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읽은 ‘이상한 정상 가족’이라는 책에서 “한 사회가 아이들을 다루는 방식보다 더 그 사회의 영혼을 정확하게 드러내 보여주는 것은 없다.” 라는 넬슨 만델라의 글을 읽었다. 사실 처음에는 이 문장이 특별히 시선을 끌지는 않았는데 이 책을 다 읽고 부터는 이 문장을 자꾸 되새기게 되었다.
이 책은 아동폭력, 가족 동반자살, 과보호와 방임, 다문화가정의 아이들, 해외입양, 미혼모/미혼부 문제 등을 통해 우리 사회가 아이들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보여주면서 지금 우리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할지 생각하게 해준다.
우리 사회에서 소위 ‘비정상 가족’, 가족 밖의 사람들은 어떠할까? 우리 사회에서 외면당하고 있는 이주민자녀들, 아무 안전조치도 없이 해외로 입양 가는 아이들, 부모가 양육을 하고 싶어도 포기하게 만드는 사회 시스템 속에서 버려지는 미혼모/미혼부의 아이들에 대해 알게 될수록 그들을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그들의 아픔에 더 공감할 할 수 있었다. 우리는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타인을 알려고 노력해야 한다. 왜냐하면 알아야 이해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어야 공감도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상 가족’, 가족 안의 사람들은 행복한가? 저자는 국가가 모든 책임을 가족에게 전가해버린 탓에 가족이 각자도생으로 살아남아야 하는 현실에서 가장 약한 자인 아이들이 늘 피해자가 될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사교육 과열 양상이 보여주듯 중산층은 계층하락을 피하기 위해 아이가 어릴 때부터 온 가족이 총력전에 나선다. 반면 저소득층의 자녀는 정반대로 돌봄을 받지 못하고 방임 상태에 놓이며, 스트레스 해소의 대상이 되어 학대에 시달리는 아이들이 생겨나고 급기야 절박한 상황에서는 극단적인 자녀동반자살을 선택하게 되는 경우도 생긴다는 것이다.
‘개인 아닌 가족 가족단위로 사다리에 오르는 사회’라는 표현은 정말 우리 사회를 너무 잘 표현한 말이라고 생각된다. 믿을 것이 가족밖에 없는 사회에서 가족으로 똘똘 뭉쳐 외부에 대해 배타적이며, 내부적으로도 자율과 다양성을 허용하지 않는 우리 사회를 잘 꼬집은 듯하다.
이 책을 읽는 동안 ‘가족’의 의미를 잘 들여다볼수록 지금까지 내가 생각했던 ‘가족’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지금까지 우리가 회사, 학교, 사회에서 표방하는 ‘가족주의’를 대체로 긍정적으로 생각해왔다. 하지만 여기서는 “가족주의는 혈연, 지연, 학연 등 자기가 속한 집단을 우선시하는 유사가족주의적 성향과 내집단 편향을 강력하게 만든다. 이는 같은 소속이 아닌 타인에 대한 신뢰, 결국 사회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는 악순환을 낳는다.” 고 말한다. 어쩌면 국가가 책임져야 할 것들까지 가족이 책임져야하는 상황에서 가족주의는 생존전략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럼 이 책에서 제시하는 함께 살아가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책에서는 스웨덴 사회를 우리에게 그 해답을 찾을 열쇠로 제시하고 있다. 스웨덴은 아마 세계에서 가족에 대한 의존도가 가장 낮고 개인화가 가장 진전된 사회라고 말한다. 하지만 신기하게 그렇다고 가족이 해체되거나 중요도가 감소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단지 자율권과 평등을 강조하는 도덕적 규범이 가족에 스며들면서 스웨덴에서의 ‘이상적인 가족’은 성인 부부가 서로에게 의존적이지 않고, 가능한 이른 나이에 아이들의 독립을 고무하며 서로 신체적 온전성을 훼손하지 않는 구성원이라는 것이다.
