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걱정없는 세상 10년, 함께 한 5년
수포자 중1 아들과 씨름할 때도
두 아들의 미친 사춘기 때도
첫아이 고등학교 입학시키고 힘들었던 봄에도
아이들을 끝까지 사랑할 수 있게
흔들리는 나를 잡아준 것은
사교육걱정없는 세상과 그 속에서 만난 좋은 사람들이었다.
흔들리고 다시 중심잡기를 무한 반복하면서 나는 안흔들리는 사람이 아니라 중심을 잘 잡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어쩌면 이 흔들림은 나를 되돌아보게 하고, 다시 중심 잡게 해주는 영원한 동반자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흔들릴 때 마다 중심을 잘 잡을 수 있도록 불을 비춰주는 사교육걱정없는 세상이라는 등대가 곁에 있어 참 다행이다!
엄마가 되고 ‘아이들은 놀면서 자라야지! ’ 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주변에서 선행이다 뭐다 할 때도 크게 신경쓰지 않았고 아이들은 특별히 크게 뒤처지지 않고(지금 생각하면 순전히 엄마기준이었던 것 같지만) 초등학교 수업을 따라갔다. 그런데 고학년이 되면서 수학을 힘들어하던 큰아이는 중학교 입학하자마자 소위 수포자가 되어버렸다.
그런 아들과 집에서 씨름을 하다보니 관계만 나빠지고 수학공부는 지지부진해졌다. 결국 뭔가 다른 방법이 없을까하고 방법을 찾기 시작했고 그때 우연히 ‘수포자, 우리아이 웃다’라는 단체강의를 듣게 되었다. 그런데 정작 수학강의를 들으면서 얻은 것은 아들을 수포자에서 탈출 시킬 방법이 아니라 아이들을 수포자로 만드는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과 수포자가 된 것이 우리만의 잘못이 아니라는 깨달음이었다. 그리고 예전과 크게 달라진 것 없는 우리교육현실에 대해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지금도 왜 대학을 가야하냐는 질문은 대학가서 하라는 고3 담임선생님의 말씀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런 불합리함에 분노하면서도 반항 한 번 못하고 오히려 한 편으로는 대학에 못가면 어떡하나 막연한 두려움에 떨었다. 그리고 입시가 끝나던 순간 모든 책들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린 이후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런데 내 아이가 다시 그 힘든 시간 속으로 들어서는 순간에서야 다시 우리나라 교육이 내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 미안했다. 너무 늦어서 미안했다.
이후에 단체 강의를 계속 들었다. 때로는 답보다는 고민거리를 더 던져주는 강의에 답답하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 답을 알려주는 강의가 아닌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하고 자신의 답을 찾아가게 하는 강의가 나를 더 성장시킨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그리고 단체 토론회를 참석하거나 단체에서 보내 온 메일을 읽으면서 도대체 ‘사교육걱정없는 세상’이 어떤 곳인지를 나름 꼼꼼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나는 희망을 보았다. 누군가는 너무 이상적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감히 꾸지 못한 꿈을 꾸게 해주는 단체가 고마웠고, 나도 그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무엇이라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지난 5년 동안 꾸준히 단체 강의를 듣고, 지역 모임에서 좋은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면서 ‘함께’라는 의미를 알게 되었다. 태어나서 처음 두근대는 가슴으로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거리에서 서명을 받으면서 나는 새로운 경험을 하고 더 큰 세상을 만났다.
가끔 단체와의 만남을 떠올리면 수포자 아들을 통해 더 넓은 세상을 만났으니 아들에게 감사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혼자 웃기도 한다.(실제로 어느 날 아이들이 “엄마, 우리가 공부 못해서 이 단체에 다니는 거야?” 라고 말해서 웃음이 터진 적도 있었다.) 아이 때문에 시작된 인연이었지만 결국은 아이가 아니라 내가 달라졌다.
단체와 함께하는 동안 우리 아이들도 훌쩍 커서 큰아이는 고3, 작은 아이는 고1이 되었다. 정말 되고 싶지 않았던 대한민국 고3 엄마! 그래도 걱정과는 달리 아이와 잘 이겨내고 있다. 고등학교 들어와서 뒤늦게 시작한 공부가 힘들 텐데도 포기하지 않고 해보겠다면서도 틈틈이 엄마의 잔소리에도 굴하지 않고 취미 생활을 즐기는 큰아들과 아직 하고 싶은 게 없다며 가기 싫다던 고등학교를 나름 지각하지 않고 잘 다니고 있는 작은 아들을 지켜보면서 예전처럼 밉지 않은 이유는 단체와 함께하면서 아이에게서 점수가 말해주지 못하는 다른 것들을 볼 수 있는 힘이 조금 생겼고, 또 다른 하나는 40대에도 변하고 성장하는 나 자신을 보면서 아이들은 앞으로 나 보다 더 많은 경험과 시간 속에서 훨씬 더 변하고 성장할 기회가 있다고 믿게 되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사교육걱정없는 세상이 보여 준 넓은 세상에서 열심히 내 삶을 가꾸어가며 아이들의 성장을 지켜보고 싶다.
첫댓글 “엄마, 우리가 공부 못해서 이 단체에 다니는 거야?”^^ 저도 빵~ 터졌습니다 ㅎㅎ 아이들이 어떤 얼굴로 이런 질문을 했을까.. 궁금하네요.^^ 아이들이 아니라 내가 달라졌다는 고백이 남다르게 읽혀집니다. 아이들의 삶은 아이들에게, 엄마의 삶은 엄마 자신에게 달려있다는 의미로 이해되기도 하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단체와 함께 하면서 아이에게서 점수가 말해주지 못하는 다른 것들을 볼 수 있는 힘이 조금 생겼고,'에 공감합니다. 점수가 말해주지 않는 아이의 무한한 가능성에 대해 볼 수 있는 눈이 생긴거 같아요~^^
좋은 어머니시네요. 사걱세는 좋은 분들이 많은 거 같습니다.
이제 막 입문했는데 글을 읽으면서 아이들보다 내가 변했다는 글이 마음에 와 닿네요~~ 저도 아이가 변하길 기대하기보다 먼저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엄마가 되고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