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림책을 함께 읽는 그림책모임을 하고 있다.
우리는 매주 한권의 그림책을 읽고 모여 그 그림책에서 우리의 마음이 머무는 지점을 이야기 나눈다.
이번 학기에 읽은 그림책 중에 데미 작가의 ‘빈화분’이 있다.
어느 나라의 임금님이 나라를 물려줄 후계자를 찾고 있었다. 꽃을 사랑한 임금님은 이 특별한 씨의 꽃을 피우는데 성공한 사람에게 왕위를 물려주겠다고 전국에 방을 돌렸다. 이 소식을 들은 아이들은 너도 나도 임금님에게 특별한 꽃씨를 받아 갔다.
주인공 핑도 임금님에게 꽃씨를 받아와서 정성을 다해 보살피지만 그의 꽃씨는 싹이 트지 않았다.
다시 화분도 바꿔주고 최선을 다하지만 몇 달이 지나도 어떠한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한해가 지나가고, 봄이 되자 다른 아이들은 가장 좋은 옷으로 차려 입고 그들이 임금님에게 뽑히기를 기대하며 꽃이 핀 화분을 들고 궁궐로 갔다.
빈 화분을 바라보며 안타까워하는 핑에게 그의 아버지가 말했다.
“너는 너의 최선을 다했다. 그러니 너의 정성은 임금님을 위한 선물로 충분하다.”
핑은 용기를 얻어 빈 화분을 안고 곧바로 궁궐로 갔다.
임금님이 핑에게 와서 물었다 “너는 왜 빈 화분을 들고 왔느냐?”
“씨앗을 심고 일 년 내내 물을 주고 정성껏 돌보았지만 싹이 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저의 최선입니다.”
그러자 임금님은 핑의 용기와 정직에 매우 기뻐하며 핑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사실 임금님이 준 꽃씨는 익힌 것이라 꽃을 피울 수 없었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하나같이 예쁜 꽃이 핀 화분을 들고 나타난 것이다.
우리는 각자 저런 상황에서 핑처럼 빈화분을 들고 갈 수 있는 용기가 있는지,
그리고 내 아이가 빈화분을 들고 가야하는 상황에 핑의 아버지처럼 아이를 인정하고 아이의 최선을 격려하며 보내줄 수 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꽃이 핀 화분을 들고 간 아이들 중에는 스스로 다른 꽃씨를 바꾸어서 꽃을 피웠을 수도 있지만,
어떤 경우에는 부모가 아이 모르게 (아이를 실망 시키지 않게 하기 위해) 꽃씨를 바꾸어 주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차피 화분에 예쁘게 피어 있는 꽃이 임금님이 주신 꽃씨의 꽃이 아니라면 진실은 드러날 것이다.
지금까지 나는 아이를 키우며 아이와 어떤 선택을 해 왔는지 돌아보았다.
아이가 초등 1학년 때 방학숙제로 ‘가족 독서신문 만들기’를 한 적이 있다.
어떤 형식으로 만들까를 아이와 의논 하고 아이가 어느 정도 준비해 나갈 수 있도록 돕는 과정은 쉽지는 않았다. 그러나 아이의 능력치만큼 삐뚤빼뚤 글씨를 쓰고, 할머니, 할아버지, 사촌들에게 그들이 좋아하는 책을 조사하고, 사진도 부쳐가며, 정성스럽게 그렇게 완성한 숙제를 아이는 개학날 아침에 조심스럽게 들고 등교 하였다.
그러나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당시 아이의 숙제의 결과는 부모님이 대신 만들어 준 친구들의 숙제에 비교하면 너무 초라하여 빈화분과 같았다.
그 방학숙제로 상을 받은 다른 친구들 작품을 전시하는 곳을 방문한 나는 깜짝 놀랐다.
컴퓨터로 깔끔하게 작업하기도 했거니와 작품 안에 실린 자료들이 초등 1학년이 알 수도 없는 내용으로 휘황찬란했었다.
빈화분에 꽃씨를 바꿔서 화려한 꽃을 피워준 부모들의 작품전시회였다.
우리 아이의 것은 비교하면 부족하지만 아이의 노력이 깃든 작품이라 우리에게는 충분히 가치가 있었기에 그냥 버리기에는 너무 아까웠다.
할머니 댁에 가져가서 거실 한쪽에 걸어 두었다.
6년쯤 지났나보다.
한번은 할머니께서 아이를 부르더니 이제는 빛바랜 그 작품을 보며 다시 예쁘게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셨다.
할머니의 친구들이나 친척들이 할머니 집을 방문할 때마다 손녀의 정성이 가득한 그 작품을 보며 잘 만들었다고 칭찬을 여러 번 하셨다는 것이다.
할머니에게는 그 작품은 빈화분이 아니라 자랑스러운 꽃 핀 화분이었다.
우리의 현실은 그림책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그렇게 아름답지 않으며 정직하면 손해를 본다고 이야기 한다.
숙명여고 사건이나 몇몇 학종 비리를 보면 들키지만 않는다면 부모가 나서서 꽃씨를 바꿔 주어야 한다고, 들키지 않는 상당수가 그렇게 꽃씨를 바꿀 것이라고 그것이 현실이라고도 말한다.
그러나 나는 두렵다.
나는 임금님(세상)에게 바꾼 꽃씨로 꽃을 피워 나아갈 수가 없다.
나는 그런 방식으로는 행복할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때 부모가 만들어 준 숙제로 상을 받은 게 시간이 지나면 무슨 의미가 있으며,
정당하지 않는 방식으로 진학을 한들 대학이 인생을 책임져 주지 못하는데, 그런 편법이 아이를 지켜줄 수 있을까?
핑의 아버지는 비록 싹을 틔우지 못하였지만, 아이의 최선을 인정하고 용기를 북돋아 준다.
그 방식만이 아이를 지켜 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리고 현실은 내가 믿는 방식으로 전개되어 간다고 나는 믿는다.
첫댓글 님이 쓰신 글, 잘보았습니다.
님께서 삶을 대하는 태도야말로 '진실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삶을 진실하게 대하는 님께 박수를 보냅니다.
진실의 힘은 참으로 크다는 것을,
그리고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기억해봅니다.
자녀들에게 꽃길만 걷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부모의 마음이겠지요. 그러나 삶이 그렇던가요?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에 이것저것 미리미리 준비한다고 하는 부모의 행동이 오히려 아이의 삶에 더큰 방해가 될수 있음을 어느 순간 깨닫게 되는 날도 있더군요. 어찌어찌 부모의 앞선 도움이 큰 행운이 되었더라도 결국 부모와 아이는 알게 되죠. 내가 꽃피운 화려한 화분이 아님을.... 이 세상 사람들 다 속여도 본인들 마음은 속일수 없음을.... 꽃을 피우지 못해도 그것을 위해 노력한 자체를 지지해주는 부모가 되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