스웨덴이 우리와 너무 다른 점은 그들이 중요시하는 이데올로기 중 하나가 개인적 삶의 독립성을 보장하되 개인 살의 질은 집단적 책임에 달려있으며, 여기서 정부의 역할이 크다는 문화적 믿음이 강하다는 점인 것 같다. 이러한 스웨덴의 국가주의적 개인주의를 어떤 학자는 친밀한 관계의 복종, 희생과 상호의존에 의해 형성되는 ‘뜨거운 신뢰’에 대비해 개인의 자율성과 평등에 대한 남다른 강조와 공존하는 높은 사회적 신뢰 즉 ‘차가운 신뢰’라고 말한다. 그리고 저자는 가족에게 신뢰가 집중되어 있는 형태는 뜨겁고 구속적 성격인 핫트러스트라고 볼 수 있고 반면 쿨트러스트는 얼핏보면 차가워 보일지 몰라도 그렇기 때문에 포용적이고 안정적이라고 한다.
내가 보기에 우리의 전통적인 ‘가족’ 혹은 ‘공동체’가 앞에서 말한 핫트러스트라면 요즘 젊은 세대들이 원하는 ‘가족’ 이나 ‘공동체’는 쿨트러스트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한때 ‘응답하라! 1988’을 보면서 나 또한 그 시절 끈끈했던 마을 공동체를 그리워하며 지금 현 세태를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시 한 번 곰곰히 그 시절 아이였던 나의 시각으로 돌아가 보면 어른들의 통제와 간섭, 어린 사람의 말대답을 허용하지 않았던 권위적인 어른들, ‘우리’에 속해있으면 무한정 자애롭지만 ‘우리’밖에 대해서는 그러지 못했던 가족과 공동체에 대한 기억들이 있다.
나는 ‘가족’과 ‘마을’이 어려울 때 우리를 지켜줬다고 볼 수 있지만 반대로 우리에게는 어려울 때 믿고 도움을 청할 곳이 ‘가족’과 ‘마을’ 밖에 없었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든다. 지금은 ‘마을’마저도 사라지고 ‘가족’이 홀로 책임져야 할 짐이 더 무거워진 것 같다. 그만큼 '가족' 은 더 결속해야했고 그러다보면 더 폐쇄적이 되고, 가정 내의 평등이나 다양성은 인정되지 못하고 외부에 대해서도 더욱 경계를 높이게 된 것이 아닐까?
우리는 스웨덴과는 정반대로 “삶은 집단주의적이고 해법은 개인주의적이어서 개별성을 인정하지 않는 가족과 온갖 배타적관계에 둘러싸여 집단주의적으로 살아가면서 육아, 교육, 주거 등 다 각자 알아서 개인적으로 해결해하고 있다 ”라는 저자의 말에 동의하며 이 책의 에필로그에 쓰인 글로 이 글을 마무리 하고 싶다.
“정부가 공공성 강화를 통해 가족의 짐을 덜어주고 누구도 소외되지 않도록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각 개인들의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기보다 각자 다른 방향으로 뻗어가도 괜찮은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다면 좋겠다. 가족 안팎에서 ‘정상가족’의 숨 막히는 틀 대신 수평적 유대관계를 통해 아이들의 자율을 존중하고 다음 세대에선 나와 다른 사람을 배척하지 않는 개인들이 자라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내 혈연이 아니더라도 세대를 이어 인류가 계속 존재하리라는 기대가 사라진다면.... 그 모든 추구와 삶의 의미도 빛을 잃는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모두 미래의 낯선 이들에게 의존하고 있다. 존재의 의미를 다음세대에, 아이들에게 빚지고 있다.”
첫댓글 평소 늘 불편하게 느껴졌던 점을 잘 정리해준 책이란 읽고 싶어지네요. 책을 옮기신 선생님의 소감도 공감돼요.
저도 이책 읽어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