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추천받아 읽은 책이 있다.
이향규라는 분이 쓴 <후아유>라는 에세이집인데, 영국남자와 결혼해 영국과 한국을 오가며 생활하면서 체험하고 문제 의식을 가졌던 생각들을 나누고 있는 저자의 이야기이다.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책의 후반부에 나오는 이야기가 머리를 띵하고 때리는 기분이여서 소개하고자 한다.
‘평등과 공평의 차이를 그린 그림을 본적이 있다. 키가 큰 아이, 중간인 아이, 작은 아이 세 명이 야구장 담장 밖에서 경기를 보려한다. 세 아이 모두 똑같은 크기의 나무 상자에 올라서 있다. 상자는 중간 키 아이에게 맞춰져 있다. 그래서 상자없이도 담장 안을 볼 수 있었던 키큰 아이는 상자 위에서 더 시원하게 경기를 보고, 중간 키 아이는 상자위에서 비로소 경기를 볼 수 있게 되고, 키 작은 아이는 상자위에 서도 시선이 담장을 넘지 못해서 아무것도 볼 수 없다. 그래도 모두에게 똑같은 상자를 주었으니 이건 평등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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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옆에 비슷한 그림이 있다. 앞의 그림과 똑같이 야구장 담장밖에 세 아이가 서있고 상자도 세개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키큰 아이는 상자없이 서 있고, 중간 키 아이는 상자 하나 위에, 키 작은 아이는 상자 두개를 포갠 위에 서 있다. 키큰 아이의 상자를 키 작은 아이에게 준 것이다. 그렇게 서 있으니 세 아이 키가 고만고만해져서 셋 다 담장안에서 하는 야구 경기를 볼 수 있게 되었다. 그 그림에는 ’공평‘이라고 적혀있다.’
여기까지 읽고 곰곰히 생각해보니 많은 사람들이 첫번째 그림처럼 똑같은 상자를 주는것이 공정하고 평등하다고 생각하는것 같다. 나도 그랬던 것 같다.
책에는 여러 장을 지나 다시한번 이 야구장 상황에 대해 또다른 그림을 제시해주었다.
‘.... 세번째 그림이 있다. 야구 경기가 보고 싶어서 야구장 밖에 있는 아이들. 이번에는 키가 제각각인 아이들이 모두 나무 상자 없이도 경기를 구경할 수 있다. 야구장 안과 밖을 가르는 나무 담장이 성긴 철조망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나무 상자없이 제자리에서 야구장안을 들여다볼 수 있다. 거기에 이런 설명이 붙어있다. 어떤 아이들에게도 지원이 필요없다. 왜냐하면 불공평한 원인을 제도적으로 바로 잡았기 때문이다’
아~ 맞다. 우리는 그래서 불편하거나 어려운 것에 대해 함께 연대하고 제도를 수정보완하고 정책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까치발 없이도 담장안을 볼 수 있었던 사람들은 가장 키 작은 사람들의 어려움을 쉽게 간과할 수 있다. 지금 당장 어려움이 없으니 상관없다 할게 아니라 어떤 순간 어떤 상황에서 나도 가장 어려운 순간을 만날수 있음을 잊지말자. 그래서 함께 연대하고 제도 개선에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