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은 너무 더웠다.
웬만해선 밖으로 나가지 않으려고 애쓰고, 친구를 만날 때도 에어컨이 작동되는 지하에서 지하로 움직이는 노선으로 다녔다.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다녀야 할 때는 예전에는 찾지 않던 양산을 챙겨들었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더워, 더워, 죽을거 같애’를 외쳐댔다.
집에 있을 때는 에어컨이 불 나면 어떡하지를 걱정하며 그래도 계속 켜두었고, 에어컨이 미치지 않는 아이 방으로는 써큘레이터를 장만해 시원한 바람을 넣어 주었다.
사람들과 만나면 더운 여름을 원망하고 전기료를 걱정하는 대화를 나누었다.
이 더운 여름은 언제나 끝날까 하는 것이 나의 주된 관심 중의 하나였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예고도 없이 가을이 와 버렸다.
시원한 가을이 좋다 좋다 하면서도 속으로는 ‘이건 뭐지? 너무 뜬금없잖아, 날씨가 이렇게 갑자가 바뀔 수도 있는 건가’ 하며 믿지 못하는 마음이 조금 있다. 지금도.
나는 가을이 참 좋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살짝 살짝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이 정말 좋고, 가끔 한 낮의 따가운 햇살도 참 좋고, 맑은 하늘의 하늘색 빛깔도 무지무지 좋고, 정말이지 가을이라면 다 좋다.
이렇게 시작하는 가을도 참 좋고 낙엽과 함께 스산하게 마치는 가을도 나는 많이 좋아한다.
이 가을이 조금만 더디 가기를 얼마나 바라고 있는지 모른다.
엄청 더워서 빨리 지나가기를 바랐던 여름과 내가 많이 좋아하는 가을을 만나며, 나의 삶을 생각하게 된다. 그냥 갑자기.
나는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살고 있는가에 대해.
여름에는 이 여름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고, 가을에는 갑작스런 변화에 아직 어리둥절해 하고 있는 건 아닌지.
그런 나를 생각하니 슬쩍 미소가 지어진다.
그랬구나, 내가 그랬구나 하며.
지금 내가 있는 이 곳에서,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것 혹은 내가 해야 하는 것을 해야지.
그런 중에 소소한 행복도 함께 하겠지.
싫은 것도 화나는 것도 있겠지.
보낸 여름과 맞이하는 가을을 돌아보며, 무심히 지나쳤던 나의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 멋지고 소중하고 의미있게 여겨지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지금, 이 가을에, 매일을 누리며 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