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름방학동안 유럽의 여러 나라를 돌아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색적인 풍경과 다양한 사람들의 삶의 모습 등이 매력적이었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제게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두 가지 주제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독일에 있는 과학기술 박물관에 갔을 때였습니다. 과학의 발전사를 역사적인 흐름에 따라 볼 수 있도록 테마 별로 잘 정리를 해 둔 곳이었습니다. 그곳에는 자녀를 위해 시간을 내어서 놀러온 가족들이 많았습니다. 이 가족들은 박물관에 있는 설명들을 읽으며 전시된 것들을 둘러보고 체험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참 질문이 많았습니다. 그러면 부모님은 그것을 인터넷으로 찾아보기도 하고 자신의 지식을 동원하여 자세하고 흥미롭게 설명을 해 주었습니다. 유치원에 다니는 꼬마부터 고등학생까지 부모님과 재미있는 대화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저 역시도 즐거웠습니다. 그러면서 문득 우리나라 자녀들과 부모들이 주말에 함께 박물관에 온다면 어떤 풍경일까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중고등학생들이 부모님들과 함께 박물관에 온다는 것 자체가 생소한 일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말에 자녀들은 학원에 가고 부모는 각자의 일로 바쁜 모습이 먼저 떠올랐습니다. 저의 가정도 주말에 온 가족이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드문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저것 궁금한 것들이 많다는 것은 알고 싶어 하는 욕구가 많다는 것이겠지요? 저는 교직에 있기에 수업시간에 아이들에게 질문을 해보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제게 질문을 잘 안합니다. 개인적으로 물어도 좋다고 해도 잘 찾아오지 않습니다. 이 아이들에겐 궁금한 것이 별로 없어 보입니다. 궁금해 하기 전에 미리 알려주었기 때문이지 않을까요? 아니면 궁금해 할 필요가 없기 때문 아닐까요? 어려서부터 시작된 사교육은 아이들의 호기심을 죽이고 수동적인 학생으로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방문한 유럽의 거리에서는 학원 간판이란 것이 없었습니다. 또 프랑스에서 본 한 고등학교의 풍경은 자유로움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었습니다. 하교 후 길거리에서 남녀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들의 시간을 온전히 즐기고 느끼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나라의 학생들은 평일 오후에 다들 어디에 가 있나요? 호기심은 마음에 여유가 있고 신체가 피곤하지 않을 때 많이 생기는 것이기에 우리 학생들에게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일까요?
독일 여행을 마치고 이탈리아로 가서 콜로세움과 판테온 등 로마시대에 유적들을 구경했습니다. 옛것을 지키고 보존하는 이탈리아 사람들의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베니스에서 본 많은 수상 가옥들도 멋졌는데 200년 전에 지어진 건물들을 보수 공사만 하여 계속 사용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오래된 건물을 더 자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아파트가 30년만 되어도 재건축을 해야 한다고 주민들이 관심을 가집니다. 그리고 오래된 아파트를 다시 지어 더 비싼 아파트를 만들어 비싸게 팔아 이윤을 남기는 것이 재산을 불리는 좋은 방법이 되고 있습니다. 부동산으로 부를 증식하는 것이 현명한 재테크 방법이라는 것이 널리 퍼진 한국 사회와는 너무도 다른 유럽의 모습에 놀랐습니다. 과연 우리나라의 과열된 부동산 투기 현상이 올바른 것인지 의문이 듭니다. 옛것은 허물고 빠르게 돈을 벌어주는 것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 태도가 교육으로 침투하여 단기간에 성과를 올리고 확실한 결과를 내주는 사교육 시장의 호황을 만드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어느덧 투자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부동산에 투자를 한 후 고수익을 바라듯, 자녀에게 사교육비를 과감하게 투자했으니 그 결과가 확실하게 나와 주기를 기대하는 부모의 심리는 너무나 비슷한 것 같습니다. 외국을 나가서 다양한 경험을 하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의 문제점을 더 확실하게 인지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가장 출산율이 낮은 나라라고 하는데 부동산과 사교육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는 이 문제를 풀기 어려워 보입니다. 노동의 가치가 제대로 인식되고 노동의 결과로 얻은 수입이 주거걱정을 하지 않게 만들어주는 나라, 학교에서 학생들이 밝은 모습으로 입학부터 졸업까지 지낼 수 있는 나라가 된다면 출산율이 올라가지 않을까요?
첫댓글 오랫만에 이 카페에 들러서 이리 좋은 글을 읽고 갑니다. ^^
사교육을 지양하며(좀더 솔직해지자면 돈이 없어서ㅜㅜ).....키운 딸아이가 어느덧 고3이 되어 선생님의 꿈을 이루기 위해 마지막 관문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부모된 입장에서 해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교육과 관련된 좋은 글이 있으면 혹시 면접에 도움이 될까하여 아이에게 알려주는 그런 정도 밖에는 요. 오늘도 그런 취지로 방문하였는데 선생님의 좋은 글을 아이에게 복사해서 보내주어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