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 아침에 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요양원에 계시던 아버지가 갑자기 편찮으시다는 연락을 받고 병원으로 가는 중이라는 내용이었다.
가끔 열이 나실 때 치료를 받으시곤 해서 나는 감기겠지 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었다.
병원에 도착한 언니는 아버지의 증상이 심상치 않음을 알려 왔고 급기야 웬만해선 부정적으로
말하지 않는 언니가 울먹이기까지 했다.
급히 큰 병원으로 모시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라 구급차를 부르고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 했다.
나는 나대로 친정오빠와 남편에게 소식을 알렸고 오빠는 볼 일을 보러 가던 길을 돌이켜 아버지께로 향하겠노라고 했다.
서울에 있는 나는 혹시나 있을 수 있는 큰일을 준비하며 터져 나오는 울음과 함께 급히 짐을 꾸리고 있었다.
마침 방학이라 집에 있는 아들과 딸에게 해야 할 일을 알려주고 남편을 기다리고 있었다.
남편이 집에 도착한 시간은 살짝 이른 점심때라 간단하게 라면을 끓여 먹고 출발하기로 했다.
그때 다시 걸려온 언니의 전화는 침통했다.
제부는 바쁠 테니 그냥 두고 너라도 빨리 오지 그랬냐는 말로 아버지의 상태가 안 좋아졌음을 알려왔다.
애써 평정을 지키려던 아니 아직도 느슨하게 상황파악을 하고 있던 나는 가슴을 치며 울었다.
왜 진작에 출발할 생각을 하지 않았던가?
어떻게 제대로 된 한 끼 대신 라면을 먹는 것으로 내 자신에게 면죄부를 씌어 주며
목구멍으로 라면 가닥을 넘길 생각을 했는가?
바로 집 앞 도로에서 택시라도 잡아타고 몇 십만원의 택시비를 지불하고서라도 갈 생각을 왜 하지 못했을까?
아버지가 아닌 내 자식이 위중한 상태라면 나는 이리도 태연하게 짐을 챙기고 라면을 끓일 생각을 했겠는가?
저것 말고도 후회가 남는 장면들이 내 양심을 부끄럽게 하고 있었는데 끝까지 정신을 못 차리는
나 자신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책으로 얼룩질 막내딸인 나를 위해서였는지 아버지는 위기를 넘기시고 지금까지 연명하고 계신다.
야위고 주름진 거죽만을 뒤집어 쓴 육신을 입고서 하루 종일 잠인지 꿈인지 사생의 경계인지
모를 곳을 헤매고 계시는 듯하다.
귀에 바짝 대고 부르면 자식들의 목소리엔 반응을 하신다.
꺼져가는 숨소리로 힘겹게 대답을 하신다.
“아빠 , 힘들어?” 라고 물으면 자식들 걱정 안 끼치시려는 본능이 작동하는 것인지 힘겹게
“아니” 라고 대답하시며 고개를 가로 저으신다.
설날 요양병원의 복도에는 환자들의 자식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쭉 앉아 있다.
복도를 지나가며 잠시 들은 그들의 대화 주제는 우리의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이대로 목숨만 붙여 놓고 살게 하면서 이게 무슨 100세 시대냐는 대상 없는 원망 같은 푸념이
몸져누워 계신 늙은 부모를 더 안타깝게 한다.
어렸을 때 100살까지 사는 것은 신령한 도사나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100세 가까이 사시는 노인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간혹 건강하게 사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힘겹게 병상에 누워 호흡만 유지하며
지내시는 분들이 아직은 더 많은 것 같다.
우리가 보기엔 의미 없는 생명을 연장하고 있는 것처럼만 보여 안타깝지만
지금 우리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까 궁금하다.
이대로의 삶도 소중하게 지키고 싶으실지, 아니면 고통의 겉옷을 벗어 버리고
영원한 안식을 빨리 얻고 싶으실지 알 수가 없다.
산소마스크와 콧줄로 넘기는 유동식에 의지하는 아버지를 바라보면 발병 즉시
차라리 치료를 포기했더라면 지금보다 낫지 않았을까 하는 불가능한 가정을 해보게 된다.
경망스럽게 죽음을 입에 올리는 것이 불효인가 싶어 조심스럽지만 죽음의 문턱에 계신 아버지를 보면서
현실적인 고민을 아니 해볼 수가 없다.
의료적 장치를 배제하고도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의 임종을 맞이할 수 있는 곳은 집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떠나는 이도 보내는 이도 지금보다는 편안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우리는 평소 부모님의 뜻대로 적극적인 연명치료는 하고 있지 않지만 산소 호흡기며 수액이며 하는 이 모두가 연명치료의 일부처럼 여겨지는 건 너무 매정한 생각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의료혜택을 누릴 수 있고 병원을 가까이에서 이용할 수 있는 지금,
어디까지가 자연사인지 구분할 수가 없게 되었다.
하기야 그 기준이란 것이 그 시대가 처해 있는 상황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삶에도 죽음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헤매고 계실 우리 아버지가 가엾기만 하다.
“아버지, 아버지는 무슨 꿈을 이리도 오래 꾸고 계신가요?”
“아버지, 아버지는 지금 두려워하고 계시지는 않나요?”
“아버지, 아버지는 지금 무엇을 가장 바라고 계신가요?”
“아버지, 아버지는 지금 꿈이라도 꾸고 계신가요?”
첫댓글 ㅜㅜㅜ 읽자마자 눈물이....
아버지하고의 이별이 떠올라 울컥 했어요.
아마도 아버지는 남아있는 가족들이 당신과의 이별로 힘들어질 까봐
준비의 시간을 주시느라 가엾고 힘겨운 모습으로 견디어 내셨던 것 같아요...
아버지!! 많이 그립습니다.
아버님께 전화를 드려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