웃”이었습니다.
“이웃”으로 향할 때마다 한결 같이 유가족의 슬픔과 고통에
완전히 공감하지는 않았습니다.
때로는 내 볼 일 때문에 고작 한 달에 한번뿐인 봉사활동을 하지 못했던 적도 있었고
이것이 그들을 위한 진정한 도움과 위로가 될까하는 의심을 한 적도 있었고,
이제 웬만하면 저들도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물음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혹자는 유가족들끼리 모여 있으면 그 슬픔을 더 상기시키게 되고
일상에서 살아갈 기회를 되려 빼앗은 것이 아닐까 하며 비판하기도 하나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웃’에 가는 일을 멈추지 않았던 이유는
그들이 겪는 슬픔의 특수성 때문이었습니다.
다른 건 다 몰라도 자식을 잃은 고통은 평생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으니까요.
잊고 살 수만 있다면 숨통을 조여오는 슬픔의 고통을 연장하진 않겠지요.
4주기가 될 만큼 시간이 지난 지금 그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불행히도 그들은 육체적 정신적 병에 걸려 힘들게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습니다.
언니를 희생자로 둔 동생은 우울증에 걸려 학교를 자퇴하고 그 병세가 점점 더 악화되고 있다고 하네요.
또한 그 아버지는 기왕의 병이 심해지고 새로운 병증이 또 생겨 검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하고요.
다른 유가족들의 사정도 비슷한가 봅니다.
매끼니 알뜰하게 챙겨 먹을 여력이 없어 어쩌다 큰 맘 먹고 밥을 해서 냉동고에 쟁여 두고
국이나 카레 같은 음식을 한꺼번에 만들어 두고두고 드시는가 봅니다.
한 사람의 죽음은 남겨진 가족들에겐 고통의 시작을 뜻합니다.
만 4년이 다 되었습니다.
그러나 세월호에 관한 의문이 밝혀지지 않은 채 시간만 흘렀습니다.
얼마 전 세월호가 침몰되던 날 대통령이 침실에 있었다는 검찰 조사 결과가 나왔지요.
하지만 그 결과가 별로 놀랍지 않을 만큼 세월호 참사에 대하여 의문스러운 점이 아주 많습니다.
그리고 4년 동안 어느 것 하나도 시원스럽게 밝혀진 게 없지요.
그런데도 이제 그만 노란리본을 떼내는 게 어떨지 묻기도 하나 봅니다. 그저 시간만 흘렀을 뿐인데...
‘이웃’에는 봉사활동을 진두지휘하는 실장님이 계십니다.
아담한 체구의 지칠 줄 모르는 실장님은 매번 만날 때마다
존경하는 마음을 넘어서 경외심마저 생기게 하는 분입니다.
저처럼 불성실한 봉사자도 살뜰히 챙기며 기쁜 마음으로 봉사하도록 이끌어 주시고
맛난 밥도 차려 주시고 유가족들에겐 속속들이 저간의 사정을 다 살피시는 친가족과 같으신 분이십니다.
이제 ‘이웃’에는 후원물품과 봉사자들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며
언제까지 ‘이웃’을 지켜나갈 수 있을지 간간히 걱정하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그런 소리를 듣게 되는 걸 보니 사람들이 잊을 만큼의 시간이 흐른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잊고 있는 동안 가족에게는 그 고통의 무게가 점점 더해져 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겐 아직도 저의 두 발이 필요합니다.
두 발이 있으되 홀로 지탱하지 못하고 쓰러지는 ‘이웃’의 이웃에게
홀로 지탱할 수 있는 힘이 있는 저의 발이 필요합니다.
이번 달 봉사하러 가는 날에는 언니를 잃고 우울증에 힘들어 하고 있는,
우리의 딸일 수도 있는 그 딸을 위해 맛있는 초코 케잌을 하나 사 가지고 가려고 합니다.
견디기 힘든 4월을 겪고 있는 우리의 ‘이웃’을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첫댓글 아, '세월호'라는 단어는 제게는 '먹먹한 마음'과 동의어가 된 듯합니다. 올해 4주기...
잊지않도록, 한번 더 기억할수 있도록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이웃'에는 정말 참 이웃분들이 계시군요. 이렇게 따스함을 나누시는 분들이 계셔서 아직도 이 땅에 희망이 있는것이겠죠?
세월호....... 아직도 그 세글자만 나오면 가슴이 아프고 눈물이 납니다. 자식을 그렇게 억울하게 보냈는데도 정작 가해자들은 일말의 죄의식하나 없이 오히려 잘먹고 잘살고 있으니....그 가족들의 마음이 살아도 사는게 아니겠지요...
저는 저 산다고 바빠서 마음만 아파했지, 한번도 이렇다할 행동을 해보지는 않았는데, 이렇게 행동을 옮겨서 그들에게 작은 위로라도 할 수 있는 모습에 박수를 보내고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