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쁨은 현대인의 완장이며 표식이 되어 버린 지 오래 되었지만
더없이 바빴던 남편이 어렵게 낸 휴가일정에 맞춰 막바지 꽃놀이를 했습니다.
자연이 주는 느긋함에 마음도 너그러워지고 남편 얼굴도 한 번 더 보게 됩니다.
자연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낯선 곳에서의 밤도 새롭고
내 손으로 차려 먹지 않는 밥 한 끼가 한가로움과 자유를 실감나게 합니다.
동굴 속 같은 어두운 바위 사이를 지나 도달한 암자에 경건함을 더해줄 종소리가
때맞춰 울리고 보슬비 내리는 하늘과 벚꽃 사이로 보이는 하얀 파도는 깊은 감탄을 자아냅니다.
세상의 끝일 것만 같은 막바지에 자리 잡은 암자에서 들리는 목탁 소리는
세상의 걱정거리를 말끔히 씻겨 주는 것만 같습니다.
남도의 드라이브 코스 곳곳은 그대로 꽃잔치입니다.
밤새 내린 비로 떨어진 꽃잎은 꽃잎대로
절정을 살짝 지난 파스텔톤의 겸손함을 지닌 꽃잎들은 그들대로
마음에 안식을 줍니다.
그렇게 짧은 2박 3일의 꽃놀이를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 왔습니다.
나들이 후 일상의 첫 만남은 잠시 잊고 있었던 아니 생각했지만 조금 무뎌진
아픔입니다.
다시 4월입니다.
내게 안식을 주었던 벚꽃이 누군가에게는 고통의 흔적이 됨을 알았습니다.
추운 겨울을 이기고 만물이 소생하는 봄은 누구에게나 희망이 되는 줄 알고 있었습니다.
마음 울적하면 누구나 꽃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줄 알았습니다.
유가족이라는 단어가 그들의 이름이 되어 버린 지 5년!
그들에겐 4월에 흐드러지게 피는 벚꽃이 고통의 상징이 되어 버린 지 5년이 됩니다.
벚꽃나무를 도끼로 찍어 버리고 싶다는 과격한 표현이 그들의 마음을 읽게 합니다.
내겐 안식이 되는 꽃을 고통으로 받아내는 모순을 앓고 있는 유가족을 보듬어 봅니다.
꽃은 배신할지언정 위로는 배신을 하지 않습니다.
기도는 능력을 잃을지언정 나의 손과 발은 그들에게 능력입니다.
4월 다시 한 번 귀를 기울여 봅니다.
특별수사단을 설치해 달라고 청원을 합니다.
나도 동참을 합니다.
공감은 꽃보다 아름답습니다.
첫댓글 '기도는 능력을 잃을지언정 나의 손과 발은 그들에게 능력입니다' 조그만 능력을 보탭니다..특별수사단 설치에 청원합니다. 가슴이 따듯하고 먹먹한 울림을 주는 글이네요..
저도 동참하렵니다.