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신호등 ‘멈춤’에 대하여..
최근 내가 시쳇말로 ‘꽂힌’ 단어가 있다. ‘멈춤’
아마도 내 몸이며, 마음이며, 영혼이 그동안 무수히 신호를 보내고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주인님! 멈춰주세요. 힘들어요. 에너지 바닥입니다. 방전이라고요’
징후는 이랬다. 그렇게 좋아하지 않은 일이었지만, 책임감으로 해 왔던 일들이 더 이상은 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억지로라도 인내하려고 했는데, 도통 참을 수가 없었다. 급기야 좋아하는 일을 해도 즐겁지가 않았다. 웃음기 사라진 얼굴, 앞으로 금세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입, 매사에 자꾸 불평과 원망이 새록새록 생겨났다. 아주 오래 전 일들까지 소환해가면서 가까운 이들에게 내 억울하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속이 후련할 거라는 기대와는 달리, 불편한 속내 드러내고 나서 밀려드는 내면의 후폭풍이 더 힘들었다. 그러다 나만의 동굴로 깊이깊이 들어갔다. 병원에 가보니, ‘Burnt out에서 비롯된 우울증’ 이라고 했다. 이 상태에서 얼른 벗어나려고, 해결하려고 ‘애’쓰지 말란다. 그래서 모두 멈췄다. 전체 전원 소등하듯, 한 번에 꺼지지는 않았지만, 내 안의 뒤엉킨 소리들을 일단 끄고 하나씩 하나씩 내 삶의 진행형인 것들을 멈춰보았다.
일반적으로 뭔가를 중도에서 멈추는 것에 대해서 사람들은 그다지 높은 가치를 두지 않는다. 오히려 정반대다. 종종 견디고 인내하는 것에 가장 높은 점수를 준다. 뭔가를 도중에 관두는 이들을 약한 사람이나 바람직하지 않는 사람들이라 여기는 성향이 있었고, 그 생각이 더 쉽다. 나도 그랬던 것 같다. 그러니 버티는 게 미덕이라 믿고, 고생 끝 즐거움, 인내의 열매들을 보기 위해 열심히 달려왔다. ‘열심히’는 살았는데, ‘무엇을 위해’가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하루하루 주어진 일에 바삐 살았다.
여하튼 자의인지, 타의인지 구분이 모호하지만, ‘멈춤’ 이후 지금 내 삶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 더 나빠지지는 않았으니 좋아지고 있다 믿는다. 그리고 몇 가지 깨닫게 된 것들이 있다.
‘멈추기’ ‘그만두기’ 는 단지 연약함이나 절망 때문에 포기하는 그런 종류의 중단이 아님을 알았다. 그것은 오히려 강인함과 관련된 멈춤이자 내 안의 참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따르기로 선택하는 것과 가깝다. 또한 모든 일이 잘 되고 있는 척, 괜찮은 척하는 일을 멈춘다는 뜻이기도 했다. 가족 내에서 결혼 생활이나, 아이문제에 있어서 친구와의 우정이나 사람들과의 삶의 현장에서 흔히 일어나는 문제들이었다. 자연스러운 상태의 내 자신을 찾아보는 일이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할까?’라는 두려움에서 벗어날 때 나는 자유를 선택한 것이다. ‘다른 사람에 대한 불평과 비난을 멈출 때’ 나는 내 안의 소리를 더 잘 듣기를 선택한 것이다.
멈춤에는 정당한 이유가 전제되어야 하며, 그 것은 적당한 시간과 바른 방법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 옳은 이유에서 선택하는 멈춤은 분명 변화의 시작이다. 어느 때에 멈출지, 또는 멈추지 말아야 할지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적어도 나는 앞으로 내가 하고 있는 일에서, 내적 혼란이 멈추지 않고 기쁨이 없고, 분노가 계속 곪아갈 때 멈춰야 할 때 임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내 한계다. 내 한계를 아는 일은 슬프고 좌절되는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있는 그대로의 나와 내 감정을 받아들이면서 나는 나 스스로가 존중받는 느낌을 갖게 되었다. 내 자신의 존엄과 인간으로서의 한계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하고나니 가까운 이들에게 그 경계 안에서 더 진실하고 참된 나로 다가갈 수 있었다. 그 경계 안에서 이전보다 더 안정된 사랑을 줄 수 있었다. 아직도 나는 과정 속에 있다. 하지만, 이 ‘멈춤’은 앞으로도 내 삶에 새로운 변화와 가능성이 되어줄 거라 기대한다.
첫댓글 정말 옳은 말씀입니다. 번아웃 되면 부정적 감정이 많이 올라오고 그런 감정을 통제하기도 어려운거 같아요. 멈추고 나를 돌아보는 시간은 나를 더 온전한 사람이 되게 할 것이라 믿습니다 ^^
네~ 직장맘이던 저도 어느날 몸이 아프더군요... 그리고 건강을 챙기며 멈춤을 경험했었네요. 몸이 보내는 신호를 빨리 알아채고 잠시 쉬는텀 중요한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