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시험장 앞에서.....
드디어 수능 날 아침, 걱정과 달리 웃으며 가벼운 농담까지 하는 아들의 모습에 오히려 떨리려던 내 가슴이 안정을 되찾았고, 시험장으로 가는 동안 나도 아이에게 별다른 걱정의 말도, 격려의 말도 늘어놓지 않고 그냥 평소처럼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갔다. 그런데 수능시험장이 가까워오자 아들이 정말 너무 떨린다며 앞으로 이렇게 떨리는 일은 없을 거 것 같다고 하는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떨지 말하는 말도, 괜찮다는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냥 앞으로 이런 날은 살면서 많이 겪을 거라고 오늘이 별스럽지 않다는 듯 말했다. 지금 생각하면 아들의 입장에서 말도 안되는 소리였을 것 같은데...... 그저 아이가 오늘의 결과로 내 인생이 결정된다는 생각을 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나온 이상한 말(?)이었다. 하기야 학력고사를 치르고 나서 다시는 그 떨리고 긴장 된 시간을 겪고 싶지 않아 ‘대학을 못가더라도 절대 재수는 안한다.’라고 결심했던 내가 아들에게 이런 말을 하다니.....
이 하루를 위해 앞만 보고 달렸을 많은 사람들이 안타깝고 이 하루로 내 인생이 결정된다는 생각을 갖고 시험에 임하는 사람들의 마음의 무게를 내가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시험장에 도착한 아들은 엄마랑 같이 온 게 좀 창피한 듯 혼자 앞서 걸어가더니 멀리서 눈인사를 하고는 시험장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렇게 혼자 시험장에 들어가는 아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순간 ‘앞으로 이렇게 우리 품을 떠나 온전히 홀로 자신을 책임져야할 시간들이 더 많아지겠지....’라는 생각이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훅 와닿았다. 그리고 그 시간이 코앞이라는 사실이 실감이 났다. 지금까지 ‘아이들이 크면 떠나보내야지’ 라고 난 머리로만 생각했었구나....라는 자각이 들었다.
내가 어떤 도움도 줄 수 없는 상황, 시험장 안으로 아들이 들어서고 그 아이 뒤로 커다란 철문이 닫히는 순간 기분이 너무 이상했다. 늘 아이가 혼자 설 수 있도록 키워서 때가되면 떠나보내야 한다고 생각했고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고는 어느 정도 아이에게서 떨어져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난 아직도 아이가 조금만 힘들어해도 손을 뻗을 준비를 하고 아이 주변에서 맴돌고 있었나 보다. 아이가 힘들어해도 달려가 줄 수 없는 이 상황이, 이 순간이 당황스럽게 느껴지는 나를 보았다.
첫 아이는 이렇게 늘 새로운 상황들을 직면하게 해주는 존재인가 보다.
초보 엄마는 아이와 늘 새로운 상황과 문제를 겪을 때마다 어색했고 불안했다. 나만을 온전히 의지하는 어린 아이를 보면서 내가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 육아는 더 힘들게 느껴졌고,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충분한 여유도 가질 수 가 없었다. 이러니 어찌 아이가 혼자 뭘 하도록 온전히 믿고 맡겨 둘 수 있었을까?
맡겨 둔다고 하고는 자꾸 곁눈질을 하고 부족하다 싶으면 시시때때로 간섭하고, 아이가 힘들어하고 짜증내면 지켜보는 내가 힘들어서 결국 나서서 아이의 문제를 해결해주기 일쑤였던 것 같다. 그러면서도 늘 아이가 홀로 서지 못할까 걱정하는 어리석은 엄마였고, 그 원인을 나에게 자꾸 의존하려드는 아들 탓이라고 생각하며 언제 아이가 혼자 알아서 자기 할 일을 할 수 있을까를 걱정한 한심한 엄마였다.
그런데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고 정말 자신과의 싸움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면서 엄마인 나는 정말 더 이상 예전처럼 도와주거나 간섭할 수 있는 영역이 좁아들었다. 아이도 점점 혼자서 하기를 원했고 내심 그것에 안도하면서 걱정도 되었다. 그런데 그런 아들을 지켜보면서 깨달은 사실은 아이가 진짜 자신이 하고 싶을 것을 할 때는 아무도 도와주지 않아도 스스로 방법을 찾고 능동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이었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우리들도 그렇지않은가?
누구나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거나 스스로 해야한다는 생각이 들면 알아서 스스로 길을 찾아간다. 그런데 아이들은 그렇지 못할 것이라고 의심하고 믿지 않았던 것은 아닌지......
아이는 뒤늦게 공부를 시작했지만 주변에서 가끔 듣게 되는 그런 드라마틱한 반전은 없었고 아이는 내년에 한 번 더 수능을 보고 싶다고 한다. 그래야 후회가 안남을 것이라고.... 사실 이 짓을 한 번 더 해보겠다는 아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어찌될지는 모르지만 나는 아들의 어떤 결정이든 지지해 주고 싶다. 마음처럼 쉽지 않을 수 있겠지만 이제 아들이 학교와 부모를 벗어나 진짜 자신의 삶을 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첫댓글 제목만 보고 읽기 시작했는데 아주 내밀한 이야기를 써주셨군요. 선생님과 아드님 수능 준비한 정성과 노력에 수고 많으셨습니다 ! 앞날을
응원합니다! ♧♧♧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